최근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에 일격을 가한 우크라이나가 연일 서방과 공개적인 밀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달 들어서만 5국을 방문하는 등 외교전(戰)에도 한창이다.
젤렌스키의 이 같은 행보는 국제 여론이 우크라이나의 편이라는 것을 과시하면서 러시아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동시에 서방국가들과 본격적인 재건 사업을 논의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 도착해 올라프 숄츠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EU(유럽연합)·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 문제 등을 논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독일 방문은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이후 처음이다. 젤렌스키는 독일 방문 기간에 유럽 통합에 기여한 이에게 독일 아헨시에서 수여하는 ‘국제 카를루스 대제상’도 받는다.
젤렌스키는 앞서 지난 13일 이탈리아 로마를 찾아 국가원수인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 행정 수반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회담했다. 이후 바티칸으로 이동해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만나 우크라이나 입장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젤렌스키 대통령과 멜로니 총리가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선언이 주목받고 있다. 종전이나 휴전 이후 이탈리아의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를 명시한 대목 때문이다.
양국은 공동선언에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생한 손실과 상처, 손해에 대한 보상 체계를 함께 개발할 것이고,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합법적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했다.
멜로니는 젤렌스키와 만난 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에 베팅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이번 공동선언은 사실상 이탈리아의 재건 사업 참여를 명문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양국은 지난달 로마에서 재건 사업을 위한 협력위원회를 개최하고 이탈리아 민간 부문의 재건 사업 참여 방안을 논의한 상태다. 오는 16~17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리는 유럽평의회 정상회의에서도 우크라이나 재건이 핵심 현안으로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은 같은 해 12월 미국 방문이었다. 미국도 우크라이나 재건을 염두에 두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 법무부는 10일 우크라이나 내 친러 세력을 지원한 혐의로 제재했던 러시아 신흥 재벌 콘스탄틴 말로페예프에게서 몰수한 수백만달러 규모 미국 내 자산을 우크라이나 이전 비용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미국 방문 이후 폴란드·영국·프랑스·벨기에 등을 잇따라 찾은 젤렌스키의 행보는 이달 들어 더욱 활발해졌다.
핀란드를 찾아 북유럽 정상들과 연쇄 회동한 데 이어 네덜란드를 방문해 푸틴을 전범으로 기소한 국제형사재판소까지 찾아갔다.
우크라이나 재건 문제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7국) 정상회의에서도 핵심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 NHK는 14일 이번 회의에서 통상의 G7정상선언과 별도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별도 성명이 채택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성명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규탄과 함께 경제지원에 관한 내용도 포함될 것이라고 NHK는 전했다. 이 회의에는 젤렌스키도 화상으로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국가들의 무기 등 군사 지원 소식도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방산 업체인 독일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 국영 방산 업체인 우크로보론프롬과 탱크 생산과 정비·보수를 위한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는 독일군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 생산 업체다. 독일 국방부도 레오파르트 전차 30대, 게오파르트 대공장갑차 15대, 정찰무인기 200대 등 27억유로(약 3조9375억원) 규모의 무기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공대지 순항미사일 ‘스톰 섀도’도 최근 우크라이나에 투입됐다. 사거리가 최대 300㎞에 달해 러시아 영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키로 한 에이브럼스 전차 31대도 예정보다 일찍 독일에 도착해 조만간 우크라이나 기갑여단 정예병력들을 위한 실전 운용 훈련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