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동남아 국가인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시내에선 대형 철도역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라오스 독립기념일인 다음 달 2일 열리는 개통식을 앞두고 역사 내 인테리어 작업이 진행 중이다. 길이 422.4㎞인 이 철도는 라오스 역사상 처음으로 깔리는 철도이다. 수도 비엔티안과 인기 관광지 루앙프라방, 중국 윈난성과 맞닿은 국경 도시 보텐을 연결한다. 판캄 비파반 라오스 총리는 “이 철도는 관광객과 상품 운송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돼 우리나라에 큰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6년 12월 착공한 이 철도는 중국이 주변 국가들과 육·해상 연결망을 구축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하나다. 59억9000만달러(약 7조676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는 중국과 라오스가 7대3의 비율로 분담했다. 승객용 정거장 10곳과 화물 정거장 22곳이 들어선다. 태국의 방콕포스트는 지난 9월 “이 철도는 현재 건설 중인 라오스 북부~중국 윈난성 철도, 인접국 태국의 철도와도 연결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지역에서 추진해 왔던 대규모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잇따라 결실을 맺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견제 움직임을 뚫고 속속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성대한 준공 이벤트를 통해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미국의 한층 공세적인 동남아 정책을 촉발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국가에서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때 전쟁까지 치렀던 베트남의 경우, 수도 하노이에 중국이 건설한 도시철도 1호선(경전철)이 개통을 앞두고 지난 6일 인수식이 열렸다. 2011년 착공한 이 경전철은 13㎞ 구간에 12개 역이 들어선다. 신화통신은 “이 철도는 하노이 교통 정체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양국 협력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특정 분야에 쏠려 있지 않다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 6월 필리핀에서 마닐라 대도시권 주민들에게 식수원을 제공하는 칼리와강 댐이 착공됐다. 5월에는 동남아의 대표적 허브공항인 방콕 수완나품 공항 터미널 확장 공사가 끝났다. 라오스에선 메콩강 지류인 남우강에 계단식 수력발전소를 최근 완공, 가동에 들어갔다. 28억달러(약 3조3048억원)가 투입됐으며, 중국이 29년 동안 운영한 뒤 라오스 정부에 운영권을 넘길 예정이다.
동남아 국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중국의 통 큰 선물 전략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친중 국가 캄보디아에 종합 경기장을 선물했다. 1억5000만달러(약 1770억6000만원)를 들여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북부에 6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경기장을 지어줬다. 캄보디아가 불교도가 다수인 점을 감안해 불교 인사법인 ‘합장’을 형상화한 대형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경기장은 오는 2023년 5월 열리는 32회 동남아시아경기대회 주경기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중국은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남아에 백신을 대량 보급하는 코로나 외교도 구사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14일 베이징에서 아세안 회원국 외교 사절들을 만나 “감염병을 이겨낼 때까지 지속적, 총력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이 맞부딪치는 전략 지역이다. 패권 경쟁을 벌이는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전선인 셈이다. 미국은 최근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갈등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기회로 동남아를 반중 연대로 포섭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 중 반중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 베트남에서조차 대규모 프로젝트를 완공시킬 정도로 중국의 위세는 막강하다.
미국은 중국의 공세적 동남아 정책에 잔뜩 긴장하며 대응책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지난달 26일 비대면으로 진행된 미·아세안 정상회담에서 “공공 의료와 기후변화 대응, 경제 회복 등을 위해 아세안에 1억200만달러(약 1202억원)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때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별도의 대면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 언론들은 “중국의 영향력이 동남아 지역에 심화하는 상황에서 역내 최대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환심을 사려는 행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