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 최대 반도체 생산 업체인 SMIC(중국명 중신궈지·中芯國際)를 거래 제한 명단(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5일 보도했다. 제재가 확정될 경우 SMIC는 미국 업체로부터 장비⋅부품을 수입하기 어려워진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봉쇄’에 나선다는 의미다.
로이터는 익명의 미 국방부 관리를 인용해 “미 정부가 SMIC와 중국군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며 “SMIC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제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SMIC가 중국군을 돕는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SMIC가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미국 기업이 SMIC에 제품을 수출할 때 미국 상무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00년 설립된 SMIC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중국 최대, 세계 5위 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다. SMIC는 5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SMIC가 (중국) 군과 관련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해당 보도를 보고 충격받았다. 성실하고 개방적이며 투명한 태도로 미국 정부의 관련 부서와 소통하고 편견과 오해를 풀길 원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이미 중국 통신 장비 회사인 화웨이(華爲)와 ZTE(중싱·中興), 영상 장비 업체인 하이크비전 등 중국 기업 275곳을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하지만 SMIC에 대한 제재는 IT 업계를 비롯한 중국 산업 전반에 연쇄 폭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는 ‘현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대 산업의 핵심 부품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9년 3055억달러(약 363조원)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했다. 하지만 미국 제재로 화웨이 등 중국 통신 업체가 외국 기업에서 반도체를 수입할 길이 막히자 중국 정부는 SMIC 등 자국 반도체 업체를 키우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5월 17일에도 SMIC에 22억달러(약 2조7000억원)를 투자했다.
문제는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위해서 아직 소재, 제조 장비, 소프트웨어를 미국 등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SMIC는 기술 면에서는 세계 1위 반도체 생산 업체인 대만 TSMC나 2위인 한국 삼성전자보다 5년 이상 뒤처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SMIC를 제재 리스트에 올릴 경우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일어섬)가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중국 역시 자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하는 한편 미국에 동조하지 않는 다른 국가들을 통한 공급망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과학기술전략정세학회 천징(陳經) 연구원은 5일 환구시보에 기고한 글에서 “반도체는 미·중 과학기술 냉전(冷戰)의 핵심 영역”이라며 “(미국으로부터) 반도체 독립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