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총선에서 151석을 얻으며 태국의 제1야당으로 올라선 전진당(MFP)의 피타 림짜른랏 대표가 15일(현지 시각) 기자 회견 참석차 방콕 중앙 당사에서 나오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전진당은 오랫동안 제1야당 지위를 누려왔던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일가의 프아타이당을 10석 앞섰다. /로이터 뉴스1

군주제 개혁, 징병제 폐지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건 피타 림짜른랏(43) 후보의 전진당(MFP)이 14일(현지 시각)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1당 자리를 차지했다. 20여 년 되풀이된 통신 재벌 출신 탁신가(家)와 군부의 대결 구도가 40대 당수가 이끄는 진보 정당의 예상 밖 승리로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개표를 마무리한 결과 전진당이 하원 500석 가운데 151석을 얻어 1위를 했다고 밝혔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37)의 프아타이당은 141석으로 2위를 기록했다. 이 당은 탁신이 집권한 2001년 총선 이후 처음으로 1당 자리에서 밀려났다. 이어 중도 성향 품차이타이당(71석), 군부 연립 여당인 팔랑쁘라차랏당(40석), 쁘라윳 짠오차(69) 총리의 집권 여당인 루엄타이쌍찻당(36석) 등의 순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주요 외신들은 2014년 탁신가를 몰아낸 육군참모총장 출신 쁘라윳 총리, 군부 쿠데타로 두바이 망명 생활을 하는 아버지 등에 대한 ‘가문의 복수’에 나선 패통탄을 선거의 주연으로 꼽았다. 하지만 선거의 윤곽이 드러나자 패통탄과 함께 군부 축출에 나선 피타가 ‘진짜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태국 총선 당일인 14일(현지 시각)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 대표가 방콕에서 지지자들에게 손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980년생인 그는 태국 수도 방콕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를 뉴질랜드에서 나왔다. 이후 귀국해 국립 탐마삿대학 경영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농업부 장관 고문을 지낸 아버지의 후광으로 비교적 유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후 피타는 세상을 뜬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남긴 빚더미의 쌀겨 기름 회사를 떠맡아 회생시키면서 자신의 실력을 대중에게 입증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책학 석사,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MBA)를 각각 땄다. 졸업하고 나서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모빌리티 플랫폼 ‘그랩’의 태국 법인 임원으로 일했다.

2019년 전진당의 전신인 미래선진당 총선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군부 견제를 받던 미래선진당은 정당법 위반 혐의로 이듬해 해산됐고, 대대적인 민주화 시위에 힘입어 전진당으로 다시 출범했다. 피타는 전진당의 당수로 추대됐다.

피타의 전진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를 거둔 데는 기성 정치권의 구태에 대한 태국 유권자들의 염증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1년 이후 탁신과 매제, 여동생 등 억만장자 탁신 가문의 집권과 군부의 쿠데타가 반복되면서 탁신가와 군부의 경쟁적인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난무했다.

티띠난 뽕수티락 쭐랄롱꼰대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프아타이당은 이미 시한이 지난 포퓰리즘 정책으로 잘못된 전쟁을 치렀다. 전진당은 제도적 개혁이라는 다음 단계의 싸움으로 몰고 갔다”고 했다.

전진당은 국왕 등 왕실을 비판하면 최고 15년형에 처하는 형법 112조 ‘왕실모독죄’ 개정을 골자로 하는 군주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태국에서 군주제 개혁을 논의하는 것은 금기(禁忌)의 영역이라, 패통탄도 “의회에서 논의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왕실모독죄는 군부를 비판하는 언론인을 가두는 데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았고, 피타의 개혁안은 군부 독재에 지친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수려한 외모의 하버드대 출신 기업인이라는 스타 이미지도 20·30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태국에선 소셜미디어 틱톡에 피타의 사진과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올리는 유행까지 번지고 있다고 한다.

2008년 한 태국 여성 잡지가 꼽은 최고의 남편감 50인에 선정됐고, 2012년 태국의 영화배우 추티마 피타나르트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슬하에 외동딸이 있다. 추티마와는 2019년 이혼했다.

피타 람짜른랏 전진당 대표가 14일(현지시각) 방콕 전진당 본부에서 총선 승리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 연합뉴스

피타의 숙제는 연정(聯政)이다. 9년간의 군부 집권을 끝내려면 양원제인 태국 의회에서 행정부 수반인 총리로 선출돼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선출된 하원 500명, 군부가 임명한 상원 250명 등 750명의 과반인 376석을 얻어야 7월 말·8월 초 상·하원이 뽑는 총리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피타는 패통탄의 프아타이당을 포함한 5개 정당에 연정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상원표가 군부 몫이라고 가정하면, 전진당은 프아타이당과 합친 의석수(292석) 외에도 최소 84석을 더 확보해야 한다. 태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 투표율이 75.2%에 달해 2011년의 직전 최고치(75.0%)를 12년 만에 고쳐 썼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