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 이리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배심이 1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성인물 배우와의 관계에 대한 입막음 비용 지급과 관련한 뉴욕 지방검찰의 기소(4월), 정부 기밀문서를 유출하고 불법 보관한 행위에 대한 연방 검찰의 기소(6월)에 이어 세 번째 기소다.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가 이미 내년 대선의 중대한 변수로 떠올랐지만, 이번에 적용된 혐의는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불법행위로 권력을 차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이전 기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평가가 많다. 검찰은 1일 공개한 공소장에 2020년 대선 직후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1·6 사태)과 관련한 혐의 네 가지를 적시했다. 미국 정부를 속이려고 모의, 공무 집행 절차를 방해하기 위해 모의, 투표 인증 지연 등 공무 집행 방해, 국민의 투표권을 침해하려 모의 등이다. 최대 20년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는 혐의다.

잭 스미스 연방특별검사는 공소장에 “피고인(트럼프)은 선거에 패배했으면서도 권력을 유지하기로 결심하고,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정선거라고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렸다”며 “극심한 국가적 불신과 분노의 분위기를 고조하고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약화시켰다”고 했다.

이번에 특검이 적용한 법률 중 하나는 남북전쟁 이후인 1870년에 제정된 ‘연방법 제18장 241조’다. ‘헌법이나 연방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을 상해·억압·위협 또는 협박하기 위해 공모하는 것’은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노예제의 잔재가 남아있던 당시 미국에서 흑인의 투표권을 보호하고자 도입한 것으로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KKK)’을 처벌하는 데 주로 사용돼 ‘KKK법’으로도 불린다.

트럼프에게 이 법을 적용한 것은 “미국 시민들이 연방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자유롭고 공정하게 선거를 치를 권리를 박탈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2020년 11월 3일 대선일 이후 두 달여 동안 트럼프가 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 제도를 어떻게 단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뒤흔들었는지, 1일 공개된 공소장과 그동안의 의회 조사 결과 등을 분석했다.

그래픽=김현국

①선거 결과 부정 및 경합주 압박

선거 직후 트럼프는 “결과를 믿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후 특정 정당으로 표가 쏠리지 않은 경합주를 표적으로 삼아 결과를 뒤집으려고 시도했다. 1만1779표 차이로 패한 조지아주가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조지아 주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1만1780표를 찾아내라”고 협박했다. 다른 주지사, 의원, 고위 공무원들에도 압력을 가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라고 종용했으나 실패했다.

②법무부에 ‘부정선거 조사’ 압박

법무부에는 개표기를 압류하거나 ‘부정선거’ 소송을 제기하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트럼프의 압박으로 국토안보부와 법무부가 조사를 벌이기까지 했으나 부정선거 증거는 찾지 못했다. 윌리엄 바 당시 미 법무부 장관은 선거가 치러진 다음 달 “선거 결과를 변경할 만한 규모의 부정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바를 곧 해임했다.

③선거인단 조작 시도

미 대선은 각 주에서 득표수가 많은 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획득하고, 그 선거인단이 각 주를 대표해 (형식적으로) 다시 한번 투표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트럼프는 접전 끝에 패배한 위스콘신·네바다·조지아 등 7개 주의 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공화당 간부들에게 트럼프를 지지하는 별도의 ‘대안 선거인단’을 뽑으라고 지시했다. 해당 주는 실제로 트럼프에게 투표할 허위 선거인 명부를 만들어 상원에 보냈지만, 위조로 판명돼 공식 개표 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

④펜스 부통령에 ‘선거 결과 확정 연기’ 종용

선거인단 명부 조작에 실패한 트럼프는 ‘선거 결과 확정’ 절차를 노렸다. 각 주의 선거인단 투표를 승인하고 선거 결과를 확정하는 것은 당시 상원 의장을 겸하고 있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권한이었다. 펜스가 끝내 거절하자 트럼프는 “당신은 지나치게 정직하다(too honest)”고 비난했다.

⑤의사당 난입 사태 선동

모든 시도에 실패한 트럼프는 마지막 ‘악수(惡手)’를 던졌다. 지지자들에게 의사당으로 쳐들어가도록 선동한 것이다. 2021년 1월 6일 오전 6시,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펜스 부통령이 우리를 위해 (선거 결과 확정 거부를) 해낸다면, 우리는 대통령직을 차지할 수 있다”고 올렸다. 이에 지지자들은 선거 확정 절차가 이뤄지는 의사당으로 몰려들었다. 이후에도 트럼프는 10여 차례 트위터를 통해 지지자들을 부추기는 메시지를 유포했다. 스미스 연방 특별 검사는 공소장에서 “1·6 의회 난입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었다”며 “그 공격은 피고(트럼프)의 거짓말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했다. 초유의 의사당 난동으로 5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금까지 1000여 명이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