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교육 당국이 중국어 교육을 강화해 현지 소수민족인 몽골족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중국 조선족 학교들도 이번 학기부터 국어 교재를 한글 설명이 빠진 중국의 통일 교재로 바꾸면서 조선족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중국 당국이 ‘민족 통합 교육’을 강조하면서 조선어(한글) 교육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랴오닝(遼寧)성 등 중국 동북 지방 일부 조선족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이번 9월 신학기부터 옌볜(延邊)교육출판사가 만든 ‘한어(漢語·중국어)’ 교과서 대신 중국 인민교육출판사가 만든 ‘어문(語文)’ 교과서를 쓰고 있다고 한다. 기존 교과서는 조선족 교육에 맞춰 본문에 중국어뿐만 아니라 한글 설명을 함께 적었다. 예시 지문 역시 조선족 전통문화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반면 인민교육출판사 교과서는 중국 당국이 전국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국가 표준 교과서다. 중국 소수민족 학교들은 그간 자기 언어로 교과서를 사용해왔다.
한 소식통은 “일부 조선족 학교는 수학 등 다른 과목 교재도 조선어 교재 대신 한족들이 쓰는 중국어 교재로 바꾸고 있다”며 “네이멍구처럼 정부 차원의 명시적인 지침은 없었지만 한화(漢化·중국 최대 민족인 한족화한다는 뜻) 교육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네이멍구 교육청은 지난달 26일 몽골족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대해 올 9월 학기부터 인민교육출판사의 어문 교재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2021년부터는 ‘도덕과 정치’, 2022년부터는 ‘역사’ 교재를 기존 몽골어 교재가 아닌 중국어 표준 교재를 채택하기로 했다. 그러자 몽골족 학부모와 학생들이 “몽골의 전통문화를 수호하자”며 반발하는 시위를 벌이고, 등교 거부까지 했다.
조선족 사회에서도 “조선족 교육이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자녀를 조선족 학교 대신 한족 학교에 보내는 조선족들은 전부터 있었다. 조선족 학교보다 한족 학교의 교육 수준이 높고, 조선족 학교가 입시에서도 혜택이 크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교과서 변경으로 중국 대입에서 장기적으로 조선어 시험이 없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소수민족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자기 민족 언어로 대학 입시인 ‘가오카오(高考)’를 치른다. 조선족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은 중국어를 제외한 수학, 역사 등 다른 과목을 한글로 본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족과 같은 중국 표준 교재를 쓰고 대입도 통일되면 결국 초·중·고에서 조선족 교육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 내 조선족 수는 183만명(2010년 기준)이지만 조선족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랴오닝,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 조선족 학교의 올해 대입 수험생은 총 2000여명으로 추정된다. 랴오닝성 조선족 지역신문인 랴오닝조선문보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조선족 학교 대입 수험생은 2010년 1026명이었지만 올해는 514명으로 10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2023년부터는 조선족 등 소수민족 수험생에게 주던 가산점(현재 5점)이 폐지된다.
조선족, 몽골족 학교의 교과서 변경이 중국 중앙정부가 강조하는 ‘민족 단결 교육’ 정책의 연장선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집권 2기가 시작된 2017년 19차 당대회부터 국가 통일과 사회 안정을 위해 교육에서 민족 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9월 ‘전국 민족 단결 진보 표창대회’ 연설에서 “중화민족은 한 가정이고, 함께 중국몽(中國夢)을 건설해 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