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와 창업주 마윈이 요즘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12월24일 알리바바에 대한 중국 당국의 반독점 조사가 시작됐죠. 사흘 뒤인 27일에는 인민은행 등 4개 감독기관이 금융계열사인 앤트그룹 경영진을 불러 단순 결제를 제외한 소액 대출, 인터넷 예금 서비스 등을 모두 정리하라고 했다 합니다.
마윈의 중국 금융당국 비판과 앤트그룹 상장 연기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뉴욕 증시에까지 상장돼 있는 이 거대 민영기업에 대한 손보기로 흘러가는 양상이네요. 알리바바 본사에는 이미 당 중앙 합동조사팀이 들어와 진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윈은 2018년 개혁개방 40주년 당시 100명의 걸출한 민영기업인으로 꼽혀 공산당이 주는 표창장까지 받았지만 이번에는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네요.
◇자동소총 무장 특수경찰 동원해 일가족 싹쓸이 체포
이번 사태가 있기 한달 전인 11월에는 허베이성의 유명 농업기업인 다우그룹 창업주 쑨다우(孫大午·66)와 경영진이 무더기로 공안당국에 체포됐습니다.
쑨다우는 존경받는 기업가죠. 1985년 부부가 고향인 허베이성 쉬수이(徐水)현에서
닭 1000마리와 돼지 50마리로 앙계·양돈사업을 시작해 연 매출 200억원 규모에 직원이 수천명에 이르는 다우그룹을 일궜습니다.
돈을 번 뒤에는 사내에 월 100위안(약 1만7000원)이면 공부를 할 수 있는 중학교와 1위안(170원)만 내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지었죠. 고향 농촌에 이상향을 건설한 겁니다.
반면, 지방관료들의 부패와 불공정한 일처리에 대해서는 불같은 인물이죠. 중국 지방에서는 관료들과 술먹고, 밥먹고, 용돈 찔러주고 하는 식으로 ‘꽌씨(關係)’를 만들지 않으면 사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꽌시 만들기를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쑨다우는 스스로 법을 공부해 중앙 행정기관에 민원하고, 법원에 소송을 내는 식으로 대응을 해왔죠. 미운털이 박힌 그는 2003년 불법모금죄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죠.
이번에는 인근 국영농장과 벌어진 토지 분쟁으로 체포됐습니다. 다우그룹이 있는 쉬수이현 랑우좡(郞五庄) 마을은 국영농장이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던 마을 공유토지 110만㎡를 다우그룹에 임대했는데, 국영농장 측에서 다우그룹이 세운 가건물을 철거하면서 마을 주민과 다우그룹 직원, 국영농장 직원 간에 두 차례 충돌이 일어났죠.
중국 매체 남방주말의 보도에 따르면 11월11일 새벽 1시에 벌어진 쑨다우 체포작전은 조폭 검거 작전 수준이었다고 해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특수경찰이 6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들이닥쳐 쑨다우 부부와 두 아들 부부, 계열사 대표 등 28명을 체포했다고 합니다. 또 그룹 자산을 모두 동결해 직원 월급도 못주고 사내 식당 가동까지 중단됐다고 하네요.
쑨다우의 혐의는 공중소란죄와 생산경영활동방해죄 위반입니다. 특수경찰이 체포 작전을 할 정도의 죄목이 아니고, 그를 이유로 기업 재산을 동결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중국 내에서는'공안이 국영농장 대신 보복을 해주는 청부 폭력배냐”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집권 후반기 들어 민영기업 손보기 본격화
피해 기업의 규모나 사건의 맥락은 다르지만 이 두 사건은 시진핑 주석 집권기 중국 민영기업들의 불안한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당이나 관에 밉보이면 인신 구속은 물론, 애써 일군 사업 기반과 재산까지 날립니다.
중국 헌법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민영 기업가들에게는 먼 얘기입니다. 눈치 빠른 민영 기업가 중 상당수가 시 주석 집권을 전후해 자산을 처분하고 해외로 이주했죠.
시 주석은 2012년 당 총서기가 되자마자 광둥성 선전에 있는 덩샤오핑 동상을 가장 먼저 참배하고 틈만 나면 개혁개방 의지를 강조해왔죠. 2018년11월 민영 기업가 좌담회에서는 “이제 민영경제는 역할을 다했으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해야한다고 하는 건 완전히 잘못된 주장”이라며 “민영기업과 민영기업가도 우리 사람”이라고 달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과 달리, 2017년부터 민영 기업에 대한 손보기가 시작됐죠. 집권 전반기 5년간 고위 관료들의 반부패에 집중하다가 집권 후반기 들어 거대 민영기업으로 타깃을 돌린 겁니다.
◇금융부동산 거물 이어 대형 IT기업 정조준
먼저 손을 댄 건 해외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금융, 부동산 기업들이었죠. 중국의 워런 버핏을 불리며 뉴욕 월드포 아스토리아 호텔을 인수했던 안방보험의 우샤오후이 회장이 체포돼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습니다. 안방보험은 국유화됐죠.
중국 최대 부동산그룹인 완다의 왕젠린 회장도 해외 호텔, 리조트, 테마파크, 영화관 등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다 당국의 경고를 받고 부랴부랴 해외 자산을 줄줄이 매각합니다.
시 주석은 이런 기업들이 위험하고 불안한 해외 투자로 중국의 국부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요. 알리바바에 대한 조사로 이제 시 주석의 칼날은 텅쉰, 바이두, 징둥 등 중국 대형 기술기업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대기업 군기잡기
민영 기업은 중국 세수의 50% 이상, 국내총생산(GDP)의 60% 이상, 기술혁신 성과의 70% 이상, 취업인구의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죠. 시 주석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일부 극좌파들이 주장하듯 민영기업을 없애는 쪽으로 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 주석의 기업 손보기에는 고도성장 과정에 누적된 양극화의 문제를 민영기업의 탓으로 돌리려는 정치적 의도가 커 보여요. 또 국제무대에 알려지고, 적잖은 해외 투자자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배경으로 당과 정부 지시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대기업들을 확실하게 길들이겠다는 의도도 있을 겁니다. 당의 관할 하에 있는 국유기업이 중국 경제의 주축이자 맏형이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시키겠다는 효과도 염두에 뒀을 겁니다.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재테크, 부동산, IT, 책, 영어 학습, 종교, 영화, 꽃, 중국, 군사 문제, 동물 등 16가지 주제에 대한 뉴스레터를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거나, 조선닷컴으로 접속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