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크 조코비치의 프랑스 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우승에 이어 니콜라 요키치가 소속된 미국 프로농구(NBA) 덴버 너기츠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자, 동유럽 세르비아의 스포츠 파워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화약고’로 불리던 발칸 지역 정세도 부각되고 있다.

노바크 조코비치가 지난 파리 오픈 테니스 1회전 후 카메라에 '코보소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다. 폭력을 멈추라'는 글을 쓰고 있다. /NBC TV 화면 캡처

조코비치는 파리 오픈 첫 경기 승리 뒤 카메라 렌즈에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다. 폭력을 멈추라”는 글을 써 논란을 불렀다. 최근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 주민과 알바니아계 주민 간 충돌이 격화하고 있는데, 코소보가 세르비아의 일부라는 주장으로 읽힐 수 있는 메시지를 낸 것이다. 코소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조코비치의 징계를 요청했다.

코소보 정부는 13일 북부 도시 즈베찬에서 친 세르비아 조직 간부를 체포했다. 지난달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즈베찬 시청에 난입하려 할 때 이를 제지하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평화유지군과 경찰을 공격한 혐의다. 당시 충돌로 나토군 30명, 주민 52명이 다쳤다. 코소보 내 긴장이 고조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는 3500명이던 코소보 주둔 평화유지군 병력에 700명을 긴급 증원키로 했다.

그래픽=이철원

면적(1만908㎢)은 한반도의 20분의 1이고, 인구(180만명)는 서울의 5분의 1인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치 지역으로 있다가 2008년 독립했다. 1991년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붕괴가 시작돼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이 차례로 독립하고 유고슬라비아 후신 격인 세르비아만 덩그러니 남는 과정에서 코소보가 가장 마지막으로 떨어져 나왔다.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한국·일본 등 서방 국가 대부분이 정식 국가로 승인했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에도 국기와 정식 국호를 앞세우고 출전한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코소보 북부 도시 즈베찬에서 방패를 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평화유지군이 시청 청사 진입을 시도하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막아서고 있다. 최근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간 충돌이 격화하면서 나토는 주둔군을 긴급 증원하기로 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코소보는 옛 유고를 이루던 나라 중 영토·인구·국력·경제력이 가장 처진다. 그러나 복잡한 지역 특성 때문에 ‘화약고 속 화약고’로 거론돼 왔다. 주민의 주축은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계(91%)이지만, 북부 세르비아 접경 지역은 기독교를 믿는 세르비아계가 다수를 이룬다. 이들은 코소보 정부에서 발급한 자동차 번호판 부착을 거부하는 등 강력한 반정부 성향을 보여왔다. 특히 지난 4월 시장 선거 후 갈등이 격화했다. 세르비아계 유권자들의 집단 투표 보이콧 속에 출마한 알바니아계 시장이 당선되자,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당선자의 출근을 막으려고 시청으로 몰려가면서 충돌로 번졌다. 인접국 간 영토·민족 갈등이라는 점에서 코소보 사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빼닮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1990년대 초·중반 저강도 무장투쟁을 벌이던 코소보 독립 세력은 유고 연방 구성국들의 잇따른 독립 쟁취를 지켜보며 투쟁 강도를 높여갔다. 코소보만큼은 자국령으로 두려는 세르비아가 1998년 코소보를 침공했다. 이 과정에서 알바니아계 주민 상당수가 학살되는 ‘인종 청소’ 비극이 벌어졌다. 이에 1999년 나토가 대대적 공습 작전을 벌여 세르비아군을 코소보에서 격퇴하고 이후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한때 5만명에 이르던 병력은 최근 3500명까지 줄어들었지만 이번 충돌로 4200명으로 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