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작년 7월 8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에서 여성이 두툼한 외투를 입고 털모자에 목도리를 두른 모습. 남반구에 위치한 이곳의 8월은 북반구의 2월과 비슷한 한겨울에 해당하지만, 올해엔 기후변화로 낮 최고기온이 30도에 달하는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아래사진은 지난 2일(현지 시각) 부에노스아이레스 공원에서 남녀가 여름 운동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고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도 긴팔을 입거나 두꺼운 외투를 들고 나선 이들이 적잖이 보였다. 긴팔 차림의 행인들은 땀을 뻘뻘 흘렸다. 남반구 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8월 초는 계절상 한겨울이다. 북반구의 2월과 비슷한 시기다. 하지만 이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온은 도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높은 30.1도(8월 초 기준)를 기록했다. 종전 기록인 1942년 24.6도를 훌쩍 뛰어넘는 이상 고온 현상이 도시를 덮쳤다.

한 주 전까지만 해도 패딩 점퍼나 외투를 입어야 할 정도로 날씨는 서늘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시내 공원엔 웃통을 벗고 일광욕이나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여지없는 여름의 모습이었다. 테라스에 말려 놓은 빨래는 1~2시간 사이 빳빳하게 말랐다. 다음 날 기온은 다시 10도 정도로 내려가며 겨울에 더 가까운 날씨로 돌아갔다. 하지만 8월 초 아르헨티나를 덮친 더위의 충격은 시민들을 혼란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반구 국가 전역의 8월 기온이 전반적으로 예년보다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남반구에 ‘뜨거운 겨울’이 닥친 것이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남미 다수 지역에서 예년보다 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전반적인 지구온난화에 더해 지난달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4년 만의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페루 앞바다 동태평양에서 지난 3월부터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평년보다 2~3도가량 올랐다. 3년간 지속된 라니냐 동안 해수면 아래 갇혔던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처럼 더워진 수온은 남미 지역의 대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지역은 페루와 에콰도르 연안이다. 7~8월 평년 최고기온이 19도인 페루 수도 리마는 올 7~8월 기온이 20~25도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엔 8월 초에 강풍을 동반한 흐린 날씨가 자주 발생했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해가 내리쪼이는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점도 차이다. 페루 지질학자인 파트리시오 발데라마는 “올해 8월은 겨울 외투를 집어넣고 여름 옷을 꺼내야 할 것”이라며 겨우내 더위가 지속될 것을 전망했다. 이로 인해 다른 해와 달리 리마 해변에서 겨울임에도 아이스크림 판매가 활기를 띠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공식적으로 ‘엘니뇨 시작’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난 현재 엘니뇨의 여파는 페루를 기점으로 남미 남쪽과 내륙으로 뻗으며 퍼져나가고 있다. 페루 남쪽에 있는 칠레도 이상 고온 현상을 겪고 있다. 지난 1일 칠레 중부 비쿠냐는 칠레 역사상 가장 높은 8월 기온인 38.7도를 기록했다. 또한 지난주 칠레 다수 지역에선 기온이 30도를 넘기면서 폭염주의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한겨울에 한파가 아닌,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내륙 지역인 파라과이·볼리비아·브라질 서부도 ‘더운 겨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파라과이 기상청은 파라과이 전역의 지난주 최고 기온이 26~32도로 평년보다 8~10도가량 높았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극한 기온을 추적하는 기후학자 막시밀리아노 에레라는 CNN에 “아르헨티나 북부, 파라과이, 볼리비아, 브라질에서 40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남미가 사나운 겨울 폭염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사 로하스 칠레 환경부 장관도 이 같은 남미의 이상 고온 현상을 언급하며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날씨는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 추세와 엘니뇨 현상이라는 두 가지 현상이 겹치며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니뇨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올 하반기와 내년까지 남미에서 발생할 자연재해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역별로 다양한 ‘이상(異常) 기후’가 나타나는데 페루와 에콰도르 등 태평양 연안에는 폭우, 콜롬비아와 칠레 일부 지역에는 가뭄을 초래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안데스 등 고산 지역에선 눈사태,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대규모 산불 발생 가능성이 우려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엘니뇨의 영향에 따른 홍수와 가뭄 등이 남미 지역 경제에 3000억달러(약 392조원)의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