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윤석열 대통령(오른쪽). photo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조기 회동이 결국 불발됐다. 페루 리마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지난 11월 21일 귀국한 윤 대통령은 당초 귀국길에 미국 플로리다를 경유해 트럼프 당선인과 면담하려는 희망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 측이 “내년 1월20일 대통령 취임식 전까지는 해외 정상과의 회동이 어렵다”라고 완곡한 거부의사를 밝히면서 미국 대통령 취임식 전 회동은 끝내 불발됐다. 트럼프 진영 측은 민간인과 외국 정부와의 외교협상을 금지하는 ‘로건법’을 들어 취임식 전 회동이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당선인과 취임식 전 회동을 고대해왔던 일본 역시 같은 이유로 만남이 불발됐다. 일본 측은 2016년 11월 트럼프 당선인이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처음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외국 정상 가운데 최초로 당시 트럼프 당선인과 사전회동을 했던 전례에 따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와 트럼프와의 취임식 전 조기회동을 추진해 왔다.

앞서 2016년 아베 당시 총리는 트럼프 당선 직후 20분간 전화통화를 갖고, 일주일 만에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맨해튼의 트럼프타워에서 트럼프 당시 당선인과 90분간 마주 앉았다. 당시 아베 총리는 트럼프에게 황금빛으로 도금된 54만엔(약 530만원) 상당의 ‘혼마’ 골프채를 선물했다. 이 자리에는 트럼프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와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배석했다.

트럼프 1기 정권 출범 직전 성사된 이 만남은 트럼프와 아베 간 ‘브로맨스’의 토대가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시바 총리도 지난 11월 7일(일본시간) 트럼프와 통화 직후, 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미국을 경유해 트럼프 당선인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만남을 가진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끝내 불발된 것이다.

현재까지 트럼프와 만남이 성사된 외국 정상은 지난 11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보수정치행동회의(CPAC)가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개최한 회의에 연사로 초대받은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 행사장에서 트럼프와 만난 밀레이 대통령은 ‘남미판 트럼프’로 불리는 인물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의 11월 5일(미국 대선) 승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적 복귀”라며 “트럼프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정치적 기득권에 도전했다”고 트럼프를 한껏 추켜세웠다. 트럼프 측은 “정식 회동이 아니다”란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이 자리에는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으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도 함께했다.

중국ㆍ한국에도 밀린 일본

트럼프 당선인과의 첫 만남을 아르헨티나에 빼앗긴 까닭에 이시바 총리와 트럼프 당선인 간 조기회동 불발은 일본에는 더욱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일본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가운데 트럼프 진영과 가장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실력자인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지난 4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트럼프타워를 찾아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와 직접 만나기도 한 터였다.

일본은 트럼프 당선인과의 첫 만남은 물론, 첫 전화 통화도 베냐민 네탸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심지어 전화통화 시간도 한국에 비해서도 늦었다. 이시바 총리와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는 지난 11월 7일 오전 9시30분(일본시간)께야 성사됐는데, 한국보다 약 90분이나 늦은 시간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월 7일 오전 8시(한국시간)께 트럼프와 통화가 성사됐는데, 일본보다도 약 90분이나 앞선 통화였다. 윤 대통령과 트럼프의 통화 시간 역시 12분으로 이시바 총리와 트럼프의 통화(5분)에 비해서도 2배 이상 길었다. 2022년 5월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찾은 데 이어 또다시 한 방을 먹은 셈이다.

이와 관련 미국 국무부 사정에 정통한 국내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마침 트럼프와 직통 번호를 갖고 있어 일본보다 앞서 통화가 이뤄진 것”이라며 “한국이 일본보다 먼저 통화하는 바람에 트럼프 캠프에서도 적잖은 혼선이 생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대개 당선인 진영에서는 세계 주요 현안과 각국의 정치경제적 지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당선인이 통화해야 할 주요국 정상 리스트를 먼저 만든 뒤, 통화 우선순위와 통화 시 나눌 간략한 대화의제 등을 선정해 당선인 측에 전달한다고 한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지금까지 70여개국 정상과 트럼프 당선인과의 통화가 이뤄졌다.

일례로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 11월 7일 오전 5시(중국시간)께 트럼프와 통화가 성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시간으로 11월 6일 오전 2시30분(중국 시간 기준 11월 6일 오후 3시30분)께 미국 플로리다에서 트럼프가 대선 승리를 선언했는데, 대선 승리 13시간30분 만에 시진핑 주석과 통화가 이뤄진 것. 시차를 고려하면 중국(오전 5시)→한국(오전 8시)→일본(오전 9시30분) 순으로 트럼프와 통화가 이뤄진 셈인데, 일본으로서는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서도 트럼프와 통화가 후순위로 밀린 셈이다.

대만 역시 일본과 비슷한 이유로 좌불안석이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미국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대만이 가져갔다”며 “대만은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성토한 바 있다. 이에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은 트럼프 당선 직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대만과 미국의 파트너 관계는 지역의 안정에 초석 역할을 계속하고 양국 모든 국민에게 더 큰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한다”는 내용의 축전은 보냈으나, 트럼프와 통화는 끝내 불발됐다.

대만도 통화 못해 좌불안석

미국은 1979년 미·중 수교 직후 대만과 단교하면서 공식적으로는 미수교 상태다. 트럼프 당선인으로서도 미수교국 정상인 대만 총통과 반드시 통화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반면 2016년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첫 당선된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당시 대만 총통은 트럼프와 10분간의 통화에 성공한 바 있다. 미국과 대만이 단교한 지 37년 만에 대만 총통과 미국 대통령 당선인 간에 이뤄진 첫 통화였다. 당시 통화에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된다”며 강력 반발할 정도였다.

이에 대만 조야에서도 당시와 같이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를 내심 기대해 왔다. 특히 신임 샤오메이친(蕭美琴) 부총통은 모친이 미국인으로, 사실상 주미 대만대사 격인 주미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 대표 출신이기도 하다. 이에 “라이칭더 총통이 비밀리에 트럼프 당선인과 통화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대만 총통부와 외교부는 “통화한 사실이 없다”며 “주미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를 통해 축하의 뜻을 전달했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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