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재학생과 입학 예정자 3분의 2는 올 가을부터 학비를 전액 면제받을 전망이다. 이 중 가정 형편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학비에 더해 생활비까지 지원받는다. 존스홉킨스대는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운영하는 공립대가 아닌 사립대다. 그런데도 이런 파격적 무상교육이 가능하게 된 것은 억만장자 동문의 쾌척 덕분이다. 그 동문은 뉴욕시장을 지낸 마이클 블룸버그(82) 블룸버그통신 창립자다.

서민 가정 학생들에게 사실상 의대 무상 교육이 가능하도록 모교 존스홉킨스대에 거액을 쾌척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존스홉킨스대

그의 자선사업 재단인 블룸버그 필란트로피스와 모교 존스홉킨스대는 9일 10억달러(약 1조3850억원) 규모의 기부 계획을 발표했다. 기부금의 세세한 용처도 함께 발표했다. 최우선 수혜자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의학도들이다. 우선 집안의 연간 소득이 30만달러(약 4억1500만원) 이하인 학생에게 학비를 전액 지원한다. 이 중에서 상대적으로 형편이 더 어려운 연간 소득 17만5000달러 이하 집안의 학생들에게는 추가로 생활 지원비까지 나온다. 어렵게 의대에 들어갔지만 경제 사정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학자금 대출 이자의 부담을 짊어지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아주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대는 “당장 현재 재학생과 입학 예정자의 3분의 2가 이번 기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상류층 집안 자녀들을 제외하고 사실상 ‘의대 무상교육’이 가능하도록 거액을 기부한 까닭으로 블룸버그는 코로나 이후 황폐해진 미국 사회의 현실을 꼽았다. 그는 “코로나 이후 미국은 기대 수명이 단축되는 충격적 현실에 맞닥뜨렸는데, 의사, 간호사, 공중 보건 인력 부족은 심각하고 높은 학비는 학생들에게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재정적 부담을 덜어줘 이들이 가족과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존스홉킨스 의대의 실습장면. /존스홉킨스대

이번 기부액은 의대에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 간호대, 공공보건대, 공대, 인문대, 경영대, 예술대 등 다른 단과대에도 배분한다. 최근 설립 계획이 발표된 공공정책대학의 지원금으로도 일부 쓰일 예정이다.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 장자 순위 12위에 올라 있는 블룸버그는 평소에도 활발하게 기부해 왔는데, 특히 모교 존스홉킨스에 대한 남다른 애교심으로 유명하다. 블룸버그는 전기공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이듬해인 1965년 자기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학습 동기를 부여해 준 모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5달러를 기부했다.

이후 그가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를 창업해 성공시키고 뉴욕시장에도 선출되는 등 정치·경제계 거물로 성장하면서 기부는 지속됐고, 액수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6년에는 모교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고, 2001년에는 그의 지원으로 수준이 확 높아진 공공보건대학이 ‘블룸버그 공공보건대학’으로 명명됐다. 블룸버그는 2018년에도 존스홉킨스대에 18억달러를 기부했다. 블룸버그가 이렇게 존스홉킨스대에 꾸준히 거액을 희사하자 모교의 창학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계 최고 수준 의대와 대학 병원을 보유한 사립대로 알려진 이 대학 창립자 존스 홉킨스(1795~1873)는 유통·철도 사업으로 성공해 큰 부를 일군 사업가다. 그는 집안 대대로 독실한 퀘이커(기독교의 분파) 신자였고, 신의 계시에 따라 물질적 풍요를 멀리하고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헌신을 중시하는 퀘이커 교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 이에 따라 평생 일군 재산 700만달러(현재 가치 1억8320만달러)를 대학과 병원 설립에 쓰라는 유언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