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J. 트럼프 미국 제47대 대통령 당선자가 이달 20일 4년의 새 임기를 시작한다. 그는 이날 낮 12시 워싱턴DC 연방의사당 야외무대 취임식장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 맞은편에서 성경(聖經) 위에 왼손을 얹고 오른손을 들고 취임 선서를 한 뒤 취임사를 통해 미합중국의 나아갈 방향과 국정(國政) 구상을 밝힌다.

8년 전인 2017년 1월 20일 정오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식에서 대통령 선서를 하고 있다./조선일보DB
존 로버츠(맨 오른쪽)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2017년 1월 20일 낮 워싱턴 D.C.의 연방의회 의사당 서쪽 정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 선서를 주관하고 있다./조선일보DB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재선에 실패했다가 4년 야인(野人) 생활을 거쳐 1892년 재선에 성공한 그로버 클리블랜드(민주당) 이후 132년 만의 ‘징검다리 대통령’이다. 이번 취임식 준비위원회는 이달 7일까지 1억 7000만달러(약 2500억원)가 넘는 돈을 모았다. 최종 액수는 역대 최대인 2017년 트럼프 취임위원회 모금액(1억700만달러·약 1551억원)의 두 배인 2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1기 보다 강력할 ‘트럼프 충격’

2017년부터 집권 1기 동안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공포’와 ‘파격’의 정책을 보였다. 한미(韓美)연합군사훈련 전격 중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세 차례 정상회담 및 27차례 사신(私信) 교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그러나 트럼프 2기엔 이 보다 몇 배 이상 강한 충격들이 벌어져 한국 정부와 기업이 곤욕을 치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작년 9월 보고서에서 “트럼프는 한국을 무역에서는 적대자, 안보에서는 무임(無賃)승차자로 본다. 한국은 트럼프 2기 임기 내내 미국 대외 정책의 조준점(crosshairs)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싱크탱크 CSIS가 2024년 9월 26일 발간한 보고서의 표지. 이 보고서의 한국 부문을 집필한 엘런 김 CSIS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2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도 10∼20% 보편적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위협하며 협정 개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CSIS
그래픽=양진경

트럼프 1기 3년 차였던 2019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114억 달러)가 1기 출범 직전인 2016년(232억 달러)의 절반 아래로 급감한데서 보듯, 트럼프발(發) 충격은 빈말[虛言]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560억 달러를 웃돌아 역대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무역 흑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군사·안보 분야 협조가 순조로웠던 바이든 정부 시절과는 판이한 낯설고, 아슬아슬하며, 위험한 여정이 트럼프 2기에 펼쳐질 수 있다. 대한민국이 이런 위기와 충격의 파도를 잠재우고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세 가지 방책(方策)이 있다.

◇①‘마가 미국’과 트럼프에 대한 따뜻한 이해

첫 번째는 트럼프가 다시 이끄는 달라진 미국에 대한 정확한 독해(讀解)와 세련된 접근이다. 트럼프 2기 시대의 미국과 세계 정치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점과 자세로 미국을 탐구하며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점은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독트린’이다. 트럼프 1기 때 반짝하다가 소멸될 유행으로 여겨졌던 ‘마가’는 4년 만에 완벽하게 부활했다. 2024년 11월 5일 실시된 대통령, 연방 상·하원, 지방 주지사·의회 등 모든 선거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은 완승을 거두었다. 이는 대다수 국민들이 최소한 향후 4년 동안 미국을 이끌 국가 비전으로 ‘마가’를 수용했음을 뜻한다.

트럼프의 최측근 경제 참모 중 한 명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전 무역정책국장이 2024년 7월 쓴 책(왼쪽)과 '마가(MAGA)' 청년 운동가인 찰리 커크가 2020년 쓴 책(오른쪽)/송의달

지난해 대선에서 65세 이상 고령층과 대졸 백인 여성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과 뉴욕·캘리포니아 같은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까지 트럼프 지지율이 올랐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터프츠(Tufts)대 연구소 분석 자료를 보면, 트럼프는 2024 대선에서 18~29세 청년층에서 4년 전 보다 10%포인트 높은 득표(46%)를 했다. 4개의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트럼프에 대한 높은 인기는 트럼프주의의 핵심인 ‘마가(MAGA)’에 대한 국민적 승인(承認)과 동의(同意)를 빼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풀뿌리 차원에서 확산하는 ‘마가 운동’

미국에서 ‘마가 운동’은 금방 사라질 유행이 아니다. 청년 보수단체인 ‘터닝포인트(Turning Point) USA’의 찰리 커크(Charlie Kirk·31)를 비롯해 인스타그래머인 바니 하리(Vani Hari·팔로워 210만 명), 유튜브 논평가 패트릭 베트 데이비드(Patrick Bet-David·구독자 640만 명), 팟캐스트 운영자 마이클 놀스(Michael Knowles·구독자 200만 명) 같은 자발적인 ‘마가 운동’ 전사(戰士)들이 민간 차원에서 불을 붙였고 점점더 많은 시민들이 이에 열광하고 있다.

2016년 출범한 ‘터닝포인트 USA’는 미국 전역에 1000개 넘는 대학과 1200여개 고등학교에 지부(支部)를 운영 중이다. 찰리 커크의 라디오 쇼는 180개 라디오 방송국으로 송출 중이며, 틱톡·엑스(X·옛 트위터) 등에서 그의 게시물을 구독하는 사람은 2000만명이 넘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24년 12월 22일(현지 시각) 청년 보수단체인 '터닝포인트 USA(Turning Point USA)’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개최한 '아메리카 페스트 2024(America Fest 2024)'에 참석해 터닝포인트 USA 창립자인 찰리 커크와 악수하고 있다./로이터

이같은 풀뿌리 마가(MAGA) 운동에 힘입어 2020년 대선에서 부정 선거가 자행됐고 코로나19 백신의 효용이 과대포장됐다고 확신하는 미국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트럼프 2기 내각이 ‘마가 충성파’ 일색으로 꾸며진 것 역시 미국 정치사회의 달라진 지형도를 반영한다. 올해 40세인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과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39)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을 필두로 트럼프 2기 정부에는 ‘젊은 마가(Young MAGA)’ 리더들이 대거 발탁됐다.

국방장관, 국가정보국(DNI) 국장, 연방수사국(FBI) 국장에 각각 내정된 피트 헤그세스(44)와 털시 개버드(43), 캐시 파텔(44)이 대표적이다. 수지 와일스(Susie Wiles·67세) 비서실장을 제외하면 백악관 보좌진도 마이크 왈츠(50) 국가안보보좌관, 댄 스커비노(48) 부비서실장, 스티븐 밀러(39) 정책담당 부비서실장, 제임스 블레어 입법·정치·공공 담당 부비서실장처럼 50세 이하가 대부분이다.

트럼프 2기의 행정부와 백악관은 '트럼프 충성파'들도 짜여졌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맨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엘리세 스테파틱 주유엔대사, 톰 호만 국경 짜르,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대사, 스티픈 밀러 백악관 부실장이다. 사진 가운데는 크리스티 놈 국가안보부 장관 내정자이다./SNS

◇‘마가’ 논리 이해하고 공감하며 접촉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인 트럼프는 ‘트럼프 키즈(Trump kids)’ 발탁으로 미국사회의 주류(主流)를 ‘마가 세력’으로 물갈이하고 트럼프주의의 영속화를 꾀하고 있다. 이는 워싱턴의 정치 문법은 물론 외국 정부·기업과의 관계와 협상 방식·내용까지 송두리째 바꿀 전망이다.

새로운 미국 정치사회의 규범이자 대원칙으로 자리잡은 ‘마가 독트린’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없다면, 한국 정부와 기업, 전문가들의 트럼프 2기 정부 및 정치권과의 속깊은 대화나 원만한 협상 타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 예로 캐시 파텔 FBI 국장 내정자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정부 내의 공범(共犯)자들을 반드시 없애겠다”며 “미국민들에게 가짜 뉴스를 퍼뜨려 조 바이든의 2020년 대선(大選) 도둑질에 한통속편이 됐던 언론인들을 색출해 민·형사상으로 단죄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코로나 백신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장 강하게 내왔다.

캐시 파텔 미국 중앙정보국(FBI) 국장 내정자가 2023년 발간한 책 표지(왼쪽)과 책 앞부분 목차(오른쪽)/송의달

한국의 미국 접근 및 공략, 로비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마가 운동과 마가 리더들의 논리와 주장, 세계관을 이해는커녕 반감(反感)을 갖고 있거나 트럼프 이전의 미국 또는 워싱턴과 같은 태도로 상대하다가는 백전백패(百戰百敗)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에 우리가 미국과 순항하려면, ‘마가 독트린’ 수용으로 압축되는 미국의 변화 흐름과 본질, 내용을 따뜻한 마음으로 학습하고, 성찰하며, 체득해야 한다. 워싱턴 DC, 뉴욕 같은 대도시의 싱크탱크나 의회 같은 상층부 엘리트들만을 상대해온 대미(對美) 아웃리치(outreach·지원 및 접촉) 활동도 ‘마가(MAGA)’ 운동 단체와 지도자들, 행사장, 지역 사회 등으로 다각화하며 현장을 파고들어야 한다.

‘마가’ 운동의 최고 지도자인 트럼프 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를 돈만 아는 인물·거짓말쟁이·사기꾼 같은 비정상적 인물로 간주하고 그의 ‘본심(本心)’ 탐구에 소흘할수록, 한국은 트럼프 대응에 많은 시간과 비용, 감정을 소모하며 낭패를 겪게 될 것이다. “트럼프 2기의 성공이 곧 한국의 성공이 된다”는 믿음과 애정으로 트럼프와 트럼프 2기, 마가 운동을 대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제45 47대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말과 2024년 말 두 차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에 선정됐다. 왼쪽 사진이 2024년 11월 타임지 표지이다./TIME
도널드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은 1987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9권의 책을 썼다. 이 가운데 2000년 낸 <The America We Deserve>와 2011년, 2015년 책(사진 왼쪽부터)은트럼프 자신이 정치하는 이유와 대통령의 역할, 미국 및 국제정치에 대한 인식을 명료하게 적고 있다./Amazon

◇②미국의 사활적 목표인 ‘반중(反中) 전선’ 동참

두 번째는 트럼프 대외 정책의 최고 관심사와 목표가 ‘중국 타도’에 있음을 간파하고 이에 최대한 ‘맞춤형 동참’을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2011년 발간한 저서 <Time to Get Tough>에서 “중국은 미국의 적(China is our Enemy)”이라고 못박았다.

그의 반중(反中)적 국제정치관은 지금까지 0.01mm도 바뀌지 않고 더 강화됐다. 그가 불시에 내던지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대한 예찬은 계산되고 의도적인 언사(言辭)일 뿐이다. 트럼프가 집권 1기에 고율 관세 부과로 불붙인 대(對)중국 압박·고사 작전은 바이든 정부로 계승됐고 트럼프 2기에는 더 전면적·강압적으로 펼쳐질 공산이 높다.

그는 입버릇처럼 “모든 중국 상품에 대해 60~100% 관세를 붙여야 한다”며 2022년 기준 매일 200명 넘는 미국인들을 마약중독으로 사망케 하는 중국산 펜타닐이 미국에 유입되는 한 10% 추가 관세를 붙일 것이라고 호언한다.

파나마 정부에 파나마 운하 반환을 요구하고 덴마크 정부에 세계 최대 섬인 그린란드를 미국에 팔라고 트럼프가 위협하며 윽박지르는 문제의 뿌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파나마 국내 정치를 점차 지배·통제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희토류 광물 매장지이자 북극 항로의 최고 요충지인 그린란드에 팽창주의적 마수(魔手)를 뻗치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더이상 수수방관(袖手傍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연방하원의장이 2019년에 쓴 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다룬 4권의 책을 쓴 깅리치는 이 책에서 트럼프가 갖는 반중(反中) 정서의 원인과 배경, 트럼프와 중국의 충돌 지점 등을 파헤쳤다./Amazon

중국은 1978년부터 2018년까지 30년 동안 연평균 10% 가까운 경제 성장을 질주했다. 그 결과 중국 경제력은 현재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에 육박한다. 미국 GDP의 7% 정도인 러시아와는 체급(體級) 자체가 다르다. 러시아가 서구(西歐) 근대문명이라는 공통 분모를 미국과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문명권 자체가 다르다. 2022년 10월 백악관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의 지적 대로, “중국은 미국에 대한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이며 “경제·외교·군사·기술적으로 점점 더 기존 국제 질서를 바꿀 역량과 의지를 갖고 있는 유일한 경쟁자”이다.

◇중국은 미국 실존적으로 위협하는 최대 도전국

미국 보다 인구가 4배 정도 많은 중국은 매년 100만명 넘는 이공계 대졸자를 배출하며 제조업 생산량 기준 14년 연속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일부 첨단산업에선 미국을 추월할 태세다. 일례로 미래 첨단 산업의 ‘게임 체인저’인 양자(量子) 컴퓨터 분야에서 세계 특허 최상위 5개 기업 중 1위와 3위는 중국 회사다. 중국이 2025년부터 5년간 양자 컴퓨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150억달러·약 22조원)는 같은 기간 미국의 총투자 예정액(38억달러) 대비 네 배 정도 많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미국 CSIS의 세스 G. 존스(Seth G. Jones) 연구원은 2024년 10월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세계 10대 기업(방위와 비방위 합산) 명단에서 1위와 2위 등 4개가 중국 기업”이라며 “중국은 2023년 세계 최다(67회) 우주 발사를 했고 2035년까지 1만5000개의 저궤도 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2024년 11월부터 초음속 드론, 세계 최초 전자기식 캐터펄트(EMALS) 장착 강습상륙함, 6세대 스텔스 전투기, 3km 반경 내에서 1만명 이상 사용자에게 초(超)고속·저(低)지연·고(高)신뢰 데이터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군사용 5G 시스템 같은 최첨단 신무기들을 공개했다. 중국의 해군 함정 수는 2020년부터 미국 보다 많은 세계 최다(最多)가 됐고, 중국의 해군 함정 건조 능력은 미국 대비 233대 1 비율로 압도적 우위에 있다. 이런 흐름을 못 끊으면 미국은 2등 국가로의 추락을 피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 공약으로 발표한 '어젠다(Agenda) 47'에 담겨 있는 중국 관련 공약들/인터넷 캡처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무역최혜국(MFN) 대우 폐지, 최소 60% 관세율 부과, 미국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 금지 같은 공약을 내건 것은, 양국 관계가 ‘전면적 대결’로 진입했다는 판단에서다. 트럼프 2기 백악관과 행정부, 연방의회에는 미국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순도 높은 반중(反中) 강경파들이 포진해 있다.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짐 리시 상원 외교위원장,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 이들은 국방력과 에너지 패권, 서방 자본의 중국 이탈, 위안화 하락 같은 카드를 총동원해 중국의 명줄을 끊어야 한다는 결의(決意)로 충만해 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反中 노력 적극 협조

그런 점에서 트럼프 2기의 ‘마가(MAGA)’는 미국 패권을 흔들고 은밀하게 미국 붕괴 공작을 펴는 중국을 격멸(擊滅)시키려는 종합 전략에 가깝다. 트럼프 2기의 국방·교육·불법 입국·선거제도 개혁과 스파이·사이버 해킹 대응의 밑바탕에는 모두 ‘반(反)중국’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미국 국방부의 3인자인 정책 담당 차관에 발탁된 엘브리지 콜비. 1979년 생인 그는 하버드대 학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사진 왼쪽은 2021년에 콜비가 예일대 출판부에서 발간한 저서 <거부의 전략>. 오른쪽 사진 원 안에 있는 인물은 피트 헤그세스(44) 트럼프 2기 국방장관 내정자./SNS

트럼프 2기 정부는 그러나 “아메리카 퍼스트는 아시아에서 미국 혼자일 수 없다(America First Can not Be America Alone in Asia)”면서 동맹국의 협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2024년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12분 전화통화에서 “미국의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과 트럼프 2기 미국이 ‘찰떡 궁합’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중국 대응, 구체적으로는 반중(反中) 전선 동참과 구축(構築)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봉쇄·억제에 국력을 총집결하는 트럼프 2기 정부에 강력한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한 한국의 참여는 강력한 원군(援軍)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이같은 간절함을 꿰뚫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수준을 넘어 다양한 협력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 대만 해협 유사시 해군 병참 지원 약속, ‘항행의 자유 작전’ 참가,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는 필리핀 등에 군사 지원, 남중국해 일대에서 미국·일본 등과의 정례 군사훈련 실시 가운데 최소한 몇 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한국은 이를 통해 트럼프 2기 미국의 정치·군사적 부담을 덜어주고 도와주는 ‘진정한 동맹’이자 ‘영혼의 친구(a soul mate)’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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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미국과 찰떡궁합 이뤄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주도

한국의 반중(反中) 전선 동참은 한미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시키는 동시에 대한민국 경제를 도약시키는 결정적인 반전(反轉) 카드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경제 분야에서 최근 중국에 속속 밀려나고 있다. 한국의 8대(大) 주력 산업 중 조선·디스플레이·석유화학·배터리 등 7개 부문에서 한국은 최근 10년 동안 중국에 세계 1위를 추월당했거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2020년 33%였던 한국의 조선(造船) 수주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24년(1~11월)에 18%로 급락했다. 전기차 배터리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020년 34.8%에서 2024년(1~11월) 19.8%로 주저 앉았다. 철강은 중국과의 점유율 격차가 10%포인트 넘게 벌어져 공장 폐쇄 같은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 자유무역과 공정 경쟁의 규칙을 무시한 중국공산당의 천문학적 보조금과 자국 기업 밀어주기에 힘입어 중국 기업과 기술자들이 첨단 기술력까지 확보하고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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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약진은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 가장 많이 경합하는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024년 말 200개 수출기업을 상대로 ‘수출 위협 요인’을 묻는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중국의 과잉 생산과 저가 수출’(27.0%)을 가장 많이 꼽았다. ‘트럼프발(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는 3위(17.9%)였다. ‘트럼프 2기 미국 보다 중국이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더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美와 경제·기술 동맹 강화해 중국 따돌려야

한국 산업이 거대 중국을 돌파할 카드로 ‘미국과의 경제·기술 동맹 강화’가 가장 유력하고 현실적이다. 자국에 첨단 제조 시설을 유치하면서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을 흔드는 ‘새판 짜기’에 나서는 미국에게 한국은 최고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같은 자유민주 국제진영에 있는 일본·독일·대만 등보다 제조업 역량과 포트폴리오가 뛰어나고 견실하다.

한국은 미국의 반중(反中) 전선 동참이라는 군사·안보 분야 협력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경제·통상·기술 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이차전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원자력, 바이오 같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머리를 맞대고 린치핀(linchpin·핵심) 분야를 발굴하고 설계·제조 같은 역할을 나누어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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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한국은 중국이 배제된 자유민주 국제진영에서 제조업 1등 국가로 도약하고 중장기적인 번영을 구가(謳歌)할 수 있다. 긴밀해진 한미 관계를 토대로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품에 대한 관세 부과시 예외 또는 특별 대우를 요구해 관철시키는 방안도 추진할만하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2024년 11월 ‘미·중 갈등 시대 한·미의 공동 번영을 위해’라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경제 안보와 기술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한국·미국과 뜻을 함께하는 국가와의 ‘기술 동맹’이 필요하다. 반도체와 AI 분야에선 ‘칩(chip)4′를 (한국,미국,일본,대만 4개) 동맹국 간 완전히 통합한 협력체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조선·방위산업도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공급망에서 중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배터리는 탈(脫)중국 공급망을 통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다.”

그래픽=양진경
2024년 11월 18일 오전 부산작전기지에 미국 해군 로스엔젤레스급 원자력추진잠수함(SSN) 컬럼비아함이 군수품 적재와 승조원 휴식을 위해 입항하고 있다./연합뉴스

◇新공급망으로 중국 굴레 벗어나 최강국 도약

한 마디로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및 핵심 우호국들과 함께 만들어 여기에 올라타는 게 한국의 생존을 위한 최상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한미 양국의 신뢰가 더 쌓인다면, 한국의 독자 핵무장 추진과 핵 잠수함 보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도 가능할 것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북방의 3개 권위주의국가들이 핵 능력을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핵 보유는 자위(自衛)적 차원의 정당성을 갖는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 2기의 강력한 대(對)중국 압박·억제는 한국에 숨 쉴 공간을 열어 주는 호재(好材)이자, 중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국이 최강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디딤돌이 될 수 있다. 1992년 한중(韓中) 수교를 계기로 미국의 양해 아래 시작된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은 30년 만에 효력을 다했다.

이제는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라는 ‘안미경미(安美經美)’로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과의 경제·기술 동맹 확장으로 대한민국의 자강(自强)과 세계사적 의의(意義) 구현에 나서야 한다.

중국이 설정한 도련선(島鏈線, island chain)은 태평양의 섬(島)을 사슬(鏈)처럼 이은 가상의 방어선(線)으로 중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뜻한다. 중국은 2030년까지 2도련선(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 2050년에는 3도련선(알류산열도~하와이~뉴질랜드)까지 서태평양의 제해권을 장악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가장 가까운 1도련선 안에 위치해 있다./SNS

중국과는 불필요한 마찰을 극소화하고 동등한 주권국가로서 호혜(互惠)적 관계로 대하면 된다. 중국의 앞선 기술력을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도 필요하다.

한국은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 트럼프 2기 정부가 우리에게 절실히 원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반중(反中) 전선 동참 등을 적절히 수용하면서 반대급부로 우리 몫을 확실히 챙기는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전략을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기업, 전문가들이 긴밀하게 협의해 미국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요구해 얻어낼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과 전략을 짜야 한다.

최근 비상 계엄과 탄핵 정국 등으로 한국의 트럼프 대응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그렇다고 탄식만 할 때가 아니다. 트럼프 2기에 어떠한 폭풍이 몰려오더라도 한국에 축복과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더 모으며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2024년 1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0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자, 여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석 앞으로 몰려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뉴스1

※참고한 자료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The Global Impact of the 2024 U.S. Presidential Election: A Report of the CSIS Geopolitics and Foreign Policy Department(September 26, 2024)

Jude Blanchette & Ryan Hass, “Know Your Rival, Know Yourself: Rightsizing the China Challenge” Foreign Affairs(January 7, 2025)

Seth G. Jones, “China Is Ready for War: And Thanks to a Crumbling Defense Industrial Base, America Is Not” Foreign Affairs(October 2, 2024)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Towards Co-Resilience: What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Can Do Together in an Era of U.S.-China Rivalry(November 20, 2024)

Fred Fleitz(ed), An America First Approach to US National Security (2024)

송의달, 신의 개입:도널드 트럼프 깊이 읽기 (2024년,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