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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前) 대통령은 46명의 미국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특이한 별종(別種)이다. 2016년 11월 71세에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그는 선출직 출마는 물론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2월 19일(현지 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워털루에서 열린 선거 캠페인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하루도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그는 미국NBC 방송의 ‘어프렌티스(Apprentice·견습생)’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2004년부터 2015년까지 11년 동안 진행했다. 높은 시청률로 출연료만 2억달러 넘게 받았다.

전 세계에 42개의 빌딩과 12개의 호텔, 17개의 골프장 등을 갖고 480여개 법인을 운영한 그는 4차례 파산(破産)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협상으로 90억달러에 이르는 빚을 해결했다. 42세 때인 1987년 출간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28년동안 모두 19권의 저서를 냈다.

대통령 재임 중 40만달러의 연봉을 모두 기부한 그는 술·담배를 하지 않는다. 건배 조차 와인 대신 다이어트 콜라로 하고 있다. 그의 ‘파격’은 올해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2세에 쓴 저서 <거래의 기술>. 이 책은 13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48주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미국에서만 최소 500만부 넘게 팔렸다. 그는 책의 맨 앞 표지에 대필(代筆) 작가(ghost writer)인 토니 슈워츠(Tony Schwartz)와 협업했음을 밝혀 놓고 있다. 트럼프는 "19권의 저서를 쓰면서 대필 작가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인들에게 읽기를 권하는 첫 번째 책으로 중국의 고전 <손자병법(The Art of War)>을 추천하고 있다./Amazon.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전역에 방송된 '어프렌티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진은 프로그램 홍보물. 최종 우승자는 트럼프의 사업 중 하나를 경영할 견습생으로 특채 고용돼 25만달러 연봉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매회 탈락자에게 "넌 해고야(You're Fired!)"라고 말해 선풍적 인기를 모았고, 마지막회 우승자에겐 "너는 고용됐어(You're Hired)"라고 말했다.

◇초유의 ‘별종 정치인’ ...3년 만에 最高 호감도

트펌프는 성추문(性醜聞) 입막음 혐의와 국가 기밀문서 반출, 2021년 1·6 국회의사당 난입사태 배후 등 4건의 형사 사건으로 기소(起訴)돼 있다. 그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만 91건이다. 이 역시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있는 일이다. 그는 2023년 8월 24일 범죄인 인상 착의 확인 용도로 머그샷(mug shot) 촬영을 하는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Fulton County) 구치소에서 20분 동안 수감 절차를 밟고 풀려난지 하루 만에 418만달러를 모았다. 트럼프 캠프 재선(再選) 운동 과정에서 24시간 기준 가장 많은 모금액이었다. 이틀 만에 710만달러(약94억원)를 후원금으로 모은 그는 구치소 출두라는 최악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그의 헌정(憲政) 질서 파괴성 행동과 인종 차별적, 협박성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2024년 1월 9일 현재 미국민의 트럼프에 대한 호감도(42.9%)는 3년 만에 가장 높다. 불사조(不死鳥) 같은 트럼프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한국인들은 혹시 그에 대한 오해나 감정적 편견, 무지(無知)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2024년 1월 9일 기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호감도는 2021년 2월 이후 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미국 '퓨 리서치 센터'는 "미국 공화당원들을 대상으로 1980년 이후 최근 40년 간의 최고 대통령을 조사한 결과, 로널드 레이건과 도널드 트럼프가 뽑혔다"고 2023년 8월 22일 밝혔다./Pew Research Center

◇①쇠락 위기감...‘강한 미국’ 회복의 적임자

벤자민 슈프만(Benjamin Schupmann) 예일대 교수는 트럼프 인기의 원천을 미국 정치·사회 구조 변화에서 찾는다. 1990년대 초부터 30년에 걸친 세계화(globalization)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어 소외된(left behind) 중하층 근로자들과 중산층의 입장을 트럼프가 가장 분명하고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쓰는 거친 언어로 소통하는 트럼프는 세계화의 과실(果實)을 누려온 금융가·학자·관료 등 동부 기득권 엘리트들을 글로벌리스트(globalist)로 지칭하며 비난한다. 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움직이는 워싱턴DC 정치인·고위 공무원들을 ‘워싱턴 늪(swamp)’이라며 “부패한 늪을 청소하라(Drain The Swamp!)”고 외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워싱턴 늪' 청소를 비유·풍자한 그림. 트럼프 전 대통령 옆에 그의 정치적 동지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얼굴이 그려져 있다.

많은 백인들은 이에 호응하고 있다. 2050년부터 백인이 미국 총인구의 절반 밑으로 떨어져 소수(少數)로 밀려나고 기독교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미국의 황금 시대가 저물고 미국이 쇠락하는데 불안감을 느끼는 백인 민족주의(White Nationalism)의 한 표출”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 부흥을 위한 강력한 대(對)중국 정책과 반(反)이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20년 넘게 미국 사회가 좌경화(左傾化)된 데 따른 경계 심리도 트럼프의 상승세를 부추키고 있다. LGBTQ(동성애자·성 전환자 등 포함)로 불리는 성적(性的) 소수자와 흑인 등을 우대하는 일방적인 좌파 정책이 미국의 퇴행·타락을 부채질한다는 자각(自覺)이 일면서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많은 미국인들은 좌파 이념·정책 득세에 염증을 내고 있다. 좌파와의 ‘문화 전쟁’을 이끌어 승리할 지도자로 트럼프가 뜨고 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미국의 정체성을 바로잡고 ‘위대한 미국’을 회복시킬 적임자가 트럼프라는 얘기이다.

밑바닥 민심도 바뀌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 교육, 흑인 역사 교육 등을 공교육 과정에서 제외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 퇴출 운동을 벌여온 보수 성향 어머니 단체 ‘자유를 위한 엄마들(MFL·Moms For Liberty)’이 창립 3년 만에 미국 44개 주(州)에 13만명의 회원을 확보한 게 이를 보여준다.

미국 CBS방송이 2024년 1월 7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국경을 넘는 이민자에게 더 강경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은 2023년 9월 조사(55%) 때보다 8%포인트 높은 63%였다. CBS는 “원래 국경 문제를 걱정하던 공화당 지지자보다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無黨派·independent)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텍사스 주방위군이 2022년 12월 19일(현지시간) '타이틀 42호' 정책 종료발표를 앞두고 국경 수비 강화와 불법 이민자 입국 차단을 위해 텍사스주 엘패소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같은 달 21일 종료된 '타이틀 42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입한 반(反)이민정책으로, 불법 이민자를 강제 추방할 수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응답자의 절반 정도(48%)가 “장기적으로 이민자가 미국 사회를 더 나쁘게 만들 것”이라 답한 반면, “이민자 덕에 미국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의견(22%)은 그 절반도 안 됐다. 이는 이민 반대 정책과 국경 강화를 주창하는 트럼프가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다는 방증이다.

◇②트럼프의 소통력·협상술·전략적 사고

더 중요한 요인은 트럼프의 개인기이다. 사안의 핵심을 꿰뚫고 이를 쉬운 ‘시민들의 언어(language of the people)로 포장해 대중(大衆)과 소통하는 능력이 대표적이다. 그는 기성 미디어 매체 대신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SNS)로 대중과 실시간(實時間) 소통하며 뉴스 사이클(cycle)을 지배하고 있다.

SNS에 올리는 단어 하나, 부호 하나, 미묘한 표현 하나에 따라 정치 생명과 국가이익이 휘청거리는 위험성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최고수(最高手)급이다. 그는 철저한 준비와 청중 수준에 맞는 사례·단어 선택 같은 11가지 대중 연설 원칙을 세워 놓고 실천한다. 트럼프는 저서 <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TRUMP 101 : The Way to Success)>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을 하든 간결하고 신속하고 곧장 요점을 찔러주라. 나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빨리 정곡(正鵠)을 찔러 우위를 점한다. 나는 말하기 전에 이미 마음 속에 거래 내역을 다 그려놓고 있다.” 경쟁자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압축·정리하는 능력으로 상대를 압도한다는 말이다.

화려한 건물이 즐비한 미국 뉴욕 시내 5번가(725 5th Ave.)에 있는 트럼프 타워 입구 모습. 1983년 도널드 트럼프가 지은 이 건물은 총 68층, 202m의 높이로 뉴욕에서 54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빌딩 입구와 내부는 황금색으로 돼 있다. 빌딩 안에는 실내 정원과 5층 높이의 인공 폭포도 있다. 1층부터 6층까지는 고급 브랜드 상점이, 그 위부터 19층까지는 사무실이다. 트럼프 본인이 거주하는 펜트하우스도 있다./facebook

그의 다른 필살기(必殺技)는 거친 ‘파이트-백(Fight-Back·일명 되받아치기)’ 전술이다. 1990년대에 뉴욕시가 트럼프 타워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트럼프는 뉴욕시를 상대로 6개의 소송을 냈다. 그는 비싼 소송비와 낮은 승소 확률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대하는 상대방에게는 철저히 반격한다’는 일념으로 밀어붙여 이겼다.

이런 특성은 정치인이 된 뒤에도 변함없다. 2016년 12월 초 트럼프가 중국 지도자 보다 먼저 차이잉원(蔡英文) 타이완 총통과 통화를 한데 대해 중국 외교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정면 위반했다”고 항의하자, 트럼프는 즉각 “너희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사전에 미국과 협의했나?”고 되받아쳤다. 이는 미·중 수교 이후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같은 과거 대통령에게서는 볼 수 없는 강단있는 투사(鬪士)의 모습이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21년 1월 2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년 재임기간 중 3만개가 넘는 거짓 또는 잘못된 주장을 했다. 이 가운데 절반은 마지막 4년째 나왔다"고 보도했다./WP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거짓 또는 잘못된 주장'을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그래픽./WP

트럼프가 4년 집권 동안 3만 573개, 즉 하루 평균 21건의 ‘거짓 또는 잘못된 주장’을 한 것에 대해서는 ‘영리한 선전 공작(clever propaganda campaign)’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벤자민 슈프만 교수는 “트럼프는 의도적인 거짓말로 진실에 대한 기준을 흐리고 자신의 의도에 대한 상대방의 예측과 분석을 차단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2015년 저서 <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무엇을 할지 말하지 않고, 경고를 보내지 않으며, 예측 가능한 패턴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무슨 행동을 할지, 혹은 생각을 하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나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게 좋다. 그래야 상대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구가 된 미국> 한국어판, 79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5년 출간한 <불구가 된 미국> 책 표지와 그의 서명. 그의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담고 1기 정부 공약을 담은 이 책은 100만부 넘게 팔렸다./amazon.com

그러면서 그는 “나에 대한 많은 비판자들은 기존 규칙을 따르고 예측할 수 있는 단계를 밟으며, 통념에 맞추려 노력하면서 온순하게 경기를 하느라 바쁘다. 나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나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패를 드러내는 것은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아주 멍청한 실수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주한미군 등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미군을 동원해 멕시코 마약 카르텔 공격 ▶바이든의 비리를 파헤치는 진짜 특별검사(a real special prosecutor) 임명 같은 그의 발언은 본심(本心)이기 보다 다른 진짜 목적을 이루려는 ‘계산된 공세’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집권 1기 4년 동안 엄포와 거짓말, 모순되고 상습적인 말 바꾸기 같은 그의 방식이 많이 노출된 만큼, 재집권할 경우 트럼프의 언행(言行)이 어떤 형태로든 진화(進化)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③의외로 실용적인 정책의 매력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미국내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까지 최근 트럼프 지지로 돌아서는 현상에 대해 온라인 매체 ‘콤팩트(Compact)’의 매튜 슈미츠(Matthew Schmitz) 편집장은 이렇게 진단했다.

미국 보수 온라인 매체인 '콤팩트'의 매튜 슈미츠 편집장이 2023년 12월 18일자 뉴욕타임스(NYT) 오피니언면에 기고한 칼럼/NYT

“흑인·히스패닉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를 지지해서가 아니다. 그의 강권주의(authoritarianism)에 굴복하거나 극우파의 생각을 수용해서도 아니다. 트럼프가 예측할 수 없는 종류의 온건이지만 실용주의자(a pragmatic if unpredictable kind of moderate)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외교와 무역, 헬스케어·낙태, 성전환(trans-gender) 같은 분야에서 진영 논리가 아닌 자신만의 중도(middle-of-the road) 노선을 택했다. 2019년 이란이 미군 드론을 격추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튼 국가안보좌관은 미사일 보복 공격을 주장했다. 트럼프는 이를 물리치고 낮은 수준의 대응으로 확전을 막는 신중함(prudence)을 보였다. 트럼프는 집권 4년 동안 새로운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다.

2022년 출간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분석서. 3권 모두 각기 400쪽 넘는 분량이다. 왼쪽부터 저자 매기 해버먼, 피터 베이커·수잔 글래서, 조나던 마틴·알렉산더 번즈 가운데 피터 베이커의 부인인 수잔 글래서를 제외한 4명은 현직 뉴욕타임스(NYT) 기자로 백악관을 주로 취재하고 있다.

오바마케어(Obama care)를 비판한 트럼프는 정작 집권 후에 공화당과 민주당 안(案)을 배척하고 오바마케어의 장점을 결합한 정책을 관철시켰다. 폴 라이언(Paul Ryan) 연방하원의장을 비롯한 많은 공화당 의원들은 이에 반대해 트럼프와 다투었다.

무역 분야에서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자유시장 개방경제’ 접근을 폐기하고 보호주의로 일관했다. 트럼프의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한 고율(高率) 관세 부과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 결정은 후임 바이든 민주당 정부가 계승했다. 이는 반대 진영마저 트럼프 정책의 합리적 정당성을 인정했다는 방증이다.

2018년 3월 8일(현지 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오른쪽 다섯번째)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하면서 배석한 철강업계 노동자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실장,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서 있다./조선일보DB

낙태와 성전환 문제에서도 트럼프는 중도에 가깝다. 임신 6주후 낙태 금지에 서명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에 대해 트럼프는 “비타협적인 보수주의와 온라인 우파의 생각을 추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독재자들을 전쟁 범죄자 또는 테러리스트로 몰아가는 것도 반대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 범죄자로 단죄(斷罪)하면 평화 협상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아첨(flattery)과 공포(fear)를 적절히 섞어 구사함으로써 트럼프는 독재국가 최고 지도자들을 잘 통제해 러시아, 중동, 북한 문제를 모두 미국 의도대로 관리했다. 미국 유권자들로선 트럼프가 대통령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판단할만하다”고 말했다.

◇북한과 통큰 거래, 주한미군 철수할까?

많은 한국인들은 트럼프 재집권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용인이나 대북(對北) 경제 재재 완화, 주한미군 완전 철수 같은 사태를 우려한다. 실제로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여러 차례 철수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요구대로 방위비 분담금 등을 대폭 늘려주는 대신 핵 추진 잠수함, 핵무장 잠재력 강화 같은 양보를 받아내자는 주장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미국 대통령으로선 23년 만의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연설 도중 19차례의 박수를 한국 국회의원들로부터 받았다./뉴시스

궁금한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진짜 속내’이다. 그 일단은 2017년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약 35분간 진행한 공식 연설에서 드러난다. 미국 대통령이 23년 만에 한 대한민국 국회 연설에서, 그는 과장이나 허풍, 위협적 언사(言辭)가 아닌 정돈되고 절제된 단어와 문장으로 한반도와 관련한 진솔한 견해를 밝혔다.

연설의 핵심 메시지는 ▶북한은 감옥 국가(prison state)이다 ▶북한의 핵무기 추구는 헛된 꿈이다 ▶자유주의 세계 질서와 자유 대한민국 수호 의지는 확실하다 등으로 압축된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라는) 이 잔인한 독재 정권에서는 약 10만명이 정치범 수용소(Gulag)에서 고통받고, 강제 노동에 시달리며, 고문·기아·강간·살인을 지속적으로 당한다. 북한은 이단적 종교집단(cult)처럼 통치되는 나라다. 김씨 정권은 국내의 완전한 실패로부터 (주민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대외적 갈등을 촉발한다. 이들은 헛된 희망에 젖어 핵무기를 추구한다. 우리는 북한이 그 목표를 이루도록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신의주 노동교화소. 보통 교화소는 높은 담과 감시탑을 갖춘 감옥 형태로 건설돼 정치범, 경제사범, 일반 범죄자를 최대 1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지 인터넷판은 2010년 5월 31일구글 어스를 이용해 '하늘에서 바라본 북한 김정일의 궁전과 감옥들(A bird's eye view of the prisons and palaces of kim Jong-il's North Korea)' 이란 제목으로 일련의 사진들을 게재했다./구글어스-연합뉴스

그는 이어서 밝혔다.

“우리(트럼프 정부)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우리는 공동의 안보, 우리가 공유하는 번영, 우리의 신성(神聖)한 자유를 방어할 것이다. 미국은 갈등이나 대립을 원하지 않지만 절대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동맹국이 협박이나 공격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며 생명을 걸었던 땅(한반도)에서 역사상 최악의 잔혹(殘酷)이 반복되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항상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

트럼프의 연설 내용을 뜯어 보면 그가 최소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손쉽게 인정해주고 손잡거나 ▶혈맹(血盟)인 대한민국을 북한의 핵 무력 앞에 무방비로 방치하거나 ▶금전적인 이유로 주한미군을 일방 철수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트럼프는 2020년 8월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를 출범시킨 주인공이다. 그의 중국 견제와 태평양 방어 의지는 단호(斷乎)하고 적극적이다. 경기도 평택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외 주둔 미군 기지(基地)가 있다.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U-2S 고고도정찰기가 임무를 마치고 착륙하고 있는 모습. 2023년 5월 30일 촬영한 사진이다./뉴스1

◇‘트럼프 따라하기’...미국 엘리트들의 반성

선거를 10개월 넘게 앞둔 시점에서 트럼프의 당락(當落) 여부는 예단할 수 없다. 미국 일부 지역에서 트럼프는 극혐(極嫌) 대상으로 지목될 정도로 인기가 없고, 그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집해 전국적인 트럼프 낙선 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 중도층과 무당파층이 트럼프에 언행에 반감(反感)을 표출하거나 주(州) 또는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그의 선거 출마가 좌절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향후 행보와 무관하게 ‘트럼프 표’ 정책들은 미국의 새로운 정상(正常)이 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들은 같은 민주당인 오바마 행정부 보다는 트럼프 정부 정책과 공통된 면이 더 많다. 트럼프 정부에 등장한 ‘네오 포퓰리스트 원칙’(neo-populist doctrine)이 바이든 정부 들어 본격화하고 있다”고 했다.

기드온 라크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칼럼니스트는 '내가 여전히 미국을 믿는 이유'라는 제목의 2024년 1월 8일자 칼럼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의한 '트럼프 멜로 드라마'는 미국이 병에 걸려 있는 만큼 활력(vitality)이 넘친다는 표시"라며 "미국은 기성 체제에 대한 반발과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재창조(constantly reinvent itself)하는 나라"라고 분석했다./FT

자유 선거와 사법(司法) 과정 같은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적대감을 부추키며 정치 보복을 공언하는 트럼프에 대한 미국인들의 ‘식지 않는 인기’(enduring popularity)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드온 라크먼(Gideon Rachman)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외교담당 수석칼럼니스트는 “트럼프 현상은 많은 미국인들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며, 현상유지를 거부한다는 신호”라며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의 부상(浮上)은 뒤늦었지만 미국 엘리트들의 자성(self-examination)을 촉발(觸發)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워크’(woke·깨어있다는 뜻으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 주의) 사고(思考)에 대한 반발이 시작되는 것도 그렇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는 말을 기분 나쁘고 상스럽게 하며 거친 협상(hard bargaining)에 아주 숙달한 정치인이지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깨거나 전체주의 독재자와 손잡을 인물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그가 집권할 경우 펼쳐질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냉정하게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머그샷'(피고인을 구금하는 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을 이용해 만든 반팔 티셔츠와 포스터. 티셔츠와 포스터 가격은 개당 29.99달러, 19.99달러이다. 머그잔과 휴대용 음료용기 등도 시판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42세 때인 1987년 7월 20일자 경제 주간지인 미국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 표지 인물로 등장했다. 비즈니스 위크는 "트럼프가 뉴욕 부동산 시장을 정복한 인물"이라고 밝혔다./Business Week

※참고한 자료

Donald Trump, <The Art of the Deal, 거래의 기술(2016년)>, <TRUMP 101 : The Way to Success, 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2007)>, <Think like a Champion, 최선을 다한다 하지 말고 반드시 해내겠다 말하라(2010)>, <Crippled America :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 불구가 된 미국(2016)>

Newt Gingrich, <Understanding Trump>(2017), 金成隆一, <르포 트럼프 왕국 : 어째서 트럼프인가>(2017), 송의달,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노트>(2020), 안세영,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2017), ChannelnewsAsia, Financial Times, New York Times, South China Morning Post, The Hill, trumpwhitehouse.archives.gov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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