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에 이스라엘이 즉각 보복 공격에 나서고 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를 폭격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이 신(新)중동전쟁 수준으로 확전될 위험이 커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8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길고 어려운 전쟁에 진입했다”며 전쟁 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가자지구를 폭격하며 ‘철(鐵)의 검’이라고 명명한 보복 공격을 시작했다.
이날 충돌로 이스라엘(8일 오후 11시 기준)에서 군인과 민간인 등 사망자가 최소 600명 나왔고 팔레스타인 사망자도 313명에 달했다. 부상자를 합치면 사상자가 4700명에 육박하는 등 인명 피해는 계속 커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8일 “이번 공격은 1973년 ‘욤키푸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을 겨냥한 최악의 공격”이라고 말했다. 이집트·시리아가 주축이 된 이슬람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한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최종 승리를 거뒀으나 군인 2500명이 전사하고 8000명이 부상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7일 하마스 무장 대원들은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사이에 설치된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곳곳으로 침투했다. 22개 지역에서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하고 인질 최소 57명을 가자지구로 끌고 갔다. 이 과정에 중동 최강 군사·첩보 강국으로 꼽히던 이스라엘은 아무런 방비 없이 하마스의 공격에 노출됐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미사일 방어 시스템 ‘아이언 돔’은 곳곳이 뚫렸고 첩보 조직 ‘모사드’ 또한 하마스 기습 가능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마스는 ‘알아크사 홍수’라고 이름 붙인 이번 공습에 대해 “동(東)예루살렘 내 이슬람 성지를 훼손하고,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팔레스타인을 탄압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정상화 기조를 원치 않는 이란이 배후에 있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를 중재해온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지원을 약속한다”고 8일 밝혔다.
유대교 안식일인 이날 오전 가자지구 하마스 포대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최소 5000발이 발사됐다. 이 중 상당수는 가자지구에서 동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 방향으로 날아갔다. 초막절(이스라엘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로 모여 있던 이들이 많아 피해를 키웠다.
미사일과 로켓포 공격에 특화된 하마스 내 알카삼 여단의 주축 미사일인 M-73(사거리 80㎞), S55(사거리 55㎞), R160(사거리 160㎞) 등 중장거리 미사일들이 내리꽃히는 지점마다 굉음과 함께 불꽃이 일어났고 주택과 상점 건물이 파괴됐다. 최강의 첩보력을 과시하던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예상하지 못했던 새벽 기습 공격에 주민들은 공포에 질려 거리로 달려나왔다. 미사일 공격에 더해, 하마스 및 이들과 연합한 가자지구의 또 다른 무장단체 ‘이슬라믹 지하드’ 대원 300여 명이 이스라엘 본토로 침투했다. 장기간 이어진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로 지형지물을 훤히 꿰고 있던 이들은 오토바이와 트럭을 타고 장벽을 넘거나 뚫어 이스라엘로 진입했다.
무장 병력이 난사한 총탄으로 피습 지역 곳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스라엘 영토에 발을 들여놓은 무장세력은 거침없었다. 경찰서 등 관공서와 협동농장 키부츠 등을 급습했다. 동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철야로 열리던 음악 축제 행사장에도 난입해 민간인 등을 무작위로 납치했다. 이날 소셜미디어엔 하마스 및 이슬라믹 지하드로 추정되는 무장 병력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 또는 양발이 묶인 채 얼굴에서 피를 흘리는 맨발 차림의 여성 등을 무자비하게 끌고 가는 장면이 올라와 충격을 줬다. 외신들은 끌려간 이스라엘군과 민간인들은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을 막기 위한 ‘인간 방패’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48년 건국 후 벌어진 아랍 진영과의 세 차례(1~3차 중동전쟁)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후 벌어진 팔레스타인과의 크고 작은 무력 충돌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앞세워 진압했던 이스라엘은 이날 하마스의 공습으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으로 평가받는 베냐민 네탸나후 정권은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언하고 보복 공격을 단행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피습 직후 낸 메시지에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역량을 파괴하고 이들이 배치됐거나 숨어있는 사악한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다”며 ‘궤멸적 복수’를 공언했다. BBC는 “이후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으로 하마스의 전투원과 무기가 모여 있다고 알려진 11층 ‘팔레스타인 타워’ 등 빌딩 여럿이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대대적 공세에 오랜 교전 경험을 축적한 하마스가 ‘지구전’으로 버틸 경우 지구촌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두 곳의 화약고에서 장기전을 치르는 상황이 된다. 문제는 이번 싸움이 온건 성향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통치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까지 확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는 벌써부터 현실이 되고 있다.
8일 서안지구와 비교적 가까운 이스라엘 북쪽 레바논에 본거지를 둔 헤즈볼라가 골란 고원 내 이스라엘 점령지를 향해 박격포를 발사했다. 무장 단체들의 잇따른 발호는 중동 전체를 불안으로 몰고 가 세력이 급속도로 위축된 IS(이슬람국가) 등 극단주의 테러 단체들의 연쇄적 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측 간 교전이 격화하면서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을 오가는 항공편이 무더기로 취소되고 공항 운영은 사실상 중단됐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이번 사태로 인한 현지 교민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