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4년5개월 만에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를 마치고 중국국제항공 전세기 편으로 귀국하는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photo 뉴시스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예상대로 ‘전용기’가 아닌 ‘전세기’를 타고 한국을 찾았다. 지난 5월 26일 4년5개월 만에 재개된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 측 ‘정상’으로 방한한 리창 총리를 태운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소속 보잉 B747 여객기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한 시각, 중국 외교부는 이 같은 짤막한 소식을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2024년 5월 26일 오전 국무원 총리 리창이 ‘전세기(包機)’를 타고 베이징을 떠나 한국으로 건너가 제9차 중·일·한 ‘영도인(지도자)’ 회의에 참석한다”며 “현지시각 26일 점심, 리창을 태운 전세기가 서울공항에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에서 ‘진짜 정상’인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언급할 때 쓰는 ‘원수(元首)’ ‘영수(領袖)’란 표현 대신 ‘영도인(지도자)’이란 두루뭉술한 표현을 쓴 것. 자연히 리창 총리를 태운 비행기는 ‘전용기’가 될 수 없었다.

中 외교부, 리창 대신 시진핑 사진만

앞서 중국 외교부는 지난 5월 5일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 등 유럽 3개국 순방에 나섰을 때는 “국가주석 시진핑이 ‘전용기(專機)’를 타고 베이징을 떠났다. 현지시각 2024년 5월 5일 오후 국가주석 시진핑을 태운 전용기가 파리에 도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외교부는 한·일·중 정상회의가 폐막한 지난 5월 27일에도 “국무원 총리 리창이 전세기를 타고 베이징을 돌아왔다”라고 ‘전세기’ 표현을 고수했다.

4년5개월 만에 서울에서 재개된 한·일·중 정상회의가 열린 지난 5월 27일 정작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가득 채운 사진은 시진핑 주석이 지난 5월 16일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넥타이를 푼 채 중난하이(中南海)의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사진이었다. 지난 5월 27일은 푸틴이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과 회동한 지 벌써 10여일을 훌쩍 넘긴 시점이었다. 황제의 내원(內苑)이자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중난하이를 러시아 대통령에게 공개했다는 사실이 중국 외교부에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베이징을 찾은 외국 정상을 위해 중국 측이 중난하이를 열어준 것은 미국 대통령과 러시아 대통령 정도다. 역대 한국 대통령의 방중 시 정상회담은 대개 공식행사가 열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이나 조어대(釣魚臺) 국빈관 정도에 머물렀다. 2012년 말 시진핑 집권 후 중국을 찾은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중난하이의 정문인 신화문(新華門)을 넘어서지 못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과 푸틴의 회동을 설명하면서 “맹하(孟夏·이른 여름)의 중난하이에는 청량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고, 물결은 빛나고 찰랑찰랑거렸다”며 “시진핑은 영대교(瀛台橋) 앞에서 푸틴을 맞이했고, 양국 원수는 한편으로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영대(瀛台)는 중난하이 남쪽의 호수인 ‘난하이’의 한가운데 있는 섬으로, 과거 청나라의 광서제가 서태후에 의해 10년간 유폐됐다가 독살당한 곳이다. 중난하이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 시진핑의 집무실이 있는 근정전(勤政殿)을 통과해 영대교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다. 영대를 공개했다는 것은 시진핑의 집무실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2014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았을 때, 달밤에 영대교 앞에서 오바마를 맞이했고, 광서제가 독살당했던 영대의 함원전(涵元殿)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바 있다.

이날 이 사진 외에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장식한 사진 5장 가운데 4장은 시진핑과 푸틴이 함께 등장했다. 나머지 한 장의 사진은 시진핑 주석과 영부인 펑리위안 여사 내외가 지난 5월 초 유럽을 순방하면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만난 사진이었다. 정작 이날 리창 총리가 서울을 찾아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이른바 ‘3국 정상회의’를 한 설명과 사진은 홈페이지 귀퉁이 한편에 짤막하게 소개됐다. 그나마 리창 총리가 지난 5월 26일 방한 직후 잠시 시간을 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별도로 회동한 사실은 동정만 소개됐을 뿐 사진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5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에 참석한 3국 정상들. (왼쪽부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석열 대통령,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photo 뉴시스

중국 측 ‘정상’ 논란 여전

이처럼 4년5개월 만에 재개된 한·일·중 정상회의라지만 참석자의 격(格)은 여전한 논란거리다. 한·일·중 정상회의에 앞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가장 평가할 만한 부분은 한·중 간 외교와 국방에 관한 ‘2+2 대화채널’을 구축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리창 총리의 방한 때 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오지 않았다.

왕이 외교부장은 한·일·중 정상회의를 앞둔 지난 5월 13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베이징을 찾았을 때 공동선언에 담을 문구를 최종 조율했던 파트너다. 왕이 외교부장은 9년 전인 2015년 리창 총리의 전임자인 리커창 전 총리가 한·일·중 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을 찾았을 때는 수행원 자격으로 방한한 바 있다. 반면 지난 5월 ‘진짜 정상’인 시진핑이 프랑스·세르비아·헝가리 등 유럽 3국을 순방했을 때 왕이 외교부장은 시진핑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했다. 심지어 당시 수행원 중에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으로 당서열 5위인 차이치(蔡奇) 중앙판공청 주임 겸 중앙서기처 제1서기도 있었다.

리창 총리와 함께 한국을 찾은 중국 고위급 인사는 총리 비서실장인 우정룽(吳政隆) 국무원 비서장을 비롯해 왕원타오(王文濤) 상무부장, 진좡룽(金壯龍) 공업정보화부장에 그쳤다. 중국 측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외교·국방과 같은 첨예한 이슈보다는 경제·무역과 같은 ‘돈 문제’만을 다루겠다는 중국 측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이 같은 리창 총리의 ‘자격’ 문제를 의식한 듯 우리 정부 역시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총리의 양자 회동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이 엿보였다. 대통령실은 지난 5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리창 총리가 회동한 직후 ‘한·일·중 정상회의 계기, 중국 리창 총리와의 회담 결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같은 날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난 직후 ‘한·일·중 정상회의 계기, 한·일 정상회담 결과’라는 보도자료를 낸 것과 달리 제목에서 ‘정상’이란 말이 빠진 것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때 윤 대통령과 리창 총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정상’을 빼고 ‘회담’이란 용어만 썼다.

우리 정부도 ‘자격’ 논란 의식

이처럼 ‘한·일·중 정상회의’ 때 중국 측이 실제 정상이 아닌 국무원 총리를 파견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는 문제다. 한·일·중 정상회의는 199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3(한·일·중) 정상회의’ 때 김대중 당시 한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총리, 주룽지(朱鎔基) 당시 중국 국무원 총리가 별도 조찬회담을 가진 것을 계기로 탄생했다.

2008년부터 별도 회의로 정례화됐는데, 중국 측은 2008년 12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제1차 회의 때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를 이른바 ‘정상’으로 파견했다. 이후 관례를 이유로 줄곧 중국공산당 서열 2위에 불과한 국무원 총리를 이른바 ‘정상’으로 파견하고 있다.

이 같은 형식은 한국만 불리한 구조다. 그나마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상징적 국가원수인 ‘덴노(天皇)’가 있다. 내각 총리가 전면에 나선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일본은 1972년 중·일공동성명(중·일수교) 채택 때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총리와 저우언라이(周恩来) 당시 중국 총리가 직접 나선 역사적 전례도 있다. 심지어 1978년 ‘중·일평화우호조약’ 체결 때는 후쿠다 다케오 당시 일본 총리와 덩샤오핑 당시 부총리가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과 1992년 수교한 한국은 이 같은 역사적 맥락을 찾기가 어렵다. 대통령중심제에서 국가원수 겸 행정부 수반을 겸하는 대통령이 실질적 무게가 판이한 양국 총리를 상대해야 하는 형식상의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한국은 1992년 한·중수교 때도 형식상의 딜레마에 빠진 적이 있다. 1992년 8월 한·중 양국 외무장관이 베이징 조어대에서 한·중수교를 체결하고, 같은해 9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 최초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다. 이때 노 전 대통령은 양상쿤(楊尙昆) 당시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을 뿐 ‘진짜 정상’인 덩샤오핑을 만나지 못했다.

당시 한국 측은 실권을 가진 덩샤오핑과의 만남을 요구했으나, 중국 측이 양상쿤이 형식상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이란 이유로 완강히 거부하면서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 최초로 중국에 가서 ‘진짜 정상’인 덩샤오핑 대신 덩의 심복인 양상쿤 국가주석, 장쩌민 당총서기, 리펑 총리 등만 만난 채 발길을 돌렸다.

노태우 때 잘못 끼운 첫단추

하지만 당시 우리 외교부는 이 같은 만남을 ‘역사상 최초의 한·중 정상회담’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결국 1992년 한·중수교 당시 잘못 끼운 첫단추가 지금까지 한국 외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당시 정상회담은 비록 ‘진짜 정상’들 간의 만남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 대통령과 중국 국가주석 간의 만남이란 형식은 갖췄다.

하지만 시진핑이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모두 틀어쥔 지금, 중국 국무원 총리를 이른바 ‘정상’으로 동등하게 예우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차기 한·일·중 정상회의 때부터는 한국도 한덕수 국무총리를 정상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해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한덕수 총리는 중국을 찾아 시진핑과 별도 회담을 가진 바도 있다.

이 같은 논란에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총리의 별도 회담에서도 시진핑 방한 문제가 따로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정상’을 서울로 불러놓고 또 다른 ‘정상’을 초청하는 일이 형식상 맞지도 않고 당사자에 대한 결례가 될 수도 있어서다.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역시 한·일·중 정상회의 직후 “리창 총리가 대통령께 시진핑 주석의 안부를 전달했다”면서도 “이번 회담은 리창 총리를 상대로 한 회담이었기 때문에 굳이 시진핑 주석의 방한 문제를 저희가 거론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 양국은 회담 직후 회담결과를 발표하고 “양국 간 인적교류를 더욱 활성화해 나가자”고만 언급했을 뿐, 시진핑의 방한이나 윤 대통령의 방중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의 방한은 오는 2025년 11월 한국에서 개최할 예정인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때나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APEC은 아시아태평양 역내 국가들의 모임이지만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관계로, 중국 역시 시진핑이 직접 출전했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나, 2022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도 시진핑은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히 한·중 양국 ‘진짜 정상’들의 상호 방문을 통한 만남은 윤 대통령이 올해 베이징을 먼저 찾지 않는 이상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 한·일·중 정상회의 직후 3국은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2025년 한국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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