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화한 미국 시민은 퀴즈쇼 제퍼디를 37시즌 동안 진행했습니다.’ 다음달 22일 발매되는 미국의 우표에는 여느 우표처럼 사람이나 풍경, 동물의 모습이 없다. 대신 이 같은 문구가 써져있다. 그 아래 조그맣게 보일락말락하게 해당 인물의 이름이 써져있다. 알렉스 트리벡(1940~2020). 미국의 국민 퀴즈쇼로 한국에도 제법 알려져있는 ‘제퍼디(Jeopardy)’를 37년간 진행했던 방송인이다. 인물을 기념하되 정작 인물은 전혀 없는 독특한 디자인의 이 우표는 제퍼디 퀴즈쇼 문제 화면처럼 우표를 구성했다.

7월 22일 발매될 제퍼디 진행자 알렉스 트리벡 기념우표. 얼굴 사진이나 그림없이 퀴즈쇼 화면 형식으로 그의 행적을 기렸다. /USPS facebook

우표가 헌정한 주인공인 트리벡은 원래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오타와 대학을 졸업한 찐캐나다인이었다가 1998년에야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전 생애의 고작 4분의 1 정도만 미국인으로 살았던 그에게 미국은 대통령이나 스포츠 영웅 등 상징성이 강한 인물에게나 허락되던 우표 주인공의 영예를 준 것이다. 그만큼 국민 퀴즈쇼 진행자로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까지 스튜디오에 나와 미국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공로가 인정받은 것이다. 미국 연방 우정청은 퀴즈쇼를 진행하던 그의 전신 사진과 20장 우표를 한데 묶은 기념시트, 방송 로고가 찍힌 기념품 등을 함께 발매한다. 다음달 ‘제퍼디’의 첫 방영 60주년 기념일을 맞아 제작사인 소니 스튜디오에서 우표 발매행사도 연다.

우표 스무장과 퀴즈쇼 진행당시 사진을 함께 도안한 알렉스 트리벡 기념우표. /USPS

오타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캐나다 공영방송 CBC에 입사한 트리벡은 뉴스와 각종 프로그램을 맡아 능숙한 진행능력을 과시했고, 1973년 미국 3대 지상파 방송 NBC의 오락프로그램 ‘위저드 오브 오즈’를 맡아 미국 시청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1984년 그와 사실상 동일체였던 제퍼디의 사회자가 됐다. 1964년 첫 방영된 제퍼디는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포맷의 동시대 퀴즈쇼들과 경쟁하다 트리벡을 사회자로 맞은 뒤 퀴즈쇼의 독보적 ‘원톱’이 됐다. 제퍼디의 인기 비결은 평범함이 보여주는 특별함이었다. 오디션을 거친 북미 전역의 장삼이사·필부필부들이 모여 오로지 실력만으로 자웅을 겨룬다.

알렉스 트리벡 기념우표와 함께 한정판으로 나올 예정인 종이봉투. /USPS

세상의 모든 지식들을 카테고리로 나눠 잡학사전식 문제를 출제하고 쉬운 문제일수록 배점은 낮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높다. 신분·외모·재산에 관계없이 그저 많이 공부해서 아는 사람이 승자가 돼 명예와 부를 거머쥐는 모습엔 정직함으로 일궈내는 아메리칸 드림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트리벡은 차분하게 물흐르듯 진행을 하면서 당황하거나 긴장한 출연자들을 다독이고, 촌철살인 멘트로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드는 능숙한 진행으로 ‘국민 사회자’의 반열에 올랐다. 제퍼디는 알파벳으로 힌트를 주고 숙어를 맞춰 상금을 주는 ‘휠 오브 포츈(Wheel of Fortune)’, 가족들끼리 팀을 이뤄서 맞대결을 펼치는 ‘패밀리 퓨드(Family Feud)’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오락프로그램으로 1980~90년대 미군방송 AFKN(현 AFN)에 편성돼 당시 한국 공중파 TV채널로도 접할 수 있었다.

생전의 알렉스 트리벡이 제퍼디를 진행하며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Jeopardy 공식 홈페이지

성인들이 출연하는 메인 버전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학생 부문, 중고생 부문 제퍼디도 별도로 특별판으로 편성됐고, 컴퓨터 게임쇼로도 만들어졌다. 특정 멜로디가 되풀이되는 중독성 강한 오프닝 음악도 화제였다. 트리벡은 3회 연속을 포함해서 8차례 데이터임 에미상(TV쇼 사회자 부문)을 받았다. 전미TV예술과학 아카데미에서 주는 평생공로상도 수상했다. 단일 프로그램을 가장 오랫동안 진행한 기록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TV방송과 관련한 각종 명예의 전당에는 빠짐없이 그의 이름이 올랐다. 제퍼디로 얻은 명예를 사회에 환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가장 있는 퀴즈쇼인 '제퍼디'의 녹화장면. /Jeopardy 공식 홈페이지J

1980년대부터 구호단체 월드비전의 오랜 후원자로 아프리카 등 빈곤지역을 돕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노숙자들의 자활을 돕는 후원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미담도 제조하는 국민 MC로 사랑받던 그가 2019년 3월 투병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매년 5만명의 미국인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여러분의 응원과 사랑으로 이겨낼 것이며 하던 일도 계속 하겠다.” 방송 진행때처럼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영상 메시지가 발표되자 미국의 모든 매체들이 속보를 타전했다.

알렉스 트리벡이 1980년대 아프리카로 가서 현지 아이를 안고 있다. 그는 오랜 월드비전 후원자로 알려져있다. /월드비전 공식 홈페이지

그는 투병 중에도 미국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으며 방송을 진행했다. 이듬해에는 ‘정답은… :내 인생을 돌아보며’라는 회고록을 냈다. 그 해 11월 8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고,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21년 1월 그가 진행했던 최후의 방영분이 전파를 탔다. 트리벡이 떠난 뒤 부인과 딸 등 유족들은 암환자들을 위한 시민단체인 ‘스탠드 업 투 캔서’에 췌장암 연구와 환자 지원을 위해 써달라며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알렉스 트리벡 기금’으로 명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