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 발발 열 엿새째 접어든 16일 미얀마 주요 도시에 장갑차와 무장 병력이 집결하면서, 군부 퇴진 시위에 나선 학생·시민·승려들 사이에서 유혈 진압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최대 도시이자 정치·경제 중심지 양곤 시민들의 불안감이 크다. 장갑차와 함께 들어온 군인들의 견장에 선명하게 보이는 숫자 때문이다. ’77′.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 두 개가 겹쳤는데도 불안해하는 이유는, 2007년 반정부 항쟁 때 시위군중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미얀마 육군 77경보병사단의 상징 마크이기 때문이다.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의 시위대가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77사단 소속 군인 모습. 이같은 사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이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77사단 마크 견장을 단 군인들의 사진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군인들은 헬멧에 탄띠를 두르고 위장무늬 마스크까지 한 채 굳은 표정으로 경계를 서거나 줄을 맞춰 이동하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포착됐다. 이 사진을 공유한 한 트위터 이용자는 “77사단은 잔혹하기로 악명높은 부대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고 적었다. 77사단은 이른바 ‘사프란 혁명’이라고 불리는 2007년 반정부 시위 때 진압의 선봉에 나선 부대로 알려져있다. 이 시위가 ‘사프란 혁명’이라고 불린 까닭이 있다. 당시 이 시위를 주도했던 승려들의 옷 색깔 이름이 ‘사프란’이었다.

77사단 소속 군인들이 트럭에서 하차하면서 각종 장비를 내리고 있다.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군부는 각급 부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반정부 시위를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진압작전의 최선봉에 섰던 부대가 77경보병사단이었다고 인권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사프란 혁명 당시 77사단의 활동상은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사태 뒤에 작성한 보고서에 나와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77사단은 2007년 9월 양곤 시내 중심가에 집결한 승려·학생·시민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주축 부대였고, 진압을 피해 도망치는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해 시위대 한 명이 쓰러졌다. 휴먼라이츠 보고서에는 당시 시위대 참가자의 목격담도 실려있다.

탄띠와 헬멧 등으로 무장한 77사단 소속 군인들의 모습. /트위터

시위대와 대치한 77사단 군인들이 총구를 겨누고 해산을 명령한 다음 최루탄을 먼저 터뜨린 뒤 곧이어 실탄까지 쐈다는 것이다. 이후 총을 맞고 쓰러진 부상자 두 명을 폭행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목격자는 주장했다. 당시 학생 시위대였던 다른 목격자는 앞장서 행진하던 시위대를 향해 77사단 소속 군용트럭이 돌진해 최소 세 명이 받혀 쓰러졌다는 목격담도 전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최전선 전투부대인 77사단은 2007년 반정부 시위 강경진압에 깊숙하게 개입했던 부대”라고 했다. 로이터 통신은 77경보병사단에 대해 “과거 소수민족 시위 등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부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