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중국 당국과 관련된 수백개 소셜미디어 계정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된 각종 허위 정보를 자체 생산해 전파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태평양 진출 시도 등에서 미국을 견제하고 인터넷 여론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고 영미 언론은 분석했다.
4일 영국 싱크탱크 전략대화연구소(ISD)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RT 방송은 지난달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가 하마스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주장과, 가자지구 병원 폭발은 미국이 이스라엘에 공급한 폭탄에 의한 것이라는 등의 검증되지 않은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 중국 계정에서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관련 다수의 허위 주장들이 발견됐다. ISD는 페이스북과 X(옛 트위터)에서 러시아 정부와 관련된 계정 623개와 중국 정부 관련 계정 369개의 지난달 7~18일 활동 내용을 분석해 지난달 25일 발표했다.
ISD의 분석에 따르면, RT는 지난달 12일 소셜미디어 X에 “하마스가 미국이 공급한 무기를 쓰고 있다는 것은 100% 확실하다”는 전직 CIA(미 중앙정보국) 요원의 발언을 게재했다. 앞서 CIA 출신 블로거 래리 존슨은 그 전날 RT와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등에 공급한 무기가 암시장을 통해 하마스에 흘러들어 갔다’고 주장했다. 존슨이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RT는 인터넷 사이트 등에 이를 보도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전파했다.
존슨은 CIA에서 4년가량 일하고 1993년 민간으로 옮긴 인물이다. 서방 언론은 그의 주장을 거의 인용하지 않는다. 영국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존슨은 2008년 미 대선 국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교회 연단에서 인종 차별 발언을 한 녹화 테이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테이프는 공개되지 않았다. 존슨은 2013년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 베트남전에서 민간인을 강간했다는 허위로 판명된 주장을 하기도 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존슨은 오랜 기간 미 정보 당국을 비판하고 러시아를 옹호하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RT는 존슨의 주장을 소개한 기사에 별다른 설명 없이 야간에 항공기에서 화물을 내리는 장면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첨부했다. 마치 무엇을 은밀하게 수송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 사진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인 2022년 1월 25일 우크라이나 보리스필 국제공항에서 미국산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등 미군이 제공한 무기를 하역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마스가 전쟁에서 재블린 미사일을 쓴 적도 없다.
또 케냐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지난달 7일 X에 “하마스가 공개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무기 제공에 감사를 표했다”면서 소총이 담긴 사진 등을 게재했지만, 하마스는 그런 입장을 발표한 적 없고 사진도 직접 관련없는 장면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가 하마스에 무기를 제공했다’는 허위 주장이 퍼진 건 지난달 7일 전쟁 발발 직후부터다. A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하마스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BBC가 보도했다’는 영상 게시물이 러시아 계정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해 지난달 12일 기준 11만 이상의 소셜미디어 조회 수를 얻었지만, 이에 대해 BBC는 “허위 게시물”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언론들은 이스라엘 전장에서 발견된 F-7 로켓추진유탄발사기 등 북한산 무기가 하마스에 공급된 직접적인 증거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8월 이후 100만 발 이상의 포탄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제공한 가운데 러시아가 가자지구 충돌을 계기로 그동안 이뤄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차원의 우크라이나 원조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은 최근 텔레그램 등을 통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공급해온 무기들이 이스라엘에서 (하마스에 의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를 러시아 국영 언론들이 검증 없이 보도했다.
지난달 17일 발생한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 사고에 대해서도 RT, RT아라빅, 스푸트니크 아라빅 등 러시아 측 X 계정들은 “이스라엘 공습”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실어날랐다. 특히 이런 러시아발 주장이 확산한 건 병원 참사 바로 다음날인 지난달 18일부터다. 이슬람권을 분노케 한 알아흘리 참사 초기, 사건이 이스라엘에 의한 것으로 오인케 한데는 러시아 당국의 초기 온라인 선전전이 한몫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스푸트니크 인디아 계정은 지난달 18일 “러시아 군사 전문가에 따르면 (정밀 폭격에 쓰이는 미국산 공대지 무기인) ‘GBU-31 JDAM(합동직격탄)’이 (알아흘리 병원 공격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러시아발 게시물들은 해시태그에 #GazaHospital, #Gaza_under_attack, #IsraelAttack(#가자병원 #가자 공습 #이스라엘공격) 등을 달아 마치 이스라엘 공습으로 참사가 일어난 듯 포장했다. 하지만 서방 정보 당국과 언론들은 알아흘리 참사는 가자지구의 무장 단체의 로켓 오발로 보인다는 다양한 증거들을 발표했다.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과 관련된 선전전에서는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ISD에 따르면, 중국 관영 언론 등과 관련된 중국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미국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반대로 중국 당국은 전쟁 갈등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9일 만평에서 중국이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 비둘기를 놓아주는 반면, 미국은 비둘기를 손에 쥐고 흔드는 모습을 그렸다. 또 ‘중동 지역의 평화’라고 쓰인 비둘기가 미국 국기를 형상화한 그물로부터 벗어나서 날아오르려는 모습을 만평으로 게재했다.
또 중국 측은 서방 매체들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 칼럼니스트 첸웨이화는 X에 “CNN은 이스라엘 민간인의 죽음만 여러 차례 말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ISD는 레바논 무장 단체 헤즈볼라 등을 통해 이스라엘 전쟁에 간접 개입하는 이란 역시 294개의 인터넷 계정을 통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이란 측이)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과 인도주의적 위기, 민간인 사상자를 활용하고 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SD는 “(러시아, 중국, 이란 등) 권위주의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비극과 민간인 고통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폭력을 더욱 부채질하고 허위 및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렸다”면서 “현재 중동 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모으려는 노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란, 러시아, 중국의 정보 캠페인이 양극화에 영향을 주고 민주주의 제도와 국가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온라인 선전과 허위 정보의 홍수가 이전에 본 것보다 더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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