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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가 2017년 10월 말 제19차 중국공산당 당 대회 보고 문건 전문(全文)을 직접 읽으며 분석하고 있다./케빈 러드 트위터 캡처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무력 충돌로 번질까? 2017년 나온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83)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후 미·중(美中) 전쟁 논의가 불붙고 있습니다.

앨리슨 교수는 이 책에서 “지난 500년간 기존 패권국과 신흥 강대국의 충돌사례 16번 중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면서 미·중 양국간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미·중의 대결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Tuchididdes Trap)’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의 부상(浮上)에 패권국 스파르타가 느낀 두려움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기술(記述)한 데서 따온 표현입니다.

이달 27일 100세 생일을 맞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1923~) 전(前) 미국 국무장관도 가세했습니다. 그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1차 세계대전 직전 같은 상황에 있다. 인류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잘 지내느냐에 달려있다. 5~10년 안에 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2018년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TED 콘퍼런스에서 강연하는 장면/조선일보DB

◇미·중 전쟁 “피할 수 없다” vs “피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미·중(美中)이 아닌 제3국인인 케빈 러드(Kevin Rudd·65) 전 호주 총리의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는 2022년 3월 <피할 수 있는 전쟁(The Avoidable War)>이란 저서를 냈습니다. 제목에서 보듯 ‘미·중 전쟁은 불가피(不可避)하다’는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의 책과 정반대로, 러드의 책은 ‘미·중 전쟁은 피할 수 있고 피하도록 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그는 그 이유를 책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1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인 11만 7000명과 호주인 6만명을 포함해 4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세계 총인구의 약 3%인 8500만명이 사망했다. 21세기 산업적 규모에서 펼쳐질 미·중 전쟁은 전 세계에 엄청난 참화가 될 것이다.”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가 2022년 3월 발간한 <피할 수 있는 전쟁> 영문판. 총 4020여쪽 분량이다./Amazon

그러면서 그는 미·중 전략적 경쟁과 관련한 10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①1938년 연합국이 히틀러에게 체코를 할양한 것 같은 미국의 대(對)중국 양보 ②'제2의 미드웨이 해전’ 같은 미국의 승리 ③나폴레옹의 워털루 패전 같은 미국의 패퇴 ④'제2의 한반도’처럼 미·중이 대만을 분단 ⑤우크라이나처럼 미군의 지원을 받은 대만군이 중국에 맞서 싸움 ⑥'제2의 걸프전’처럼 연합군이 중국에 맞서 싸워 단기전으로 종결 ⑦센카쿠열도를 둘러싼 미·일 연합군과 중국의 전쟁 ⑧북한을 놓고 미·중 전쟁….

한국이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여럿이고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이 많아 한국 독자들도 실감(實感)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선지 책은 지난해 재고(在庫)가 금방 소진될 정도로 잘 팔렸습니다.

케빈 러드 전 총리의 <피할 수 있는 전쟁> 중국어판 표지. 대만에서 발간됐고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추천사를 담고 있다./Amazon

그도 그럴 것이 1957년 호주 퀸즈랜드 출생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26대 호주 총리(總理)로 재임한 케빈 러드는 세계 어느 지식인·리더 보다 미국과 중국 지도부의 ‘속내’와 ‘세계관’에 정통합니다. 호주국립대(ANU)에서 중국학을 전공하고 최우등 졸업한 그는 ‘루커원(陸克文)’이라는 중국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14세부터 ‘중국 탐구’...50년간 실천궁행

2007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중국어로 대화하고, 중국어로 연설도 해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후진타오는 러드가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를 만나며 챙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러드 전 총리는 10대부터 반세기 가까이 ‘중국 탐구’에 매진하는 실천궁행(實踐躬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14세때인 1971년 10월 ‘중공이 국제연합(UN) 회원국으로 가입했다’는 신문 1면을 어머니에게서 건네받아 읽으면서부터 중국과 미·중 관계에 빠져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 1년동안 대만국립사범대학에 유학해 만다린(Mandarin·중국 표준말)을 더 연마했고 타이베이 약물재활센터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중국 문화와 관습을 익혔습니다. 1981년 호주 외교부에 들어가 1984년부터 3년간 베이징·상하이 등에서 외교관으로 일했습니다.

1988년 정계에 입문해 노동당 대표를 거쳐 호주 총리가 된 러드는 퇴임후 2010년 9월부터 2012년 2월까지 호주 외무장관을 지냈고 2013년 6월 총리로 복귀했다가 3개월만에 물러났습니다.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만나 반갑게 웃고 있다.

1980년대 중반 푸젠성(福建省) 샤먼(廈門)시 부시장이던 시진핑(習近平) 현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교류를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시진핑을 8차례 이상 1대 1로 만났습니다. 당연히 그는 시진핑의 생각과 사상(思想)을 꿰뚫고 있습니다.

러드 전 총리는 자녀(2남1녀)들에게 모두 중국어 공부를 시켰고, 그의 사위도 중국계 호주인입니다. 그만큼 중국을 중시(重視)하고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덮어놓고 중국을 편드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한 예로 그는 중국 반체제 인권 운동가인 웨이징성(魏京生·1950~ ) 연구 논문을 썼습니다. 저서 <피할 수 있는 전쟁>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중국 반체제 운동가 웨이징성. 1950년에 태어난 그는 문화혁명기간 중 홍위병으로 활동했으나 이후 마오쩌둥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중국에 서구식 민주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감옥 생활을 하다가 1997년 11월 16일 그는 건강상의 문제로 석방돼 미국으로 강제 추방당했다./조선일보DB

◇中과 가깝지만 ‘맹목적 편들기’ 거부

“나는 1989년 6월 4일 인민해방군 소속 탱크가 밀려와 유혈 진압을 하기 직전 5월 하순 1주일동안 베이징 시내 천안문(天安門)광장에 모여있던 시위대를 헤집고 청년들과 대화했다. 나는 그 수 천명의 중국 청년들의 얼굴을 지금도 떠올린다. 그들의 영혼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다. 나는 우리가 중국 인권(人權) 문제를 간과하거나 잊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중국이 호주산(産) 석탄·소고기·와인·보리 등의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며 경제 보복을 취한데 대해, 그는 “중국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며 비판합니다. 정계를 은퇴한 그는 2014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의 시니어 펠로(Senior Fellow)로 미·중 관계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해 10월에는 뉴욕에 있는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ia Society Policy Institute) 초대 소장에 취임했고 2021년부터 올해 2월까지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일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외교안보 저명인사들과 오찬하고 있다. 케빈 러드 아시아소사이어티 회장과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이 윤 대통령의 양 옆에 앉아 있다./뉴스1

◇60세부터 시진핑 연구...5년 만에 박사학위

그는 60세이던 2017년 영국 옥스포드대 지저스(Jejus) 칼리지 박사과정에 등록해 5년 만인 2022년 ‘시진핑의 이념적 세계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총 420쪽 분량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그는 “시진핑은 덩샤오핑식 개혁·개방 노선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이념적 세계관을 결정짓는 것은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적 민족주의(China’s new Marxist nationalism)”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주미(駐美) 호주대사로 워싱턴 DC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포린 어페어지' 2022년 11/12월호에 게재된 케빈 러드 전 총리의 '시진핑 사상' 관련 기고문/인터넷 캡처

<피할 수 있는 전쟁>에서 그는 ‘관리된 전략적 경쟁(Managed Strategic Competition)’을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미·중 양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레드라인(red-line)을 정해 놓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고위급 차원의 채널을 잘 가동하면 미·중 충돌을 피할 수 있다”고 그는 조언합니다. 러드 전 총리의 분석입니다.

“2020년대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매우 위험스럽게 살아야 하는 결정적인 10년이다. 두 나라가 핵심 이익을 배반하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게 ‘관리된 전략적 경쟁’이다. 이것의 핵심 논리는 위기와 갈등, 전쟁 위기를 극소화하는 정치적 가드레일(guardrail)들을 만들어 놓돼, 경제·외교·안보 등 최대한 넓은 영역에서 미중(美中) 경쟁을 극대화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자유주의 진영의 중국 전략으로 채택돼 가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이 이달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종료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de-coupling·분리)하려는 게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 한다”고 말한 게 증거입니다. 미·중은 최근 외교·국방·통상 분야의 고위급 소통 채널 재가동에 들어갔습니다. 평생에 걸친 러드 전 총리의 중국 탐구가 호주의 국가이익을 넘어 세계 평화·공영(共榮)에 이바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싱가포르의 역대 총리들 사진 왼쪽부터) 초대 리콴유 총리, 2대 고촉통 총리, 현재 총리인 리셴룽. 리셴룽은 리콴유의 장남이다./조선일보DB

◇32세부터 중국어 평생 공부한 리콴유

케빈 러드에 비견되는 또 한 명의 정치 지도자는 8년 전 타계한 고(故) 리콴유(李光耀·1923~2015) 싱가포르 총리입니다.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해 온 객가인(客家人)의 후손인 그는 혈통적으로 한족(漢族)입니다. 그는 그러나 53세때인 1976년 5월 10일부터 23일까지 17명의 장·차관들을 이끌고 간 첫 중국 방문시 모든 회담에서 영어 사용을 고집했습니다.

1950~60년대 싱가포르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을 획책한 중국을 선량한 이웃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리콴유는 중국을 경원시(敬遠視)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 공부와 연구에 진지함과 열성을 다 했습니다. 32세부터 만다린(중국 표준말) 공부를 평생한 그는 초기에는 매주 두 차례, 나중에는 한 차례 중국어 개인 과외를 받았습니다. <나의 중국어 학습기(Keeping My Mandarin Alive)>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만다린(중국 표준어) 학습 관련 인터뷰와 방법론 등을 담은 단행본 <나의 중국어 학습기(Keeping My Mandarin Alive)>. 2005년에 나왔다./Amazon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영어 외에 중국어와 말레이 등 다언어주의(bi-lingualism)를 주창하고 실천했다.

“나는 영어, 말레이어 신문과 별도로 매일 10~15분 동안 중국어 신문을 읽는다. 사설(社說)이나 중국 관련 중요 기사는 몇 번씩 큰 소리로 말한다. 면도나 양치질을 할 때는 테이프를 틀어 놓고 중국어 듣기 훈련을 한다. 중국어를 배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연설이다. 연설은 중국어 지식을 내재화하고 최대화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매년 中 방문...지방까지 샅샅이 훑어

리셴룽(李顯龍) 총리를 포함한 세 명의 자녀 모두 초등학교 때부터 중국어를 배우도록 한 그는 1990년대까지 거의 매년 중국을 찾았습니다. 2010년까지 30여차례 중국 방문 기록은 전 세계 국가 지도자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1970~80년대 중국을 찾을 때에는 간쑤(甘肅)·구이저우(貴州) 같은 지방 벽촌과 청나라 건륭제의 여름 별장인 청더(承德), 양쯔강의 삼협곡(三峽谷)까지 샅샅이 훑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참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1~2주일 현장을 돌고 서민들도 만나야 한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1978년 11월 싱가포르를 생애 최초로 방문한 덩샤오핑(오른쪽) 당시 중국 부총리를 리콴유 당시 싱가포르 총리가 공항에 영접나와 악수하고 있다./조선일보DB

1978년 11월 덩샤오핑 당시 부총리가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리콴유는 덩샤오핑의 의자 옆에 청백색 사기(砂器)로 된 타구(唾具·가래나 침을 뱉는 그릇)를 놓도록 했습니다. 숙소인 이스타나 관저(官邸)는 냉방 때문에 금연 시설이라는 규정을 깨고 덩샤오핑을 위해 재떨이를 뒀습니다. 중국 개별 지도자 성향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배려 조치였습니다.

2007년 말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한 시진핑(習近平)을 베이징에서 만난 뒤 리콴유는 “그는 고난 극복과 감정 자제력이 뛰어난 만델라형(型)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식견은 30년 넘게 중국 리더들과 교유하면서 쌓은 통찰력과 지피지기(知彼知己) 노력의 산물이었습니다.

◇親美 국가지만 中과 합동군사훈련도

덕분에 싱가포르는 동남아 국가 가운데 중국과 가장 늦은 1990년에 수교했지만, 두 나라는 각별한 관계가 됐습니다. 매년 200~300여명의 고위 중국 공산당원과 관료·시장(市長)들이 견학차 싱가포르를 찾았습니다. 1975년부터 대만 남부 3개의 훈련장에서 육군 교육과 전술 훈련을 하는 ‘싱광(星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싱가포르는 2015년과 2021년 2월, 2023년 4월에는 중국 해군과 합동 훈련을 벌였습니다.

물론 싱가포르는 동남아에서 둘도 없는 친미(親美) 국가입니다. 싱가포르 항구에는 1년 내내 미군 군함들이 상시 정박하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중국과도 돈독한 선린 우호(善隣 友好)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군과 싱가포르 군대 병사들이 합동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조선일보DB
아시아 순방 중인 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연방하원의장이 2022년 8월 1일 첫 방문지인 싱가포르에 도착해 리셴룽 총리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로이터 뉴스1

리콴유는 미국과 중국이란 두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나라가 어떻게 운신(運身)할 것인가에 대한 전범(典範)을 보여주었습니다. ‘냉철하고 끈질긴 중국 공부’로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적(敵)이던 중국을 ‘친구’로 만들고 자국 이익을 극대화했습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친구의 적(敵)이 나의 적이란 법은 없고, 양쪽 사이에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 봅니다. 2017년 5월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시종일관 친중(親中)을 넘어 종중(從中)에 가까운 외교 노선을 걸었습니다. 지금 정부는 중국에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만 ‘헤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5년 단위 정권 마다 중국에 ‘밀물 썰물 외교’를 하는 모습입니다.

◇韓 사활, ‘중국 전략가’에 달려 있어

한국은 케빈 러드의 호주나 리콴유의 싱가포르 보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훨씬 더 가깝습니다. 경제·군사·외교 방면에서 한중(韓中) 관계의 비중은 두 나라에 못지 않습니다. 중국에 당당하게 ‘할 말’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냉탕온탕식 접근’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중국의 강점과 약점에 해박하고 유사시 중국의 급소(急所)를 정확하게 찌를 수 있는 역량있는 전문가들이 필수적입니다.

10대 중반과 30대 초반부터 ‘중국 공부’를 결심하고 평생 실천한 케빈 러드·리콴유 만큼은 아니라도 두 사람에 버금가는 중국에 대한 열정과 실력, 통찰력을 가진 ‘전략가형 인재’ 말입니다. 한·중(韓中) 관계가 냉랭해질수록, 우리의 중국 연구는 더 뜨겁고 더 깊고 더 넓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사활(死活)은 한미(韓美) 관계의 강화·격상 못지 않게 정치·외교·산업·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중국 전략가(戰略家)’를 갖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대통령실 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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