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어선 수백 척이 지난 5년간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 경제 수역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막대한 양의 인분(人糞)과 오‧폐수를 쏟아내 이 수역의 산호초와 어류 등 생태계를 파괴하는 ‘조류(藻類)의 대번식(녹조 현상)’을 초래했다고 미국의 한 인공지능(AI) 개발 업체가 12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날은 지난 2016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남중국해에 위치한 스프래틀리 군도(群島)와 스카버러 암초의 인근 해역에 대해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인정한 지 5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PCA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남중국해의 산호초와 모래톱 곳곳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이 수역을 자신들의 영해(領海)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성사진 분석용 AI 개발 업체인 ‘시뮬래리티’의 리즈 더 대표는 이날 필리핀 마닐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5년간 남중국해를 찍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중국 어선들이 이곳에서 떼로 정박하며 쏟아내는 오물로 이 수역 생태계가 회복 불능에 가까울 정도로 재앙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스프래틀리 군도 내 ‘유니언 뱅크(Union Banks)’라고 알려진 고리 모양의 산호초에서는 지난달 17일 하루에만 중국배 236척이 촬영됐다”며 “이 어선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인분이 바다에 쌓인다. 또 온갖 오폐수와 쓰레기를 산호초로 쏟아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중국 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AP 통신은 보도했다.

AP 통신은 또 이날 수백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마닐라의 중국 영사관 앞에 모여 PCA 판결을 무시하는 중국과 친중(親中) 노선을 취하며 중국 측에 PCA 판결에 승복하라고 요구하지도 않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함께 규탄했다고 보도했다.


남중국해에서 장기간 조업하고 있는 중국 어선이 오·폐수를 방출하는 모습./시뮬래리티
필리핀의 EEZ가 인정된 스프래틀리 군도와 스카보러 군도의 위치. 중국은 동남아 여러 나라의 영유권이 엇갈리는데도, 무력으로 남중국해를 자신의 영해로 만들고 있다.


스프래틀리 군도에 속한 유니언 뱅크에서 지난달 17일 목격된 중국 선박들의 위치(왼쪽)과, 이들이 남긴 인분, 오·폐수의 위치(오른쪽)가 정확히 일치한다. 빨간 원은 이 지역에 최근에 도착한 중국 어선의 위치로, 아직 인분이 쌓이지 않았다./시뮬래리티


5년 새 변한 존슨 사우스 리프의 위성사진. 인분, 오·폐수로 인해 이전에 없었던 엽록소(chlorophyll)가 바다를 덮으면서 어두운 지역이 줄고 밝은 지역이 늘었다. 녹조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흑백 위성사진상의 명암 구분도 줄었다./시뮬래리티


남중국해 일부 해역에 대한 필리핀의 EEZ를 인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정 5주년을 맞아, 12일 필리핀인들이 마닐라의 중국 영사관 앞에서 PCA 판정을 무시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과 두테르테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다./EPA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