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의회가 6일 미국과의 외교 관계 회복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안을 제출한 쪽은 대만 독립 성향의 여당인 민진당이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온 야당 국민당이었다. 중국이 외교·군사적으로 대만을 압박하면서 대만 유권자들의 불안과 반중(反中) 심리가 커지자 국민당도 중국이 싫어하는 미국 국교 회복 카드를 꺼낸 것이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국민당은 이날 의회에 ‘대만·미국 외교 관계 회복 추진 결의안’과 ‘중국 공산당에 맞선 미국·대만 방위 협력 결의안’을 제출했다. 결의안은 민진당 의원들이 반대하지 않아 채택됐다. 장둔한(張惇涵) 대만 총통부 대변인은 “입법원의 결의안을 존중한다”며 “현 단계에서 대만과 미국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단교했다. 다만 미국은 대만관계법 등의 법령을 통해 대만과의 군사·경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국공내전 당시 미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던 국민당은 2004년 미국사무소를 개설할 정도로 미국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100만명이 넘는 대만 사업가(臺商·타이상)가 중국 대륙에서 돈을 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국민당 후원자는 물론 지도부, 선거 후보로도 나섰다. 국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궈타이밍(郭臺銘) 폭스콘 회장이 대표적이다. 국민당 출신인 마잉주(馬英九) 총통 시절(2008~2016년) 국민당은 중국과의 교류·협력에 무게를 뒀다. 2008년 미국사무소도 문을 닫았다.
하지만 국민당은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만에 대한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통일 발언, 홍콩 반정부 시위 등으로 커진 대만 내 반중(反中) 정서에 대처하지 못했고, 올 1월 대선에 민진당에 참패했다. ‘베이징의 대리인’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국민당 주석에 취임한 장치천(江啓臣·48) 주석은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전임 국민당 지도부와 비교해 중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친미(親美)와 화륙(和陸·중국과 친한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반발했다. 주펑롄(朱鳳蓮)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대만은 중국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분으로 양안은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는 사실은 바뀔 수 없는 역사와 법리적 사실”이라고 했다.
현재로선 미국이 중국의 강한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만과 바로 수교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이번 결의안은 국민당이 국내적으로 여당인 민진당을 압박하려는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 정부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재수교와는 거리를 둬왔다.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은 지난 9월 “대만과 미국은 당장 전면적 외교 관계 수립을 추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