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희귀 빈혈을 앓던 일곱 살 남아가 자신의 치료를 위해 맞춤형 아기로 태어난 ‘구세주 동생’(saviour sibling)의 골수를 이식 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구세주 동생’은 오빠나 언니(형이나 누나)의 장애·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태어나게 된 맞춤형 아기를 말한다. 선별 검사를 통해 유전적으로 문제 없는 배아만 시험관 시술로 낳아 기른 뒤, 수술이 가능한 나이와 조건을 갖추게 되면 장기나 세포를 이식하게 하는 방식이다.
27일(현지 시각) 영국 BBC는 이 사연을 전하면서 오로지 형제를 구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를 만드는 것을 두고 윤리성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빠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아기
골수를 이식 받은 7세 오빠 아비지트는 유전적인 결함으로 인해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난치병인 지중해빈혈(Thalassemia Major)을 앓고 있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위험 수준으로 낮아서, 3주에 한 번씩은 350~400ml의 피를 수혈받아야 했다고 한다.
남매의 아버지 솔랑키씨는 “아비지트가 빈혈병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비지트는 겨우 생후 10개월이었다”며 “우리는 망연자실했다”고 말했다. “아이는 허약했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자주 병에 걸렸다”며 “아비지트가 6세 때는 80번이나 수혈을 받았다”고 말했다.
솔랑키씨는 지중해빈혈에 대한 모든 문헌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고, 골수 이식으로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소식에 가족 모두가 검사를 받았지만 자신과 아내, 아비지트의 누나인 첫째 딸까지 아무도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솔랑키씨는 2017년 ‘구세주 동생’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됐다. 그리고는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불임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인 매니쉬 뱅커 박사를 찾아 아비지트의 치료를 위한 아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뱅커 박사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이라는 기술을 이용했다. 체외 수정한 배아의 초기 상태에서 세포를 떼어내 유전 검사를 시행한 뒤, 질병을 유발하는 염색체나 유전자가 없이 정상 발달이 가능한 배아만을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을 유도하는 기술이다.
뱅커 박사는 배아를 만들어 진단하고 아비지트와 일치시키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밝혔다.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은 인도에서 수년간 사용된 기술이지만, ‘구세주 동생’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브야는 2018년 10월 태어났다. 부모는 카브야의 체중이 10~12kg가 될 때까지 기다린 후, 생후 18개월이던 지난 3월 골수를 뽑아 오빠 아비지트에게 줬다.
수술 후 오빠 아비지트는 완치됐다. 이식 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수혈을 받을 필요가 없었고 헤모글로빈 수치도 정상을 되찾았다. 수술을 받기 전 아비지트는 25~30세까지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완치된 지금은 정상적인 기대수명을 갖게 됐다.
여동생 카브야는 수술 직후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졌고, 골수를 채취한 부위에 며칠 동안 국소 통증이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나았다고 한다. 이식 수술을 집도한 디파 트리베디 박사는 “카브야와 아비지트 모두 이제 완전히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카브야가 세계 최초의 ‘구세주 동생’은 아니다. 2000년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을 통해 미국에서 태어난 애덤 내쉬는 희귀 유전질환인 판코니 빈혈을 앓던 6세 누나에게 제대혈을 기증했다. 애덤의 경우 탯줄에서 나온 혈액을 누나에게 줬다.
당시에도 부모가 애덤을 정말로 원해서 낳았는지, 누나를 위한 ‘치료 도구’로 만들었는지 논란이 일었다. 애덤의 이야기는 이후 동명의 영화까지 만들어진 소설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치료 목적으로 아이 만들 수 있나"
카브야와 아비지트 남매의 이야기는 치료를 목적으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윤리적인지에 관한 논란을 다시 촉발했다.
존 에반스 캘리포니아대 사회학 교수는 “질병을 가진 형제와 완벽하게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아이를 낳겠다는 목적만으로 새로 아이를 낳는 것은, 그 아이의 동의 없이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구세주 동생의 탯줄에서 채취한 세포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영구적 손상을 일으키는 장기 이식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브야가 받은 골수 이식 수술은 장기 이식만큼 해롭지는 않지만, 문제는 우리가 어디서 선을 그을 것인가다”라고 말했다.
인도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나미타 반다레는 “나는 솔랑키씨 가족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며 “비슷한 상황에서 부모로서 나도 똑같이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 체계”라고 했다. 그는 “적어도 의료 전문가와 아동 인권 운동가가 참여하는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며 “카브야는 아무런 논쟁도 없이 태어났다. 이렇게 중대한 일이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했다.
◇"자식 건강 위한 일 중에 비윤리적인 건 없다"
남매의 아버지 솔랑키씨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재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판단하기 전에 이런 상황에 처해보라”며 “모든 부모는 건강한 아이를 원하고, 자식의 건강을 위한 일 중에 비윤리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솔랑키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호소했다. 치료법을 찾던 중 한 병원에서는 미국에서 아비지트의 골수 조직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고도 했지만 비용이 무려 500만~1000만 루피(약 7600만~1억 5000만원)에 달했고, (골수의 주인이) 아비지트와 혈연 관계도 아니어서 성공률이 20~30%에 불과했다고 한다.
솔랑키씨는 그러면서 “사람들은 온갖 이유로 아이를 낳는다. 가업을 잇거나, 대를 잇거나, 심지어는 외동에게 형제자매를 만들어주기 위해 낳기도 한다”며 “왜 카브야의 경우에만 동기를 면밀히 따져야 하느냐”고 했다.
솔랑키씨는 “카브야가 찾아오면서 우리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며 “우리는 다른 자식들보다 카브야를 더 사랑한다”고 했다. “카브야는 아비지트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구세주”라며 “우리는 영원히 카브야에게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