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수자(LGBTQ)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진영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보수 성향이 짙은 일부 주(州)가 성 소수자 관련 교육과 도서 열람에 제동을 걸자, ‘진보 텃밭’ 지역은 성 소수자 친화적 법안을 신설하는 등 맞서는 모양새다. 내년 대선에 출마하는 유력 주자들은 ‘성 소수자 자긍심의 달(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인 6월을 맞아 성 소수자 진영 대결에 본격 가세하고 있다. 성 소수자 문제는 인종 문제와 함께 내년 대선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13일(현지 시각) CNN·AP 등에 따르면, J. 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이날 성 소수자나 인종 문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학교와 공공 도서관이 특정 도서를 금서(禁書)로 지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금서 지정 금지법’에 서명했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금서 지정 금지법 제정이 “미 50개 주 가운데 처음”이라고 했다. 이 법은 “출처나 배경, 제작에 기여한 사람의 견해 때문에 자료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도서관협회(ALA)의 ‘도서관 권리장전’을 채택하거나 비슷한 서약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이 발효되는 내년 1월 1일부터 금서를 지정하는 학교·공공 도서관은 주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일리노이는 민주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자 민주당 텃밭이다. 프리츠커 주지사는 호텔 체인 ‘하얏트’를 소유한 유대계 가문의 유산 상속자로 내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조 바이든 대통령(민주당)의 후원 그룹을 주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이오와·미주리 등 보수 성향 주에서 성 소수자나 인종을 주제로 한 도서를 배치한 도서관 사서를 형사 고발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등 검열 강화에 나서자, 진보 성향 주에서 맞불을 놓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3월 ALA는 “지난 1년간 학교·공공 도서관 도서 검열 요구가 1269건에 달해 20년 만에 최고치였다”고 밝혔다.
트랜스젠더도 진영 전쟁이 치열한 이슈 가운데 하나다. 진보 성향 캘리포니아주는 올 1월부터 성 전환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주에 거주하는 미성년자가 캘리포니아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반면 앨라배마주는 지난해 5월 의사가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성 정체성 확인을 돕는 행위를 금지했다.
유력 대선 주자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로 분류되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작년 공립학교의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하는 ‘게이 언급 금지법(Don’t Say Gay Bill)’에 서명했고, 지난 3월에는 성 정체성 관련 수업 결정권을 학부모에게 넘기는 ‘부모 권리 보호법’도 통과시켰다. 성 소수자에 우호적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백악관에서 열린 프라이드 먼스 기념식에서 “성 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법안들은 미국의 기본 가치와 자유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