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년 7개월 만에 미국을 찾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맞아 성사된 미·중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의 1인자가 전 세계 IT 본산인 샌프란시스코를 찾자, 테크계 거물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 주석은 15일(현지 시각) 정상 회의 이후 중국 측이 마련한 기업인 만찬을 주재하는데, 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시 주석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앞다퉈 줄을 섰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주로 중국 사업을 확장했다가 미·중 관계 악화로 불확실성에 직면한 기업의 CEO들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CEO·대런 우즈 엑손모빌 CEO 등이 이날 만찬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테슬라는 전체 전기차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만든다. 엑손모빌은 중국 광둥성에 수십억 달러 규모 석유화학 공장 건설을 앞두고 있다. 무역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사업 차질이 불가피하다. 중국 매출이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애플은 지난달 중국을 방문했던 팀 쿡 CEO 대신 대관·홍보를 총괄하는 고위 임원이 만찬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찬 참석 인원은 300명쯤 된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선호하거나 중국 사업 규모가 큰 기업들이 먼저 만찬 테이블을 꿰찼고, 나머지 자리를 두고 모처럼의 기회를 잡으려는 기업들의 ‘표 구하기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의 한 테크 기업 고위 임원은 “APEC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온 이후 대부분 기업들이 중국 정부와 물밑에서 접촉한 것으로 안다”며 “리스트에 없는 기업들은 마지막까지 ‘당일 취소표’가 나올지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만찬 사전 조율에 관여한 베이징 소식통은 “시 주석, 차이치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이 앉는 헤드 테이블은 글로벌 신용카드 회사 비자(VISA), 해외 물류 기업 페덱스(FedEx) 등 중국 사업 규모가 크고 중국 지도자들의 관심이 큰 기업들이 자리를 꿰찬 것으로 안다”면서 “한 금융 기업 CEO는 중국에서 풀어야 할 정치·재무 이슈가 있어 차이 상무위원과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장관) 사이에 앉길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했다. 헤드 테이블 티켓 값은 대형 승용차 가격에 맞먹는 4만달러(약 5200만원)로 알려졌다. 일반 테이블 가격(2000달러)의 20배다.
14일 미국 하원 미·중 전략 경쟁 특별 위원회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무고한 수백만 명의 집단 학살을 조장한 공산당이 주최하는 만찬에 미국 기업들이 수천 달러를 지불하는 것은 비양심적인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지 테크 업계 관계자는 미 정치권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만찬 티켓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였다면서 “미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기업들이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는 점이 증명된 셈”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도 대접만 받을 수 없는 입장이다. 로이터통신은 “만찬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진핑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국에서 사업 기회가 있음을 미국 산업계에 확신시키려 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지방정부 부채 문제로 유례없는 경제난을 겪고 있는 중국은 부진한 외자 유치를 확대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미 바이든 행정부가 올 들어 미국 자본의 대중(對中) 첨단산업 투자를 제한하는 등 공세에 나선 결과, 지난 3분기(7~9월) 중국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118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해외 자본의 자국 기업 지분 투자 등을 집계한 FDI가 중국에서 적자를 기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