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아 구메뉴크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전으로 변해 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따르면 ‘세계대전 전조 단계’로 치닫고 있다. 북한군 파병이 근본 원인이다. 중국·벨라루스·이란이 러시아를 돕고 있지만 군수물자 지원에 한정될 뿐이다. 전선에 병력을 투입한 직접적 참전은 없었다. 북한은 다르다. 10월 말 현재 이미 세계 곳곳에서 북한군 파병과 참전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북한군 참전은 우크라이나 전황을 악화시킬 대변수가 될 전망이다. 10월 23일 기준 1만2000명 파병이 확인되고 있지만, 앞으로 파병 숫자가 점점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 당연하지만 전쟁은 사람과 군사장비를 통한 싸움이다. 32개월간의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한계점에 달하고 있다. 북한군만이 아니라 김정은이 지원한 엄청난 무기와 군사 장비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황이 확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주간조선은 우크라이나 종군기자와 인터뷰를 통해 북한군 대규모 파병에 따른 전쟁 양상의 변화와 전망에 대해 알아봤다. 인터뷰에 응한 인물은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여성 저널리스트인 나탈리아 구메뉴크(Nataliya Gumenyuk)’이다. CNN을 비롯한 서방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여기자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시민단체 PIJL(Public Interest Journalism Lab)의 CEO로도 일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0월 21일 아침 온라인으로 1시간5분가량 영어로 이뤄졌다.

- 지난 주말부터 글로벌 헤드라인을 '1만2000명 북한군 파병' 문제가 장식하고 있다. "러시아에는 지난 1년간 엄청난 양의 북한제 무기가 제공됐다. 북한군 파병, 참전 소식은 북한 무기가 러시아로 반입된 이후 전개된 상황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미국발 뉴스에 의존한다. 그동안 수차례 언급된 우크라이나발 경고를 무시해왔다. 무기가 가면 사람도 따라간다. 따라서 북한군 파병, 참전 문제는 그렇게 놀라운 얘기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정보통에 따르면 북한군은 이미 지난해 겨울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전선에 투입된 상태다. 나는 그 같은 사실을 지난 1월에 알아냈다. 아직 북한군 체포와 같은 확인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미 대규모 북한군 참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왔다."

- 러시아에 제공된 북한 무기의 실태는 어떤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발표한 북한 무기 관련 정보를 살펴보자. 지난해 겨울 기준이지만 전부 21건의 북한 무기를 통한 우크라이나 공격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24명이 사망하고 100 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여기에 24개 북한제 탄도탄이 사용됐다. 이들 탄도탄은 러시아 영토 내 3~4개 지역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선을 북한제 탄도탄 실험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그에 따라 군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민간인들도 희생되고 있다. 당연하지만 북한이 탄도탄을 제공할 경우 러시아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만 한다. 과연 러시아가 북한에 무엇을 줄지 한국 정부도 주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식적 얘기지만, 장거리 미사일의 경우 첨단 군사위성의 항법체계와 연계된 상태에서 활용 가능하다. 정확한 위치로 날아가려면 지구 전체에 흩어진 수많은 군사위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대략 200~300㎞ 바깥 목표물을 공격하려면 다채널 위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북한은 그 같은 위성이 없다. 미사일 실험이 동해 주변에 그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위성의 도움 없이는 태평양까지 정확하게 날아갈 수가 없다. 이미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위성의 도움이 없는 한 미국을 공격할 수가 없다. 북한이 러시아를 도우는 이유는 수십 가지에 이를 것이다. 핵심 중 하나는 러시아 위성의 활용이다. 중·단거리 미사일 실험은 물론, 미국을 향한 대륙간 탄도탄 공격에 러시아 최첨단 군사위성을 끌어들이려는 것이 김정은의 참전 의도 중 하나로 보인다. 득실을 따진 결과겠지만, 현재 중국은 자국 위성을 북한제 대륙간 탄도탄 공격에 동원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군 파병은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현재(10월 21일 기준) 몇 명의 북한군이 러시아에 들어와 있다고 보나.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국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1만2000명의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 내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은 시베리아 동부 하바롭스크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북한군 장성급 10명과 500명의 북한군 장교들이 지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보국은 이들 중 2600명이 10월 말까지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러시아 서부 국경도시 쿠르스크로 이동할 것으로 본다."

- 북한군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 보는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임무를 맡을지 아직 알기 어렵다. 이들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 내에 머물지, 우크라이나 영토로 들어와 싸울지도 아직 불투명하다. 주목할 부분은 북한군 전력 수준이다. 북한군은 1953년 이래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다. 1953년 한국과의 휴전을 통해 재래식 전쟁을 끝낸 뒤부터 현대전 경험이 전무하다. 이미 2년 반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 최전선이자 변화하는 21세기 군사 전술전략의 현장이다. (북한군이 어디로 가든 관계없이) 재래식 전쟁경험이 전부이던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군사 전술전략적 차원의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한국군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개인적으로 한국 군관계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북한에 비해 한국 군사력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고 확신한다. 미국과 동맹 관계이고 무기 수준도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의문시하는 것은 전쟁 변화의 속도다. 이제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인공이다. 드론 기술은 거의 2개월 만에 한 번씩 변화하고 있다. 아무리 비싸도 수백 달러 수준에 머물 무기지만, 수백만~수천만 달러 무기도 드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북한은 그 같은 새로운 패턴의 전쟁을 현장에서 배우고 익힐 것이다. 드론이라는 저가의 병기만이 아니라, 드론을 통한 군사전술도 급변하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의 엄청난 공격에 직면했다. 그때도 드론과 미사일이었다. 당시 263개의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떨어졌다. 그러나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 수많은 드론이 우크라이나 방공망을 파괴했다. 한국이나 서방 선진국 대부분은 잘 준비된 방공망을 자랑한다. 그러나 드론을 통해 미리 방공망을 파괴한 뒤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그대로 당하게 된다. 1000달러 이하 가격의 수백~수천 대에 이르는 드론이 공격해오는 것이다. 고가의 최첨단 방공망이라 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드론 종류도 새롭게 개발되고 양적·질적으로도 변화되고 있지만, 드론 전쟁기법도 다양화되고 있다. 북한은 그 같은 변화를 현장에서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진지를 공격할 드론을 조종하는 우크라이나 병사들. 구메뉴크 기자는 인터뷰에서 “드론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2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구입을 위해 8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32개월에 걸친 우크라이나 전쟁기간 중 모두 610억달러의 군비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이들 지원금의 대부분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미제 무기 구입비용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강력한 무기가 아닌, 비싸게 책정된 ‘제한적 살상력’의 미제 무기가 그동안 지원해온 무기의 실체다. 610억달러라고 하지만, 내막을 보면 미국 군수산업 지원이라고 보면 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크라이나가 제작한 드론을 도와달라’고 말해왔는데 미국이 드디어 화답한 셈이다. 우크라이나제 드론은 장거리 공격용이다.

반면 그동안 미국 지원금으로 제공된 ‘고가의 미제 드론’은 단거리 소규모 살상용 무기에 불과했다. 같은 8억달러 지원금이라고 하지만, 미제와 우크라이나제 드론은 질적·양적으로 전혀 다르다. 정치적·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제 장거리 드론이 갖는 위력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장거리 미사일은 아니더라도, 모스크바 공격에 활용될 최첨단 장거리 드론 양산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우연이자 필연이지만, 펜타곤의 우크라이나 장거리 드론 지원은 북한군 파병 소식 나흘 뒤에 내려진 결정이다.

- 한국에 대한 요청이나 기대는. "우크라이나 전 국민은 한국으로부터의 지원과 지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방어용에서부터 살상무기에 이르기까지, 군사기술과 협력에 관한 모든 것을 한국에 요청한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의 도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단지 한국에 부탁하는 것만이 아니다. 전쟁과 관련된, 특히 북한과 관련된 모든 사안을 한국과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누군가 우리를 도와줄 경우 우크라이나도 상대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파병된 북한군이 몽골계 러시아인으로 국적세탁을 한다는 얘기가 있다. "파병 북한군이 러시아 제11공수여단과 연결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11공수여단은 시베리아 중부 울란우데(Ulan-Ude)에 본부를 둔 소수민족 특수부대다. 지역적으로 볼 때 주로 몽골인들이 11공수여단 단원들이다. 2600여명의 북한군이 러시아 서부로 이동할 경우, 11공수여단과 연계해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군이 몽골인으로 가장해 전선에 투입되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사실 몽골과 아시아에 뿌리를 둔 소수민족은 우크라이나 여기저기에도 존재한다. 이들 모두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구메뉴크 기자가 추모한 우크라이나 여기자 빅토리아 로슈치나. 러시아군에 잡혀 고문 끝에 숨진 로슈치나의 시신이 지난 10월 18일 발견됐다. photo CNN

공교롭게도 필자는 1995년 12월 러시아 울란우데에 간 적이 있었다.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베이징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 3일간 머문 기억이 있다. 눈으로 덮인 한겨울 여정이었기 때문에 ‘영하 30도 얼음도시’란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러나 몽골인과 러시아인이 공존하는 기묘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뜻밖에도 당시 현지 시장에 가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고려인들이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인해 연해주에서 쫓겨나 생존한 고려인들과 울란우데 중앙시장에서 조우했다.

필자가 한국인이라고 말을 걸자 장사를 하던 고려인 10여명이 몰려왔다. 시베리아 한복판 울란우데에서 김치를 맛봤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푸틴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과정에서 소수민족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있다. 소수민족의 전사 소식은 뉴스가 될 수도 없다. 몽골인만이 아니라 고려인도 예외가 아니다.

- 러시아 정부가 숨기고 있지만, 러시아인이 아닌 몽골계 소수민족의 전쟁 중 사상률이 엄청나다고 한다. "물론이다. 이유는 러시아 내부 정치적·경제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소수민족은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나타낼 수가 없다. 더불어 울란우데와 그 주변은 러시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시베리아 동부는 극빈지역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에 입대할 경우 일정한 월급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 군생활은 소수민족이 돈을 벌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다. 따라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러시아 군대다. 몽골계 사상자가 많은 이유는 상대적인 징집자수가 러시아인들보다많기 때문이다."

- 북한 군사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크라이나 최고 정보통으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현재 당면한 최대의 적은 이란이나 중국이 아닌 북한이라고 한다. 일단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북한이 넘기고 있는 엄청난 양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최대 시련을 안기고 있다. 더불어 북한군 참전이 본격화될 경우 한층 더 힘든 시련이 밀려들 것이다. 북한은 전 국토를 군사기지로 만든 최악의 독재국가다. 그러나 인정해야 할 부분은 높은 수준의 군사력이다. 무기도 중요하지만,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군사력을 진화, 발전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의 낮은 경제수준과 기묘한 통치체제를 비하하면서 비웃지만 군대는 다르다. 훈련을 많이할수록, 거기에 따른 군기와 군전력도 높일 수 있다. 북한이란 나라를 우습게 볼 수 있지만 북한군은 전혀 다르다. 최첨단 군장비로 무장하더라도, 강력한 군기와 훈련으로 단련된 북한군을 무시할 수가 없다. 북한 미사일 수준이나 파워가 아무리 허술하다 해도 우크라이나 군과 시민들을 살상할 정도의 위력은 충분히 갖고 있다. 북한은 이란이나 중국보다 더 큰 시련이다."

- 북한군 참전이 나토군의 우크라이나 직접 참전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솔직히 말해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북한군의 직접적인 전쟁 참여는 나토의 새로운 과제가 되고 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힘을 합쳐 적극 대응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토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역할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전면에 나서 북한군의 전쟁 개입에 맞서야 한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경험한 북한은 동아시아 전체에도 새로운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만의 전쟁이 아닌 동아시아 전쟁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한 최초의 아시아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기시다는 2022년 6월 나토 정상회담 참석 당시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동아시아가 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전쟁 발발 4개월 만에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질 파괴적 위력을 이미 간파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일본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일본 외교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준과 속도로 진행된다.

한국 정부도 나토와 연계해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일본에 비하면 너무도 약하다. 일본 내 자체 분석이지만,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전쟁 경험을 통해 21세기 글로벌 최강군대로 변신할 것으로 본다. 핵은 물론, 드론과 러시아 첨단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김정은 휘하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일본 정보기관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즉시 중공군 참전이 필연적이라 예측했다. 맥아더 장군의 GHQ(연합군 최고사령부) 지도부는 당시 웃으면서 이 경고를 무시했다. 중공군 참전은 한국전쟁 발발 4개월 뒤인 1950년 10월 이뤄진다. 기시다가 이미 28개월 전에 간파한 동아시아 위기는 과장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독립 언론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아스트라’가 지난 10월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램에 공개한 동영상.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세르기예프스키에 위치한 러시아 지상군 제127자동차소총사단 예하 44980부대 기지에 북한군이 도착한 장면”이라는 설명이 첨부돼 있다. photo 아스트라 텔레그램

- 북한군 파병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나. "앞으로 북한군 파병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따라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무기 지원이 계속되는 한 북한군의 러시아 참전 규모도 증대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 정보 관계자는 북한제 무기 지원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푸틴 정권에서 보듯 러시아 군인이 아무리 죽어도 정권유지가 가능하다. 북한군이 아무리 많이 죽더라도 북한 김정은 체제가 변할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다."

- 마지막으로 한국 대통령을 직접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간단한 사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누구나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국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북한의 우크라이나 참전과 무기지원을 적극 막아야만 한다. 자유세계로서 러시아에 대한 자세도 분명히 하길 기대한다. 구체적인 것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판단하겠지만, 러시아에 대한 비상식적인 조치들도 적지 않다.

아주 상징적인 케이스 하나를 들어보자. 한국인 대부분이 믿지 않을 듯싶지만 현재 전범 국가인 러시아는 한국 입국 시 비자가 필요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우 한국 입국에 따른 비자가 필요하다. 아주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 겨우 얻을 수 있다. 비정상적이라고 보지 않는가? 한국의 적인 북한 협력국에는 무비자, 북한군과 맞서 싸우는 나라에는 비자가 필요하다니…. 비자 자체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국의 어정쩡한 자세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둘째는 무기지원 문제다. 살상용 무기는 물론이지만 그 어떤 장비나 무기라도 우크라이나인 모두가 반길 것이다. 한국은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통해 같은 민주주의 체제로서의 이념·가치·유대를 한층 강화해나갈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뷰 마지막은 최근 살해된 여성 저널리스트 빅토리아 로슈치나(Victoria Roshchyna)에 대한 얘기였다. 우크라이나인 모두가 슬퍼한 비극적이고도 비참한 27살 젊은 여성의 희생이다. 전쟁은 남성이나 군인만이 아니라 여성과 저널리스트의 목숨도 요구한다. 구메뉴크는 긴 호흡과 함께 눈물을 머금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로슈치나는 내가 일하던 TV 방송국의 사건사고 기자로 일하던 맑고 유능한 저널리스트였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러시아 점령지인 동부전선 취재를 시작했다. 현지 실상을 알리려는 생각에서 이뤄진 단독행동이었다. 직업정신에 따른 결정일 뿐,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기 위해 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곧바로 행방불명이 됐다. 시신이 발견된 것은 지난 10월 18일이다. 러시아군에 잡혀 고문을 당한 끝에 살해됐다. 나와 동료들은 살해에 가담한 러시아 전범자를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로슈치나의 시신은 아직도 러시아 점령지 내에 있다.”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한반도가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늑대와 양치기 소년 우화에 비견될 얘기다. 한국인 대부분은 ‘우크라이나=한반도’란 얘기를 흘려들을 듯하다. 우크라이나 북한군 파병, 참전도 해외토픽 정도로 이해할지 모르겠다. 우크라이나인들도 2022년 2월 전쟁 이전만 해도 푸틴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한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했다. 푸틴이 허세를 부리거나,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세력을 돕기 위한 양치기 소년의 과장된 비명 정도로 받아들였다. 정작 전쟁이 터진 이후에도 ‘마초’ 푸틴의 주먹자랑일 뿐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키이우 공습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체를 자신의 수중에 넣기 위한 전쟁에 나선 상태다. 여차하면 러시아 주변 작은 나라 전부를 점령할 기세다. 우크라이나인 모두가 ‘설마’로 시작된 전쟁이지만, 비참한 현실은 이미 3년째 접어들고 있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인구는 5000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10월 현재 3500만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100만명에 가까운 전쟁 사상자와 유럽 전역을 떠도는 수백만 난민 등 인구의 30%가 줄어든 것이다. 전쟁 피해만이 아니라 전쟁 피로증도 우크라이나 전역에 확산된 지 오래다. 물론 러시아의 피해는 한층 더 하다. 지난 9월 통계로, 하루 평균 숨진 러시아 군인이 무려 1200 명에 달한다.

기시다 전 일본 총리가 강조한 ‘우크라이나=동아시아’는 중국만이 아닌 북한의 변신을 고려한 예측이라 볼 수 있다. 북한군 파병, 참전은 1960년대 한국군 베트남 파병 이상의 의미와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일부 외신은 파병 북한군 1인당 2000달러의 월급이 보장된다고 전한다. 인간 심리지만 현장을 직접 경험할 경우 자신감과 자부심이 생기게 된다. 간단히 말해 겁나는 게 없어진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참전 경험을 통해 한반도만이 아닌 동아시아 나아가 미국의 골칫덩어리로 진화할 것이다. ‘우크라이나=한반도’는 이미 시작됐다. 북한군 동태 파악뿐만 아니라 최첨단 현대전 체득을 위한 한국군 군사 고문단 현지 파견도 조만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푸틴과 김정은 외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구메뉴크가 인터뷰 도중 수차례 강조한 말이다. 한국인으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험악한 상황이 북한군 파병, 참전을 통해 점점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나탈리아 구메뉴크(Nataliya Gumenyuk)는 누구?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거주하는 여성 저널리스트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침략 이후 전 세계 50여개국 매체에 현지 상황을 알린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독일 ‘자이트(Die Zeit)를 비롯한 서방 유력 미디어에 정기 기고를 하고 있다. 비디오 저널리즘과 더불어 러시아 전범자 자료수집에 주목하는 민간단체 PIJL(https://www.journlab.online)의 CEO로도 활동 중이다. 2022년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 민주주의상을 비롯해 다수의 저널리스트 관련 국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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