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북한과 중국이 상대국에 나가 있던 대사를 교체한다고 합니다. 북한 외무성은 2월19일 후임 주중 대사에 내각 부총리를 지낸 리용남(61)을 임명했다고 발표했죠. 2018년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당시 우리 재계 총수들을 면담했던 인물입니다.

중국은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차관급) 출신 왕야쥔(王亞軍·52)이 내정됐다고 해요. 바이든 행정부로 미국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에 맞춰 북중 양국 대사가 바뀌는 셈입니다.

후임 대사들은 훨씬 젊어졌죠. 리용남의 전임인 지재룡은 1942년생으로 79세이고, 리진쥔(李進軍) 현 주북한 중국대사도 65세입니다. 리용남은 내각 부총리까지 지낸 고위급 인사이고, 왕야쥔도 중국 외교 부문 최연소 부부장으로 차세대 외교 사령탑 을 넘보는 엘리트죠.

2018년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당시 내각 부총리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우리 재계 총수들과 환담하는 리용남 신임 주중 북한 대사. /TV조선 캡처

주중 북한대사는 북중관계 바로미터

누가 주중 북한대사에 임명되는지를 보면 북중 관계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이후 북중관계가 가장 안 좋았던 시기는 북한이 1·2차 핵실험을 했던 2006~2009년의 시기였어요. 중국은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이 평양을 방문하고 대규모 경제 원조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바로 그 다음해에 1차 핵실험을 하죠.

분노한 중국 외교부는 “북한이 제멋대로 핵실험을 했다. 중국은 결단코 반대한다”는 전례없이 강도 높은 성명을 냅니다. 북한은 이런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3년 뒤인 2009년 1차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2차 핵실험을 했죠.

이처럼 북중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기의 주중 북한대사는 최병관이었습니다. 그는 외무성 영사국장 출신으로 그 이전 대사들에 비해 경력이나 직급이 크게 떨어지는 인물이었죠.

냉랭했던 북중관계는 2009년10월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고, 김정일이 2010년5월 답방을 하면서 풀리기 시작합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지명된 것도 바로 이 시기죠.

그러자 북한은 임명한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최병관 대사를 전격 경질하고, 중량급 외교관으로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중앙위원장과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을 지낸 지재룡을 주중 대사에 임명하죠. 노동당 고위 인사를 보내 김정은 후계 작업을 외교적으로 지원하도록 한 겁니다. 중국 측에서도 지재룡을 “내공이 깊고 실력이 있는 인물”로 평가해요.

경제통이자 중국통...중국 경제 지원 매달리는 김정은

북한이 경제통인 리용남을 주중 대사로 보낸 건 미국의 강력한 제재와 코로나 19로 어려워진 경제난을 염두에 둔 조치일 겁니다. 김정은은 최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삿대질을 하고 책상을 내리치면서 당 경제 책임자들을 질책했죠. 무역상과 대외경제상을 지낸 그는 북한 대외 무역 확대와 외자 유치에 적잖은 실적이 있는 인물입니다.

또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고, 중국어가 유창한 ‘중국통’이기도 해요. 평양외국어학원을 졸업한 뒤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부인도 중국어를 잘 한다고 해요.

경제통이자 중국통으로 그동안 북중 무역을 관장해온 그를 주중 북한대사로 보낸 건 경제난 극복을 위해 중국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얘기입니다. 중국은 북한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교역 상대국이죠. 게다가 1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양국 국경선에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각종 밀거래가 이뤄집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강력한 대북 정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대북 제재의 고삐도 더 조이겠죠. 그런 제재를 이겨내고 버티려면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이번 주중 북한 대사 인선에 깔려 있습니다.

북한 나가는 왕야쥔, 차기 장관감 꼽히는 중 외교 엘리트

중국도 이런 북측 인사에 화답을 합니다. 중국 외교의 차세대 엘리트로 꼽히는 왕야쥔을 주북한 대사로 내정을 한 거죠.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중국 대사는 통상 외교부 국장급입니다. 주한 중국대사도 국장급이죠. 그런데 미국, 러시아, 영국, 독일, 일본, 북한 등 11개국에는 그보다 위인 부부장급이 대사로 나가요.

2019년9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연설 중인 왕야쥔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왼쪽 사진). 오른쪽은 2018년 중국 예술단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왕 부부장이 김정은과 악수하는 장면. /세지망, 조선중앙TV 캡처

왕야쥔 대사 내정자는 1969년 생으로 안후이성 출신입니다. 중국 외교부 직속의 외교학원을 졸업했는데, 법학과 문학 분야에서 2개의 학사 학위를 땄다고 해요. 벨기에 대사관, EU주재 중국대표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주재 영사관 등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유럽통 외교관입니다.

또 공산당 중앙 외사판공실 정책연구국장, 외교부 정책기획국장 등 외교 브레인으로도 일했죠. 외교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로 당 경력도 쌓았습니다. 차기 대외연락부장(장관급) 감으로 꼽힌다고 해요.

이런 엘리트를 북한 대사로 내정한 건 그만큼 북중 관계를 중시한다는 시그널을 북 측에 보내는 것이죠. 연초 북중의 대사 인사는 바이든 시대에 더 깊어질 북중관계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재테크, 부동산, IT, 법, 책, 영어 학습, 종교, 영화, 꽃, 중국, 영국, 군사 문제, 동물 등 18가지 주제에 대한 뉴스레터를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거나, 조선닷컴으로 접속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