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치르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세계 각국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두 개의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전, 이스라엘·하마스전)과 미·중 주도 글로벌 공급망·무역 각축전 등이 결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주요국 정부는 시시각각 개표 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대비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2년 9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휘말린 유럽이 미 대선을 보는 속내는 복잡하다. 나라별로 정치·이념적 입장에 따라 조금씩 입장이 다르다. 다만 유럽연합(EU)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로 대표되는 주류 진영은 해리스의 당선을 바란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 참전으로 확전 위기가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 아래 나토와 7국(G7) 체제를 통한 러시아 견제와 압박이라는 기존의 협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권 재창출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빠른 종전을 위해 러시아와 담판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아 유럽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특히 트럼프의 고립주의 외교 정책으로 인해 유럽이 독자적 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 불리한 종전이 강요되고, 유럽 각국이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다만 유럽 내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대 중인 극우 입장에선 트럼프의 당선이 큰 호재다.

그래픽=김성규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헤즈볼라와의 교전에 이어 이란과의 전면전 위기로도 확산되는 중동 입장은 더욱 복잡하다. 해리스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레바논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종식하기 위해 빠른 휴전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역시 당선될 경우 이스라엘에 “취임 전 휴전하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스라엘에 우호적이고, 이란을 극히 불신하는 입장인 만큼 이른 휴전이 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유리한 중동 안보 구조 구축에 나서면서 유럽 주요국 참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중국 내부에서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똑같이 나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본격화된 미·중 무역 전쟁과 미국의 대중 견제가 조 바이든 현 대통령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지속됐기 때문이다. 다만 관영 매체들의 논조를 보면 해리스에 대한 선호도가 약간 더 높은 것으로 관찰된다.

해리스는 TV 토론과 인터뷰에서 대중 무역 전쟁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대만 문제에서는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대화가 통하는 상대라는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러닝메이트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30여 차례 중국을 방문했던 지중파(知中派)란 점도 중국의 호감을 얻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트럼프는 과거 재임 기간에 일으킨 중국과의 무역 전쟁의 강도를 높이겠다면서 중국산 수입품에 일괄적으로 60%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약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200%로 인상할 것” “중국의 엉덩이를 걷어차겠다” 등 중국을 겨냥한 강경 발언도 쏟아냈다. 러닝메이트 J D 밴스 상원의원도 “해리스가 월즈를 부통령 후보로 낙점한 것을 중국이 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중국 지도부 일각에서는 오히려 트럼프가 협상 상대로 낫다는 의견도 있다고 알려졌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중국이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은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승인할 것으로 알려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 폐막 전인 5일 열리는데,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부양책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안보 동맹으로 밀착해온 일본 정부 인사들은 표면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되든 미·일 동맹은 변함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이달 중순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이유도 ‘정파와 무관하게 동맹은 굳건하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일본은 해리스의 당선을 내심 바라면서도 트럼프의 귀환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런 일본의 속마음을 말해주는 신조어가 올 초부터 일본 정·재계에 유행하기 시작한 ‘모시토라’다. ‘혹시’라는 뜻의 일본어 ‘모시’에 트럼프를 지칭하는 ‘토람프’를 합친 신조어다. ‘토라’는 일본어로 ‘호랑이’란 의미도 있어, 트럼프 당선에 대한 두려움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일본에서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방위비 부담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내각은 바이든 행정부와 ‘5년 내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2%까지 증액한다’는 데 합의했는데 트럼프 집권 시 합의가 깨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미국 국방비가 GDP의 3%대인 점을 들어, 일본의 2%도 불충분하다며 추가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일본은 해리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스는 “(미국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독립 기관이며, 대통령이 되면 나는 연준 결정에 절대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는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에 직간접으로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금리 정책 등에 이견이 있다는 이유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교체하는 등 경제 정책에 적극 개입하려 할 경우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일본 경제에도 엔화 환율 급변동 등의 여파가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