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일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인질 석방 및 일시 휴전에 합의했다. 하마스가 지난달 7일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격해 납치해간 인질 약 240명 중 50명을 석방하고,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수감자 150명을 풀어주는 협상안이 22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전체 각료 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날 하마스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승인한 ‘인도주의적 휴전’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양측은 인질·수감자 교환을 위한 나흘간 일시 휴전에 합의했다. 증오의 전투가 이어져 한 달 반 동안 1만5000명 넘는 사망자(이스라엘 측 1400명, 팔레스타인 측 1만4000명)가 나온 피의 전장에 적어도 나흘간은 인질 교환을 위한 불안한 평화가 찾아오게 됐다.
양측 협상은 미국과 카타르의 중재로 진행돼 왔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앞둔 이날 성명을 내고 “환영한다. 매우 기쁘다”며 “(내게) 미국인의 안전 보장보다 우선순위는 없다”고 했다. 풀려나는 인질엔 3세 소녀 애비게일 이던 등 미국인 여성 3명이 포함됐다고 알려졌다. 이던의 부모는 지난달 7일 하마스 공격으로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CNN 등은 “민간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휴전 지속 요구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더 커질 전망”이라면서 “하지만 이스라엘이 인질 교환 이후 ‘하마스 궤멸’을 위한 전쟁을 재개할 뜻을 굽히지 않아 갈등은 언제든 다시 고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의회 표결에 앞서 발표한 동영상 연설을 통해 하마스 절멸, 인질 전원 귀환 등 이스라엘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합의한 나흘간의 일시 휴전 합의는 23일 오전 10시에 발효된다고 알려졌다. 무사 아부 마르주크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은 이날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풀려나는 인질 가운데 대부분은 외국 국적자라고 밝혔다. 석방 인질은 아동 30명과 아동의 어머니 8명, 그리고 다른 여성 12명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휴전 기간 하루당 여성과 아동을 중심으로 10여 명씩, 총 50명 정도를 풀어주기로 했다. 인질 석방 절차에 따라 휴전 기간은 4일보다 다소 길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여성과 미성년 수감자 150명을 풀어주기로 했다. 가자지구에 대한 연료와 인도주의적 지원도 허용키로 했다.
이스라엘 각료회의에서는 21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협상안을 통과시킬지를 놓고 논쟁을 벌인 끝에 일시 휴전에 동의했다. 일부 극우 성향 각료가 하마스와 협상 자체에 반대했지만 다수 각료와 야당은 협상을 지지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가 계속 늘면서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로부터 휴전하라는 압박을 받아 왔다. 가자지구에 잡혀간 이스라엘 측 인질의 가족들도 네타냐후에게 휴전을 하고 인질을 구하기 위한 협상부터 하라고 압박해 왔다. 할머니가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인 아나트 모셰 쇼사니는 이날 CNN과 인터뷰하고 “(협상 타결 소식에) 큰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이 합의는 인질 전원의 석방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며 “더 많은 인질을 풀어주면 교전 중지가 며칠 더 연장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상 타결로 국제사회의 ‘완전 휴전’ 압박은 더 세질 전망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다음 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방문할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날 베이징에서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특별 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적대 행위를 종식하고 즉각 휴전을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의 다른 국가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 러시아가 용병 기업인 바그너그룹을 통해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 단체 헤즈볼라와 그 배후에 있는 이란에 무기를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정부 지시에 따라 이란 및 헤즈볼라에 방공 역량을 제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실제 군사 장비를 제공하는지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