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예요. 판다가 워싱턴에 돌아옵니다!” 29일 오전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 동물원 페이스북에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1분 43초짜리 동영상이 올라왔다. 함께 출연한 미국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동물원 관계자들이 이 손님의 정체를 공개하자 남녀노소 미국인들이 손뼉 치고 환호하면서 영상은 끝났다. 바이든 여사의 동영상 발표와 함께 동물원 측이 계약 만료에 따라 지난해 11월 중국으로 떠났던 판다들을 올해 안으로 다시 들여온다고 밝히자 미 언론들은 일제히 긴급 뉴스로 전했다.
중국야생동물보호협회도 동시에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날 동물원 판다 우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셰펑 주미 중국 대사는 “20년 전 시진핑 당시 저장성 당서기(현 국가주석)가 ‘깨끗한 물과 푸른 산은 금과 은 못지않게 소중하다’며 환경보호 정책을 주창했다”며 “판다 왕국이 된 중국은 멸종 위기종의 안식처”라고 했다. 판다의 워싱턴행 여정에서 시진핑의 공(功)을 강조한 것이다. 미·중의 치열한 글로벌 패권 전장에서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판다 외교’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날 발표는 세밀하게 조율된 외교 이벤트의 성격이 짙었다. 우선 뉴욕·워싱턴 등 대도시가 몰려 있는 동부 지역에서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에 양국이 동시에 소식을 알렸다. 시기도 절묘했다. 앞서 ‘판다앓이’를 하는 미국인들을 울리고 웃기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일하게 판다가 있는 남부 조지아주 애틀랜타 동물원이 지난 17일 사육하던 판다 네 마리가 올 연말 중국으로 떠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에는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샌프란시스코 동물원이 판다 신규 도입 소식을 전했다.
미국인들의 관심은 자연히 판다 외교의 중심인 수도 워싱턴에 쏠렸다. 1972년 4월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가 선물한 판다 한 쌍이 입주한 이래,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의 판다 우리는 미·중 데탕트(화해)를 상징하는 곳으로 인식돼 왔다. 뉴욕·보스턴·필라델피아 등 동부권 대도시에서 접근성이 좋고 입장료도 받지 않아 ‘공공 외교’라는 상징성도 있다.
과거 판다 외교와 마찬가지로 현직 퍼스트레이디가 전면에 나선 점도 눈길을 끈다. 1972년 4월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 첫 판다가 도착했을 땐 팻 닉슨 여사가 직접 동물원에서 맞이했다. 1984년 낸시 레이건 여사는 어린이들과 함께 야생 판다 보호 캠페인을 이끌었고, 2015년 미셸 오바마 여사는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 태어난 새끼 판다 명명(命名)에 참여했다.
1972년 워싱턴을 시작으로 판다 외교는 샌디에이고·애틀랜타, 동남부 테네시주 멤피스 동물원 등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통상·안보 분야에서 미·중 간 거친 파열음이 일었고, 공교롭게도 이 시점부터 판다 임대차계약이 줄줄이 만료됐다. 그러나 미·중 모두 갈등을 관리하는 외교 수단으로 판다의 역할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 새로 오는 판다는 세 살 동갑인 수컷 바오리(寶力)와 암컷 칭바오(靑寶)다. 이 중 바오리의 어미가 이 동물원에서 태어난 바오바오(寶寶)다. 앞서 5년 만에 판다를 맞게 된 샌디에이고 동물원도 과거 그곳에서 살았던 판다의 후손을 반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역 주민들의 추억에 남아 있는 판다들의 후손을 보내 반중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우호적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중국 측 의도로 풀이된다.
재개되는 판다 외교에서 캘리포니아를 배려한 듯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번에 새로 판다를 도입하는 샌프란시스코는 1984~1985년 순회 행사 때 잠깐 판다가 거쳐갔을 뿐 사실상 판다를 처음 키우는 곳이다. 역시 판다를 재반입할 샌디에이고와 함께 서부 태평양 연안에 있다. 반면 최근 판다를 보냈거나 보낼 예정인 멤피스와 애틀랜타 동물원에 판다가 다시 올지는 불투명하다. 결국 미국에서 판다의 새 보금자리는 동부 워싱턴DC에 한 곳, 서부 캘리포니아에 두 곳이 된다.
중국계 주민이 많고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중국 당국이 각별히 챙긴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중국 수뇌부와 관계가 원만한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으로 꼽힌다. 시진핑 주석이 미국에 판다를 다시 보낼 뜻이 있다고 밝힌 곳도 지난해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린 샌프란시스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