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허페이에 위치한 한 배터리 제조회사의 생산 라인 모습. photo 뉴시스

중국 기업인 고션하이테크는 배터리 업체다. 생산량으로 따지면 세계 8위 기업이다. 2022년 10월 이 업체는 미국 미시간주 메코스타카운티에 위치한 빅래피즈 지역에 2차전지의 핵심 부품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약 27만9000㎡ 부지에 공장을 짓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투자액만 23억달러다. 미시간 주정부는 이를 두고 ‘엄청난 경제적 기회’라고 강조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2350개나 되니 허허벌판인 이곳을 떠나려고 하는 주민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발표 때만 해도 좋은 기회라고 환영하던 지역 커뮤니티의 여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변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경색되고, 기술을 둘러싼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배터리가 중요한 산업이긴 하지만 중국 기업이 미국 땅을 사들여 진출하는 것이 국가 안보에 문제가 없는지를 묻기 시작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산업의 문제는 곧장 정치의 문제로 전환됐다.

지역 여론에 불을 붙인 건 ‘미시간 전략기금 이사회’가 고션하이테크의 공장 건설에 1억7500만달러의 인센티브를 지원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다.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주 상원 세출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이미 2022년 말 미시간주는 5억달러가 넘는 30년치 세금을 감면해주겠다는 지원책을 발표했다. ‘중국 배터리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세금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게 말이 되냐’는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션하이테크는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지만 최대주주는 독일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은 고션하이테크의 지분 26.47%를 가지고 있다. 지난 5월 10일 폭스바겐은 중국 밖 시장에 공급하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공급 업체로 고션하이테크를 지목했다. 두 회사 사이의 관계는 이 정도로 가깝다.

대주주는 독일, 경영권은 중국

반면 독일 자동차 회사가 최대주주라지만 고션하이테크를 중국 기업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쪽에서는 반대 움직임이 거셌다. 지난해 미시간 주지사 선거에서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민주당)에게 패한 튜더 딕슨 전 공화당 후보는 주정부가 고션하이테크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제기한 인물이다.

이 지역 연방 하원의원인 존 물레나르 의원(공화당)도 가세했다. “고션하이테크는 기업 내규에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는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고션하이테크의 정관 9조를 문제삼았는데 이 조항은 ‘회사는 중국 공산당 당헌에 따라 당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중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회사의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물레나르 의원의 주장이다.

지역 커뮤니티도 반대 의견이 늘었다. 국가 안보 때문도 있지만 해당 공장이 들어서는 부지 인근 주민들은 농사를 주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양극재 부품 공장이라는 메가 프로젝트가 가져올 농업 환경의 변화를 염려하는 측면이 강했다. 지역 언론인 ‘브리지미시간’은 “막대한 규모의 배터리 공장이 사용할 많은 양의 물을 고려할 때 잠재적인 환경 피해가 있을 거라고 활동가들이 경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20일 미시간주 상원 세출위원회는 인센티브 승인을 두고 투표를 했다. 결과는 10 대 9, 아슬아슬하게 인센티브 지급이 결정됐다. 미시간주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공화당 의원들이 수천 개의 좋은 일자리를 없애려고 근거 없는 음모론을 퍼트리는 데 시간을 쓰고 있다”며 결과를 환영했다. 이번 고션하이테크에 지급되는 인센티브의 근간이 되는 전략기금은 이전 공화당이 미시간주 다수당일 때 만들었던 유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공화당이 반대하는 기업에 상당액이 넘어가게 됐다.

찬반 양론이 격렬해지자 고션하이테크는 스스로 평가받기로 했다. 미 재무부 산하 외국투자심의위원회(CFIUS)에 자발적으로 관련 문서를 제출했다. CFIUS는 외국인의 투자나 미국 내 부동산 구매가 국가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거래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얻어낸 답변은 “심사 대상이 아니다”였다. 사실상의 승인이나 다름없다는 게 미 언론의 판단이다.

중국 배제와 배터리 수요의 충돌

고션하이테크의 사례가 주목받는 건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할 수 있어서다. 고션하이테크는 폭스바겐이 대주주가 되면서 중국 기업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창업주인 리젠 회장이 여전히 경영권을 쥐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목적은 중국을 배터리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건데 어느 정도 선까지 ‘배제’의 원칙이 적용되느냐는 중요한 지점이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지만 미국에서 생산하는 중국 기업의 배터리라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여러 층의 대립 구도가 존재한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주정부는 좀 더 느슨한 모양새다. 고션하이테크로 홍역을 치르는 미시간주는 전기자동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켄터키, 테네시, 조지아, 네바다주 등 미국 남부의 여러 곳과 경쟁해 왔다. 여기에는 주지사의 소속 정당도 상관없다. 테네시, 조지아, 네바다주는 공화당 주지사를 두고 있다.

반면 주 의원들은 적지 않은 우려를 표한다. 특히 상대가 중국 기업일 때 그렇다. 10 대 9라는 박빙의 투표로 인센티브를 승인한 미시간주 상원 세출위원회에서는 민주당 이탈표가 3표나 나왔다. 공화당 6명과 민주당 3명이 반대편에 섰다. 이들은 정치적 입장상 지역 주민들의 우려를 그대로 안아야 한다. 지역 언론과 인터뷰에서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미시간주 상원의원들은 “지역 주민이 반대하는데 강요할 순 없다” “국가 안보의 문제다” “누구에게 인센티브를 주느냐는 관점에서 우리는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연방 차원에서 공화당은 더욱 강경하다. 고션하이테크와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중국 CATL이다. 국내 기업인 LG엔솔과 글로벌 선두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다. 이 회사는 포드와의 기술 라이선스로 IRA를 회피하려고 한다. 포드가 35억달러를 들여 미시간주에 짓는 공장에 기술제휴를 통해 배터리 생산을 시작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히려 중국 정부 측에서 “핵심 기술이 공유되지 않도록 거래를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의 계약이지만 공화당에서는 이조차 불만스럽다.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포드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미시간주 마샬에 약 25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줄 수 있지만 미국의 지정학적 적수를 우리 심장부로 끌어들일 것이다”라고 지적하며 중국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전략을 ‘트로이 목마’에 비유했다. 공화당 측 스탠스는 이처럼 일관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느슨한 규정 해석이 중국 공산당과 연계돼 있는 기업들에 이익을 줄 수 있는 건 잘못됐다는 거다. 이번 고션하이테크나 CATL의 기술 라이선스 제공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본다.

중국 배터리 공급망을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던 바이든 정부는 동시에 친환경 프로젝트로 전기차 확충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발표한 2030년 전기차 침투율은 50%다. 미 환경청(EPA)은 이보다 더 공격적이라 자신들이 상정한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량을 달성하기 위해서 2030년 60%의 전기차 침투율을 달성하려고 한다.

그런데 중국 배제와 미국의 친환경 프로젝트는 서로 충돌하는 문제다. 전기차를 확충하려면 배터리가 많이 필요하다. 차 가격도 저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기차 제조원가 중 비중이 큰 배터리를 많이, 그리고 저렴하게 공급받아야 하는데 이 때문에 미국 여러 기업은 중국 기업을 파트너로 고려한다. 하지만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지정학적 목적도 달성해야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블룸버그NEF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기차 시장은 2022년 말 75만대에서 2030년에는 602만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지난해 5%였던 미국 내 전기차 비중도 2030년에는 52%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만약 이 숫자대로라면 필요한 배터리 수요는 1670GWh(기가와트시)인데 현재 공급되는 물량은 고작 3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갭을 어떻게 채우느냐가 문제인데, 자국 생태계를 키우기 위해 중국의 우회로를 열어주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현실적 이유다.

‘해외우려집단’에 쏠리는 시선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해외 시장 진출 등에 보수적이고 유럽 쪽은 배터리 수율 안정화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서 중국 기업들만 미국 시장 접근이 어려우면 국내 기업의 지배력이 높아질 수 있을 거라는 낙관론이 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동맹보다는 이익의 관점에서 배터리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최근의 중국 기업의 미국 진출이다”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가 발표할 해외우려집단(FEOC·공급망에서 배제시키려는 집단) 규정을 국내에서는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이현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북미 완성차 시장의 체크포인트로 “LFP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우회적으로 북미 시장 진출이 불가능한 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FEOC의 내용에 따라 배터리 밸류체인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IRA는 해외우려집단에서 추출, 처리되는 광물이 들어간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고션하이테크 사례는 경영권은 중국이 쥐고 있어도 대주주가 중국 자본이 아니라면 해외우려집단에서 제외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낳았다. 중국이 25%의 직·간접적 의결권만 갖고 있더라도 해당 기업을 해외우려집단으로 분류하는 반도체법보다는 관대한 분위기가 엿보인다.

미국 업체들이 중국 배터리 기업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도 백악관 입장에서는 풀기 어려운 부분이다. 미국의 세계 1위 리튬 업체인 앨버마는 중국 여러 곳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다. CATL은 미국 포드와 기술 라이선스를 제공해 공장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테슬라에도 배터리를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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