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영국 에식스주(州) 클랙턴에 위치한 한 술집 앞. 다음 달로 다가온 영국 조기 총선에 출마한 유명 극우 인사이자 영국 개혁당 대표 나이절 패라지(60)의 얼굴에 난데없이 바나나 밀크셰이크가 날아들었다.
패라지가 “이 땅 약자를 대변하겠다!”고 외치려는 순간 한 23세 여성이 손에 쥐고 있던 밀크셰이크를 그에게 집어던진 것이다. 패라지는 밀크셰이크 범벅이 됐고, 현장도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에 체포된 가해자 여성은 “패라지가 하는 말을 참을 수가 없어 욱하는 마음에 던졌다”고 했다.
달콤하고 걸쭉한 음료인 밀크셰이크가 영국 정가(政街)를 흔드는 ‘공포의 음료’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인에게 항의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밀크셰이크를 집어던지는 소위 ‘밀크셰이킹(Milkshaking)’ 사건이 조기 총선을 앞둔 영국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어서다.
패라지가 밀크셰이크를 얻어맞은 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9년에도 한 유권자에게 밀크셰이크 ‘세례’를 받았다. 노련한 정치인 패라지는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일에도 그는 옷을 갈아입고 새 맥도널드 밀크셰이크를 든 채 “내가 밀크셰이크를 얻어맞으면 사람들이 더 많이 선거 유세 현장에 모인다”고 농담하는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밀크셰이크 세례를 받은 영국 정치인은 또 있다. 또 다른 유명 극우 인사이자 전 영국 독립당(UKIP)의 지도자인 토미 로빈슨은 2019년 5월 밀크셰이크를 두 차례나 뒤집어썼다. 반대파들이 “파시스트가 된 대가다!”라고 외치며 그에게 밀크셰이크를 던졌다. 같은 당 소속 정치인 칼 벤저민 역시 비슷한 시기에 밀크셰이크를 네 번 얻어맞았다.
영국 사람들은 정치인에게 왜 하필 밀크셰이크를 던질까? 정치학자나 평론가들은 ①구하기 쉽고 ②시위 현장에 들고 가도 잘 의심받지 않고 ③뒤집어썼을 때의 시각적 효과가 최고라는 점을 이유로 보고 있다. 우유가 보통 ‘백인’을 상징하는데, 우유에 얼음을 갈아 만든 밀크셰이크가 이를 뒤집어 거꾸로 백인, 혹은 백인 우월주의자를 조롱하는 뜻으로 쓰인다는 분석도 있다.
런던정경대 케빈 페더스톤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밀크셰이크를 던짐으로써) 정치인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폭로할 수 있다”고 했다. 글래스고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벤저민 프랭크스도 NYT에 “예전엔 달걀을 많이 던졌지만, 달걀을 들고 다니면 시위 현장에서 의심받을 수도 있어서 “밀크셰이크가 더 보편적인 도구가 됐다”고 했다. 일각에선 “신발은 던지면 감옥에 갈 수 있지만, 밀크셰이크로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처벌을 받진 않는다”고도 말한다.
영국에서 밀크셰이크가 시위 도구로 애용된다면, 독일·네덜란드에선 토마토를 던지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에선 밀가루를 더 선호한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도 밀가루를 여러 차례 얻어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