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 시각) 리비아 북동부 데르나의 거리가 폭풍우 '다니엘' 영향으로 폐허가 된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리비아 동부를 강타한 폭풍우와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6000명을 넘어섰다. 12일 리비아 정부와 적신월사 등에 따르면 리비아 동부 연안 항구도시 데르나에서만 최소 5300명이 숨졌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도 1만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10만명)의 15%가 물에 휩쓸려 죽거나 실종된 것이다.

현지 당국자는 “여전히 많은 시신이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갇혀 있거나, 지중해로 떠내려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AP에 밝혔다.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기록될 이번 폭풍우·홍수는 기후변화에 정치 혼란이라는 인재(人災)가 결합돼 빚어진 복합 재앙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재난은 이달 초 동유럽에 큰 폭우 피해를 입힌 열대성 폭풍우 ‘다니엘’이 10일 리비아 동부에 상륙하면서 시작됐다. 열대성 저기압은 수온이 높아질수록 더 강력해지는데, 올해 지중해 해수면 온도가 예년보다 2~3도 높은 이상 고온을 보이면서 전례 없는 폭우가 쏟아졌다. 국토의 90%가 사막인 리비아는 지중해에 면한 북부 지역은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12일 리비아 북동부 항구도시 데르나 시가지 모습. 이틀 전 불어닥친 폭우와 홍수로 폐허가 됐다. /연합뉴스
이번 폭풍우와 홍수로 최소 6000명이 사망하고 1만명이 실종됐으며, 4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진은 홍수 피해를 당하기 전 데르나 시가지 /X
그래픽=김성규
강풍으로 반파된 건물 앞에서 구조대원들이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그러나 사망자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결정적 요인은 댐의 붕괴다. 현지 당국에 따르면 데르나 남부의 댐 2곳이 붕괴하면서 순간적으로 수위가 3m까지 올라가 상당수 주민이 제대로 피할 겨를도 없이 익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정부가 정상적으로 기능해 댐을 비롯한 치수 시설을 제대로 유지 보수했다면 재앙적 인명 피해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아랍권 국가들의 민주화 시위) 여파로 벌어진 반정부 시위로 42년간 이어졌던 무아마르 카다피 철권통치가 종식됐다. 이듬해에는 다당제 자유선거가 실시됐다. 그러나 정국 주도권을 두고 군벌 간 갈등이 격화돼 내전에 돌입했고, 서부의 리비아 통합 정부(GNU)와 동부의 리비아 국민군(LNA)으로 쪼개졌다. 국제사회도 자국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 세력이 엇갈려 정치적 혼돈은 심화됐다. 서방과 튀르키예 등이 GNU를 지지한 반면, 러시아·이집트 등은 LNA를 도왔다. 내전 격화로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테러 단체의 온상이 됐다. 이번 홍수 피해 지역은 LNA 장악 지역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데르나의 병원 밖에 쌓여 있는 시신 수십구는 한 차례 폭풍우가 수년간 내전으로 침식된 리비아의 기반시설과 국가기관을 얼마나 빠르게 압도했는지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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