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가 달에 과학 기지를 공동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견제하는 가운데 중·러가 우주 분야로까지 협력을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의 우주 사업 담당 부서인 국가항천국과 러시아 연방항공우주국 대표는 9일 중국과 러시아 정부 간 ‘국제 달 과학 기지’ 건설에 대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달 기지의 규모나 건설 시기 등 구체적인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인민일보는 “국제 달 과학 기지는 달 표면이나 달 상공 궤도에 건설돼 장기간 자동 운영할 수 있는 종합 과학 실험 기지”라며 “달에 대한 탐사·이용, 기초 과학 실험과 기술 검증 등 다목적 과학 활동에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다른 우주 프로젝트에서도 협력하고 있다. 2019년 양국은 중국의 달 극지(남극) 탐사 프로그램인 ‘창어(嫦娥) 7호' 프로젝트, 달·우주 탐사 데이터센터 건설에서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만든 위성항법시스템인 베이더우(北斗)와 러시아의 위성항법시스템인 글로나스를 공동 이용해 위치 정보의 정확도를 높이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가 서방에서 제재를 받은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공동 우주 개발이 활기를 띠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과거 같은 사회주의권이었고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협력보다는 상호 견제 관계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가속화되고 러시아 역시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해지면서 양국 관계는 가까워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9일(현지 시각) 뮌헨안보회의 화상연설에서 “유럽과 미국을 포함해 너무나 많은 곳에서 민주주의의 전진이 공격받고 있다”며 동맹과 민주주의 연대 전선을 구축해 중국·러시아에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2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에서 “위기 시기에 중국과 러시아 관계의 특별하고 귀중한 가치가 더 드러나고 있다”며 “더 넓은 영역에서 더욱 깊은 단계로 협력해나가자”고 말했다. 군사, 기술, 극지 탐사 등의 분야에서 양국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 전투기가 동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연합 훈련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