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이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 /환추스바오

지난 한 달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신상의 의문을 불러일으켰던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25일 전격 해임됐다. 외교부장 임명 7개월 만이다. 후임으론 시진핑 외교정책의 일인자 왕이(王毅)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예상을 깨고 임명됐다. 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베이징에서 회의를 열고 이같이 의결했다.

왕이는 이미 시진핑 체제에서 10년간 외교부장을 맡았다가 지난해 친강에게 자리를 물려준 후 공산당 차원에서 외교 정책을 지휘하는 형태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중국 지도부가 그를 다시 외교부장으로 선임한 것은 중국이 외교정책의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에서 장관급 자리를 역임한 인사가 다시 그 자리로 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친강은 시진핑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다. 외교부 대변인과 주미 대사를 맡으며 영향력을 키워왔던 친강은 지난해 외교부장에 오른 후 서방과의 경색된 외교 관계를 진두지휘 해왔다. 특히 그는 강경한 발언으로 국익과 국민의 민심을 최우선으로 삼는, 거친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를 지휘한 인물로 꼽힌다. 그가 외교 현장에서 뱉어낸 강경한 언어가 대중의 마음을 사면서 다른 외교관들도 그를 본뜬 거친 언행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행보가 시진핑 눈에 들어 ‘헬리콥터식 초고속 승진’을 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외교부장에 발탁됐고, 지난 3월엔 전례에 비해 3년 정도 빨리 국무원 지도부 구성원인 국무위원에 올랐다.

그러던 그가 외교가에서 사라진 것이 지난달 25일이다. 베이징에서 스리랑카·베트남 외교장관과 러시아 외교차관을 만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이달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 회의(4일)가 열리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6일)과 존 케리 미 기후변화 특사(16일)가 중국을 방문하는 등 숨 가쁜 외교 일정이 이어지는데도 친강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11~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장관급 연쇄 회동에 친강이 불참해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만남이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무려 한 달 간의 두문불출이 이어지자 중국 외교가와 금융권에선 친강 낙마설과 아울러 불륜설·간첩설까지 돌았다. 외신들은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감안할 때 외교부장이 한 달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중국에 대한 신뢰도도 낮아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왕이 중국 신임 외교부장/뉴스1

이날 상무위가 이례적인 상황 속에 열림에 따라 그가 일각의 관측대로 사실상 경질됐음이 확인됐다. 원래 전인대 상무위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데 이번 회의는 한 달 만이었다. 특히 사흘간의 회의 내용을 통상 마지막 날에 발표하는 것과 달리 이날 회의는 개회 날 즉각 결론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친강이 지도부에서 정면으로 맞섰거나 절대 누설하면 안 되는 기밀을 유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상무위는 친강의 실각 이유를 별도로 밝히지는 않았다.

친강의 전임에 이어 후임이 된 왕이는 그야말로 외교 정책에 있어서만은 시진핑의 복심(腹心)인 인물이다. 시진핑 체제 출범 직후인 2013년부터 10년간 외교부장을 맡았다. 지난해 당시 69세의 나이에도 ‘칠상팔하(지도부 교체 때 67세는 남고 68세는 퇴임)’라는 관례를 깨고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했다. 한국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어깨를 툭 치거나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 지각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CNN은 “지난달 친강이 모습을 감추고서 외교 현장에 종종 대신 참석했지만, 이미 맡았던 자리로 돌아오게 한 조치는 모두의 예상을 깬 것”이라고 전했다.

왕이가 외교 최일선으로 돌아오면서 중국 외교 정책은 안정감을 찾을 전망이다. 친강의 전랑 방식의 외교는 내부적으론 지지를 받을지 모르나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선 부작용을 일으켜 왔다. 특히 미국과 맞서는 호쾌한 ‘대국(大國)’의 이미지를 펼치고 싶은 중국 입장에선 이런 무례한 태도가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도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