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미군이 근 20년간 주둔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를 떠나면서 “아프가니스탄군에게도 알리지 않고 전기를 끊고 조용히 밤에 떠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과 AP 통신이 6일 보도했다. 이 탓에, 이 기지를 새로 책임질 아프간군 사령관은 미군이 떠난 사실을 상황 종료 2시간 뒤에야 알았고, 기지 외곽의 경계를 맡은 아프간 군이 기지를 접수하기 전에 약탈꾼이 먼저 들어와 미군이 남긴 물건들을 약탈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아프간 사령관 “다 떠나고 2시간 지나서야 알았다”
2일 밤의 바그람 기지 철수는 당초 7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것보다 빠르고, 조용하게 진행됐다. 바그람 공군기지를 새로 맡게 된 아프간 사령관인 미르 아사둘라 코히스타니 장군은 “아침 7시가 돼서야 미군이 완전히 철수한 것을 확인했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5일 “(기지 외곽의) 아프간군이 2일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는데 갑자기 모든 발전기 소리가 멈췄고 기지 전체에 전기가 나갔고 식수 공급도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군이 바그람 기지를 떠난 정확한 시각은 비밀”이라고 전했다. WSJ는 “미군이 수 주전부터 아프간 군에게 철군 의사를 밝혔고 기지의 인수인계 과정을 밟았지만, 탈레반 반군 세력이 바그람 공군기지 근처를 비롯해 아프간 곳곳에서 승리하고 있는 시점에서 많은 아프간 병사들은 미군의 전격적인 철군에 충격을 받았고 동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그람 공군기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수니파 테러집단 알 카에다를 축출하고 탈레반 세력을 권력에서 몰아내려는 미군과 나토(NATO)군 작전의 핵심부였다. 한때는 아프간 내 10만 명 이상의 미군과 나토군이 아프간 전쟁을 치렀으며, 바그람은 이 전쟁의 관문이었다. 3.6km짜리를 비롯해 두 개의 활주로와 전투기 100기를 세워 놓을 수 있는 주기장(駐機場), 50 병상의 병원, 탈레반 포로 5000명을 수용한 교도소, 곳곳에 대형 건물과 창고, 막사들이 있어 평시에도 미군과 민간인 12만 명이 활동하는 ‘소도시’였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 “철수 전날(7월1일)까지도 바그람은 풀(full)가동돼, 전투기와 수송기, 정찰기들이 2개의 활주로를 계속 오르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중 하나는 2006년 미국이 9600만 달러의 미국인 세금을 들여 지은 것이지만, 이제 텅 비었다.
◇ 미군, 철수하면서 350만 개 물품 남겨
미군이 남긴 물품은 모두 350만 개로, 모두 목록으로 정리돼 있었다. 이 중엔 수만 개의 물병과 에너지 드링크, 군용 전투식량(MRE), 전화기, 문 손잡이, 막사 창문, 문도 포함됐다. 이밖에 랜드로버 디펜더, 쉐비 서버번 등 수천 대의 민수(民需) 차량과 수백 대의 병사 이동을 위한 버스, 수백 대의 장갑차, 지뢰매복방호차량(MRAP), 약간의 경(輕)화기를 남겼다. 상당수 민간용 차량엔 차 열쇠가 없었다고 한다. 미군은 모든 중(重)화기는 갖고 철수했다.
아프간 현지군은 평상시 바그람 공군기지의 외곽 지역을 경계한다. 따라서 일부 아프간 병사들은 “우리에게 통보도 않고 떠나면서, 미국은 20년간의 선의(善意)를 하룻밤에 날렸다”고 말한다.
미군이 떠나면서 기지의 전기를 끊자, 이를 ‘철수 신호’로 판단한 아프간 약탈꾼들이 아프간 정부군보다 먼저 들어와 건물들과 대형 천막들을 돌며 물건을 약탈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의 중추(中樞)였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철수하면서, 앞으로 아프간군에 대한 지원품 공수(空輸)와 정찰 업무는 카타르와 UAE의 미군 기지에서 맡게 된다. 터키 정부는 현재 유일하게 남은 국제공항인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대한 탈레반 측의 안전 보장 협정을 주선하고 있다. 마지막 미군은 이 협정이 조인되는 대로 떠나며,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을 지킬 650명의 미 해병대 병력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