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4일 인도 북부 라자스탄주(州) 시카르 지역의 데오랄라 마을에선 한 10대 여성이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끔찍한 의식(儀式)이 진행됐다. 죽은 남편을 따라 아내도 ‘자발적으로’ 불더미에 몸을 던지는 힌두교 의식인 ‘사티(Sati)’였다. 당시 겨우 18세였던 이 여성의 이름은 루프 콴와르. 남편 마알 싱은 전날 병으로 숨졌다. 결혼생활은 고작 8개월.

37년 전 인도 북부에서 지역 왕가 출신인 24세의 남편(왼쪽)이 죽자, 남편의 시신을 태우는 장작더미 속에서 함께 죽는 힌두교 의식인 '사티'의 제물이 된 당시 18세 과부 루프 콴와르. 그의 죽음을 놓고 "자발적인 선택이었다"는 주장과 "강요에 의한 살인"이라는 주장이 지금도 맞선다. 지난 10일 이 죽음과 관련해 기소된 45명 중 마지막 8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마을 사람 수백 명이 지켜본 이 끔찍한 ‘의식’은 세계적으로도 큰 논란이 됐다.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은 1829년 사티를 금지했지만, 이 관행은 1947년 인도가 독립한 뒤에도 이어졌다.

콴와르가 죽은 다음해 인도에선 사티 금지법이 제정됐다. 또 사티로 죽은 여성을 신격화해 기리는 행사도 금지했다. 사티를 부추기고 강요하는 사람에겐 사형이나 종신형 선고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1988년 9월 1주년이 됐을 때에, 죽은 남편과 아내가 속한 북인도 지역의 과거 왕실 가문인 라지푸트 양가(兩家)는 콴와르를 숭배하는 행사를 주관했고 20만 명이 이를 지켜봤다.

이 사티 1주년 기념 행사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45명. 지난 10월 10일 라자스탄 주의 주도(州都) 자이푸르의 특별 법정에선 이들 중 마지막 8명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결과는 모두 증거 부족에 의한 ‘무죄’였다. 결국 애초 콴와르의 사티 화형(火刑)에 가담했고 1주년 행사를 치른 혐의로 기소된 45명 중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2004년에 25명이 무죄 선고를 받았고, 12명은 도주했고, 나머지는 이미 사망했다.

인도 여성단체들은 흥분했다. 라자스탄주 검찰총장에게 “확실히 항소하라. 사티 기념 행사가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는 항의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콴와르의 오빠 고발 싱 라소르는 인도 매체 뉴스 익스프레스에 “우리는 처음부터 어느 누구도 콴와르의 사티를 부추기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며 관련자의 전원 무죄 선고를 당연시했다. 항소 의사를 묻는 BBC 힌두어 방송의 질문에, 주 검찰총장은 “아직 최종 선고문을 받지 못했다. 장단점을 따져서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카스트 계급의 상층부에 속한 콴와르의 시댁은 37년 전 사티는 당시 며느리의 자발적인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콴와르가 사티 의식에 따라, 결혼식 신부처럼 곱게 화장하고 마을의 사티 행렬을 이끌었고 남편의 시신이 놓인 장작더미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무릎에 남편의 머리를 뉘이고 종교적 주문을 외우며 죽음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현장을 방문한 기자들과 변호사, 여성단체 운동가들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목격담은 정반대였다. 심지어 콴와르의 부모들도 처음엔 딸이 타의(他意)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콴와르 부모는 사위가 죽었고 그 다음날 딸도 불에 타 죽었다는 사실을 모두 신문을 보고 알았다. 시민단체들은 부모가 이런 주장을 번복하고 “딸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한 것은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 압력 탓이라고 말한다.

이후 작성된 2건의 현장 조사 보고서 내용은 끔찍했다. “아침에 남편 마알 싱의 시신이 병원에서 도착하고 마을에선 곧 사티 준비가 시작됐다. 아내 루프 콴와르는 눈치를 채고 들판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헛간에 웅크리고 숨어있다가 잡혔고, 집으로 끌려갔다…라지푸트족 청년들이 비틀거리는 루프를 에워싸고 제단 위로 올렸다…콴와르의 입에선 거품이 나왔다(약에 취하게 했다는 뜻)…장작에 불이 붙자 콴와르는 빠져나오려 했지만, 몸 위의 통나무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청년들은 칼로 계속 콴와르를 장작더미로 밀었다…”

한 목격자는 “용기와 희생으로 포장했지만, 콴와르의 죽음은 끔찍한 살인이었다”고 조사단에 말했다.

콴와르의 죽음을 영예롭게 신격화하는 마을의 등잔불. /타임스오브인디아

사티는 이제 금지됐고, 데오랄라 마을 사람들도 더 이상 사티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을의 한 구석의 작은 벽돌 구조물에는 콴와르를 기리는 등잔불이 지금도 타고 있다. 37년 전 18세 소녀 과부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그의 ‘자발적인 희생’을 기념하는 등잔불이다. 데오랄라 마을은 유명 ‘순례’ 장소가 됐다.

수년 전 마을을 취재한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라자스탄의 사티 마을에서, 루프 콴와르는 아직도 불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BBC 방송은 최근 “콴와르는 신처럼 추앙 받지만, 인도의 ‘마지막 사티’에 대한 사법 정의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