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에서 중국 대사관 복관식이 열렸다. 뤄자오후이 국가국제발전협력국장, 왕쉬광 나우루 주재 중국 대사관 복관팀장, 아인기미 나우루 외교장관, 예레미아 인프라발전 장관 등 양국 인사들이 참석해 중국 오성홍기를 게양했다. 대만 총선에서 반중성향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되고 난 뒤 2주간 숨돌릴틈없이 진행된 양안 외교전이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앞서 지난달 13일, 반중 여당과 친중 야당, 중도 야당이 맞붙은 총통선거에서 반중 여당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의 승리로 정권이 재창출됐다.

지난달 나우루 주재 중국대사관 복관식에서 양국 인사들이 현판을 제막하며 박수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환호도 잠시, 승리 이틀 뒤 대만 외교부는 당혹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해온 나라 중 하나인 나우루가 중국과 수교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뉴스 내용대로 나우루는 중국을 공식 외교 파트너로 택했다. 대만의 수교국이 12국으로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이날 행사의 공식 명칭은 개관식이 아닌 복관식이다. 중국 대사관이 새로 문을 여는게 아니라 19년 만에 운영을 재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19년 전에는 나우루가 중국과 관계를 단절하고 대만을 택했었다는 뜻이다. 이 복관행사에는 태평양 섬나라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양안의 치열한 외교 경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리오넬 아인기미 나우루 외교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국교 복원 협정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나우루는 면적(21㎢)은 서울 용산구와 비슷하고, 인구(1만2500명)는 경북 영양군보다도 작은 소국이다. 하지만 외교면에서는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중국과 대만을 번갈아가며 외교 파트너로 선택하면서 몸값을 높였고 이를 기회로 국익을 최대한 챙겼기 때문이다. 나우루를 둘러싼 양안외교전은 40여년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나우루는 1980년 대만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70년대는 대만 외교의 시련기였다. 유엔회원국 지위 상실(1971년)과 일본·중국 수교(1972년), 미국·중국 수교(1979) 등으로 중국의 외교 공세에 밀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980년대가 되면서 새로운 수교국을 추가할 수 있었다. 한국·남아프리카공화국·싱가포르 등 주요 국가들이 1990년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하는 동안에도 나우루는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002년 7월 나우루는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다. 이듬해 중국은 나우루에 350만 달러의 무이자 차관을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했다.

대만 집권여당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총통 당선인이 지난달 대만 타이페이시에서 선거 승리를 확정지은 뒤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우루와 중국과의 외교관계는 오래 가지 않았다. 3년 뒤인 2005년 6월 중국과 단교하고 다시 대만과 외교관계를 복원한 것이다. 이 해 대만정부는 나우루 정부가 외국 노동자들에게 지급하지 못한 체불임금 300만 달러를 지원했고, 5년에 걸쳐 총 1000만 달러의 경제지원금을 주기로 약속했다. 나우루가 양안 사이를 오가면서 최대한 경제적 이득을 본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나우루와 외교관계를 복원했던 대만이었지만, 다시 19년만에 단교를 당하는 상황이 됐다. 중국 관영 매체는 나우루를 ‘태평양 위의 진주’라고 표현하면서 이 나라 띄워주기에 나섰다. 중국중앙방송은 나우루 수도 야렌에 보도국을 설립하고 첫 기사를 타전했다. 기사 제목이 ‘나우루와 대만의 단교’였다. 남태평양에서 양안 외교 혈전의 한 단면이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나우루의 모습은 마치 미국 대선의 스윙 스테이트(표심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가는 지역)와도 비슷한 ‘스윙 아일랜드’였다.

이처럼 남태평양 섬나라들 중에는 대만과 중국 사이를 오간 사례가 적지 않다. 키리바시의 경우 독립 직후인 1980년에는 중국과 수교를 했지만 23년 뒤인 2003년 11월에는 중국과 관계를 끊고 대만과 국교를 수립했다. 중국의 외교 공세에 밀려 수교국들을 잃어가던 대만으로서는 모처럼 외교적 성과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2019년 9월 키리바시는 다시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고 중국과 국교를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나우루와 거의 비슷한 경로를 거친 것이다.

수랑겔 휩스 주니어 팔라우 대통령(왼쪽)과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대만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있다. /페이스북

한국인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작은 섬나라들이 모여있는 남태평양은 양안 외교전의 격전지 중 격전지다. 특히 중국의 강력한 외교 공세에 밀려 잇따라 수교국을 잃고 있는 대만으로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거점이기도 하다. 대만의 수교국 중 3곳(마셜제도·투발루·팔라우)이 남태평양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하고 친미·친서방 노선을 추구한 민진당 차이잉원 정권이 8년간 집권하는 동안 중국의 거센 외교적 공세가 이어지면서 기존 수교국 10개국을 잃었다. 대만은 미국이 제정한 대만관계법에 따라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등 주요국들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리투아니아와 체코 등 유럽 국가와는 주요 고위 인사들의 방문을 이어가며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수교국 지키기에 사활을 거는 까닭이 있다. 영토·경제규모·인구에 관계없이 유엔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정식 회원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지 없는지의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중국이 아닌 대만을 정식 외교파트너로 승인하고 국가 대 국가로 정식 교류하는 국가가 없어지게 되면, “대만 문제는 다른 나라가 간섭할 수 없는 내정 문제”라는 중국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된다. 중국은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탈한 하나의 성(省)이며 장래에 반드시 흡수해야 할 대상”이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팔라우의 어린이들이 대만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들고 있다. /페이스북

이런 대만에게 남태평양 3국은 외교적 고립상황에서도 든든한 원군 역할을 해왔다. 그 중에서 팔라우는 국제사회에 여러 차례 대만을 강력히 지지하는 메시지를 전파해왔다. 팔라우의 수랑겔 휩스 주니어 대통령은 대만 총통선거 뒤 바로 장문의 축하 메시지를 냈다. 휩스 주니어 대통령은 자국민들이 대만의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든 사진과 라이칭더 당선인과 둘이 찍은 사진 등과 함께 올린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팔라우는 민주적 원칙에 따라 세워진 대만의 편에 서 있다”며 “올해 10월 개최될 팔라우 독립 30주년 기념식에 라이 당선인을 초청한다”고 했다. 팔라우는 대만과 25년째 수교관계를 맺고 있다. 또 다른 수교국 마셜제도는 1990년 중국과 수교했다가 1998년 대만으로 외교 파트너를 바꾼 뒤 지금까지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태평양 섬나라중 가장 오랫동안 대만과 수교해온 나라는 1978년 수교해 올해로 국교수립 46년째인 투발루다. 하지만 지난달 하순 최근 투발루와 관련해 대만 입장에서 심상치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투발루가 나우루처럼 중국을 외교 파트너로 선택하고 대만과 수교할 가능성이 있다는 호주 언론발 뉴스가 나온 것이다. 대만외교부는 “양국 관계는 관계는 돈독하며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반박 성명을 내며 즉시 대응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