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듣는 순간 미국에 역사로 남을 일이라는 걸 직감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유세 현장에서 피격 당한 직후 찍힌 사진 한 장이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귀에 총을 맞아 얼굴에 피가 흘러내리는 트럼프가 주먹을 불끈 치켜든 가운데 그의 위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장면이었다.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물론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 전역으로 급속도로 확산된 사진은 퓰리처상 수상자인 에반 부치 AP 기자가 찍었다. 부치는 2003년부터 AP에서 일하고 있는 베테랑 사진기자다. 지금은 백악관을 비롯한 정치 분야 사진 취재를 맡고 있다. 앞서 부치는 사건 당일 이 사진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리고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열린 선거 유세 도중 피격을 당한 뒤 무대에서 물러나면서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라고만 했었다. 그는 다음 날인 14일 CNN 인터뷰에서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수백 번도 더 해본 평범한 유세였다”며 “모든 것은 정상적이었다. 그런데 왼쪽 어깨 너머로 ‘펑’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게(암살 시도) 뭔지 알았다”고 했다. 이어 “나는 바로 ‘업무 모드(work mode)’로 들어갔고 최대한 빨리 뛰어 올라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뒤덮고 있는 경호원들을 촬영했다”며 “그러다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이 다음에 뭘 할까? 어떻게 무대에 올라갈까? 어디로 갈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등 이었다”고 했다. 부치는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며 “그래서 무대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그곳이 (트럼프가 향할) 대피로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갑자기 대통령이 일어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기 시작했고, 얼굴 옆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사진을 촬영했다)”고 했다.
부치는 “이 일이 시작되고 끝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확실하지 않다”면서도 “내 마음속에서 모든 일은 매우 빠르게 일어났다”고 했다. 이어 “총성을 듣는 순간 나는 이것이 미국에 역사로 남을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도 했다.
그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 역사에 중요한 순간이었고, 기록해야 했다”라며 “차분하지 못하면 일을 해낼 수가 없다”고 했다. 부치는 추가 총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며 “무대 뒤로 숨을 수 없고, 할 일을 해야만 했다”고 했다.
부치는 지난 2008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기자가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에게 신발을 던졌던 ‘신발 투척’ 사진도 촬영했었다. 백인 경찰의 과도한 진압에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반발해 워싱턴 DC에서 일어난 시위를 찍은 사진으로 퓰리처 상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