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7일 전국인민대회(전인대) 계기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7일 전국인민대회(전인대) 계기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홍콩, 대만 등의 문제에 대해 “타협할 의지가 없다”고 했다. 미국 바이든 신 행정부가 인권이나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자 강한 톤으로 반론에 나선 모양새다. 중국 측이 사전에 취합, 선정하는 기자 회견 질문은 홍콩, 대만, 신장, 남중국해 등 미·중 관계 핵심적인 이견들에 집중됐다.

중국 당국은 이번 전인대에서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회(의회 격) 선거제도를 개편할 예정이다. 조만간 개편안이 공개될 예정인 가운데 미국 등 서방과 홍콩 내 야권에서는 “일국양제(한 국가·두 체제) 약속 위반” “범민주파의 당선을 막으려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왕 부장은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는 원칙을 실시하는 것은 홍콩의 장기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며 “헌법과 법률에 부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나라든 조국에 충성하는 것은 공무원이나 선출직 공직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정치적 논리”이라며 “홍콩은 중국의 일부분인데 국가를 사랑하지 않고 어찌 홍콩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했다.

왕 부장은 대만에 대해서는 “양안(중국과 대만)은 반드시 통일돼야 한다”며 “이는 대세의 방향이자 변치 않는 중화민족 전체의 의지”라고 했다. 또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미 관계의 정치적 기초이자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며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서 타협하거나 양보할 여지가 일절 없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대만 분열(독립) 행위도 좌절시킬 능력이 있다”고도 했다.

미·중 관계를 묻는 질문에도 왕 부장은 “우선 양측은 내정 불간섭 원칙부터 준수해야 한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왕 부장은 “중국이 잘하고 못하고는 중국 인민만이 발언권이 있고, 중국이 어떻게 할지 정하는 것도 중국 인민”이라며 “미국이 소위 민주, 인권의 깃발을 들고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고 세계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고 심지어 내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미얀마 반군부 시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도 나왔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직후 중국 정부는 사태가 “미얀마 내정”이라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군부 총탄에 시위대가 사망하면서 중국의 이런 입장이 사실상 군부를 지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얀마 내에서도 중국이 군부를 지원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중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왕 부장은 이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부, 군부에 의해 축출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진영 양쪽 모두에게 환심을 사려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들을 내놓았다.

왕 부장은 “미얀마 사태는 미얀마 내정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느냐”는 중국 매체 펑파이 기자의 질문에 대해 “평화와 안정은 국가 발전의 전제”라며 “미얀마 각 측이 냉정함, 자제력을 유지하고 미얀마 인민의 근본 이익에서 출발해 대화와 협상, 헌법과 법률로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미얀마의 아세안 회원국이며 중국은 아세안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지지한다면서도 “미얀마의 주권을 존중하고 미얀마 국민의 원한다는 것을 전제로” 미얀마 각 측과 소통해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건설적 역할을 할 의향도 있다고 했다.

왕 부장의 답변 가운데 “민주화 진전을 계속 추진해 가길 바란다” “중국의 대(對) 미얀마 우호 정책은 전체 미얀마 국민을 향한 것” “NLD를 비롯해 각 미얀마 당파와 우호적으로 교류하고 있다”는 발언을 NLD와 이들을 지지하는 반군부 시위대를 고려한 발언으로 보인다.

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도 있었다. 그는 “미얀마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결심을 흔들리지 않고, 중국이 미얀마에서 추진하는 우호 합작의 방향도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미얀마 군부가 안심할만한 말이다. 미얀마는 중국 내륙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관문으로 중국은 미얀마에 도로와 철도, 송유관을 건설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이날 화상 방식으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왕 부장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왕 부장의 연례 전인대 기자회견 때 중국 측의 주요 관심사와 관련된 국가 기자에게 질문권을 주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혀왔다. 최근 5년동안 한반도 관련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은 한국 기자에게는 질문 기회를 주지 않았다. 1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비핵화 문제에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 소강 상태가 이어지면서 중국 역시 발언을 삼가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