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대법원이 13일 상하이에서 성매매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영주권자인 한국인 김경엽씨의 신병을 중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질랜드헤럴드 등이 보도했다. 김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FT는 “법률 전문가들과 인권단체들은 김씨를 중국에 신병 인도하기로 한 뉴질랜드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중국 정부가 앞으로 더 다양한 혐의로 중국 국적이 아닌 사람에 대해서도 대담하게 추방∙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법적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고 전했다.

오클랜드에 사는 한국인 김경엽씨는 2009년 상하이에 놀러갔다가 20세의 성매매여성인 첸페이윤을 구타하고 목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중국 정부는 2010년 김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2011년 5월 뉴질랜드 정부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김씨는 뉴질랜드에서 체포돼 5년간 재판 없이 구금됐다가 2016년 전자 감시장치를 부착한 상태로 보석으로 풀려났다. 김씨는 14세 때부터 뉴질랜드에서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뉴질랜드 대법원은 13일 재판 장소를 상하이로 하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을 받고, 한국인 김씨를 중국으로 추방하기로 3대2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고등법원은 2013년 김씨의 신병 인도를 결정했고, 뉴질랜드 법무장관은 2015년 김씨의 신병 인도 절차를 시작했다. 그러나 김씨는 중국에서의 고문 우려와 공정하지 못한 재판 가능성을 이유로 이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뉴질랜드 대법원은 작년 6월, 중국 정부가 공정한 재판을 약속하고, 뉴질랜드 영사가 고문 예방을 위해 48시간마다 김씨를 면회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추방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13일 대법원 심리에서, 우나 야고스 법무차관은 “중국 정부가 김씨의 구금 및 재판 장소가 상하이라고 확약한 이상, 김씨가 고문을 당하리라는 주장의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고, 뉴질랜드헤럴드는 전했다.

그러나 피고인들의 권리를 위한 인권단체인 ‘세이프가드 디펜더스(Safeguard Defenders)’의 공동 창립자인 마이클 캐스터는 FT에 “이번 대법원 결정은 전세계 정부와 법원들로 하여금, 중국의 외교적 확약을 믿고 비(非)중국 국적인을 중국으로 추방하는 법적∙정치적 선례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캐스터는 또 “사건마다, 중국은 영사 접근을 허용하기로 한 필수 조건을 계속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거부했다”며 “대법원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고, 중국이 외교적 약속과 영사 협정을 지속적으로 위반해 온 현실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결정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의 외교적 확약을 점차 인정하지 않는 일반적인 추세에도 반한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도 “뉴질랜드 정부가 ‘추방된 피고인이 인권 유린이나 고문 등의 위협에 처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을 믿을 수 있다고, 법원이 결정한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도했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 ‘법과 사회’ 센터 애너 하이 공동 소장은 이 신문에 “중국의 형사사법체계에 문제가 많다는 막대한 기록이 있는데도, 외교적 약속을 믿고 그러한 사법체계로 사람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라며 “이번 대법원 결정에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 측 변호사인 토니 엘리스는 “뉴질랜드가 중국에 경제적으로 매우 의존하는 현실이 법무부의 추방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수출의 4분의1 이상이 중국으로 간다. 김씨 변호인들은 앞으로 유엔 인권위원회 등을 접촉해서 김씨의 추방을 막을 임시 조치를 받아낼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