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중국 전역이 정전 사태의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저장, 후난, 장시성 등 남방에서 시작된 정전사태는 광둥성, 네이멍구 등지로 이어졌고, 최근엔 수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도 일어났죠. 서부 쓰촨성도 난리입니다.

저장성은 중국 수출 중소기업이 밀집된 곳입니다. 원저우, 닝보, 이우 등 주요 도시 중소기업들은 올 연말까지 공장 가동을 중단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죠. 가로등, 공중화장실 전구까지 끌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답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광둥성도 21일 자정 직후 예고없이 1시간여 동안 정전이 일어났죠. 광저우, 선전 등 성내 주요 도시가 포함된 대규모 정전사태였습니다. 소셜미디어에는 ‘샤워 도중 불이 꺼져 낭패를 당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다’ ‘가로등이 꺼져 귀가길이 무섭다’는 등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죠.

이런 대규모 정전 사태는 요즘 중국에선 보기 드문 일입니다.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처음이라는 말도 나오는군요.

12월22일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서 한 남성이 가로등이 꺼진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

◇호주 석탄 수입 줄이자 대규모 정전사태 속출

중국 당국은 ‘전력 공급 능력은 부족하지 않은데, 수급 조절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명합니다. 우리의 과거 경제기획원 격인 국가발전개혁위(발개위)의 자오천신 비서장은 기자회견에서 “공업생산이 빠른 속도로 증가한데다, 예년보다 낮은 기온으로 인한 난방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전력 수요가 예상치를 초월하면서 정전사태가 벌어졌다”고 했어요.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호주산 석탄 수입 금지 조치에 따른 여파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해외 분석도 비슷하구요.

중국은 발전용 석탄의 36%를 호주에서 수입합니다. 호주는 지난 4월 코로나 19 진원지에 대한 독립적인 국제 조사를 강력히 촉구했죠. 중국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8월부터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줄입니다. 최근에는 아예 중단시켰죠. 수입 물량 감소로 석탄 가격이 오르자 전력회사들은 석탄 재고 물량을 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연료 부족에 직면한 발전소들이 전원 공급을 끊으며서 이번 정전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보여요.

중국은 화력발전이 전체 발전 용량의 60% 가량을 차지합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12월22일 상하이 지역 정전 통지문. /바이두 캡처

◇서민음식 양고기는 9주 연속 가격 올라

중국은 호기롭게 호주산 쇠고기와 양고기, 보리, 와인, 석탄 등에 대해 수입 제한 조치를 취했지만, 오히려 거센 역풍을 맞고 있어요. 양고기 쪽도 비슷한 양상입니다.

중국에선 추운 겨울이 되면 양고기 소비가 크게 늘어나요. 볶아먹고, 구워먹고, 훠궈(중국식 샤브샤브)에 넣어서도 먹습니다. 양고기 역시 지난 10월부터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했죠. 12월 셋째주에도 작년 동기 대비 4.1%가 뛰어 9주 연속으로 가격이 상승세라고 합니다.

양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양고기의 절반 가량을 뉴질랜드, 호주 등 외국에서 수입하는데, 성수기에 호주산 양고기 수입을 끊으니 당연히 가격이 오르는 거죠.

◇호주가 철광석 수출 통제하면 중국 제철소는 문닫을 판

중국이 정치적으로 갈등을 빚는 상대국에 경제 보복을 가하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죠. 우리도 중국의 거친 사드 보복에 시달렸습니다. 일본은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으로 보복을 당했고, 노르웨이도 그해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다는 이유로 대중 연어 수출길이 막혔죠.

중국은 주로 자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겨냥합니다. 그래야 보복 효과가 높으니까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모두 대중 무역의존도가 25% 전후에 이르고, 호주는 30%를 넘어갑니다.

그런데도 호주는 쉬운 상대가 아니에요. 호주 산 광물과 식량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제철산업의 필수 원료인 철광석은 수요량의 62%를 호주에서 수입해요. 호주가 철광석 수출을 통제하면 중국 제철소는 문을 닫아야할 형편입니다.

‘양패구상(兩敗俱傷)’이라는 말이 있죠. 싸우는 양쪽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이기든 지든 상처만 입는다는 뜻입니다. 무역전쟁이 벌어지면 호주가 입는 피해도 크지만 중국도 그에 못지 않은 피해를 입게 돼요.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태평양 동맹국으로 사사건건 자국의 신경을 건드려온 호주를 혼내주고 싶겠지만 수단이 마땅치 않습니다. 오히려 호주가 느긋한 분위기에요. 호주 국내 여론의 거센 압박에도 호주 정부는 아직 중국에 대한 철광석 수출 금지 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 습관적인 보복 외교엔 냉정한 대응이 특효약

2010년 센카쿠열도 분쟁 당시 일본은 중국식 보복 외교에 대한 모범적인 대응법을 보여줬죠. 당시 중국은 첨단 기술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고 일본 제품 불매운동, 일본 관광 금지 등의 조치를 내놨습니다.

일본은 냉정하게 대응하죠. 비축 희토류로 버티면서 호주, 미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으로 희토류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희토류 대체 금속 개발, 심해 희토류 탐사 등 준비해둔 대응책을 차곡차곡 추진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 보복을 가한 데 대해서는 WTO에 제소하구요.

일본 연구팀이 2011년 태평양 해저 희토류 매장 지역에서 추출해낸 진흙 샘플.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보복에 대응하기 위해 배타적경제수역 내 해저를 탐사했고, 그 과정에서 적잖은 희토류 매장량을 확인했다. /조선일보DB

결과는 중국의 완패였습니다. 한때 90%에 달했던 중국의 일본 희토류 시장 점유율은 48%로 떨어져요. 값싼 중국산에 밀려 생산을 포기했던 나라들이 희토류 생산을 재개하면서 희토류 국제가격도 크게 하락합니다.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중국 희토류 업계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어야 했죠. 나중에는 WTO 분쟁에서도 패소했습니다.

중국의 보복 외교는 다분히 습관적이고, 조건반사적인 측면이 있어요. 상대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입니다.

이런 습성을 알고 차분하게 대응한다면 제풀에 지치는 쪽은 중국일 거예요. 반대로 쉽게 굴복한다면 두고두고 같은 식의 굴복을 강요받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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