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에 놓인 중국 국기와 홍콩특구기. 중국 당국은 30일 직접선거 비율을 축소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을 확정했다./AP 연합뉴스

중국이 30일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회(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제 개편안을 확정했다. 11년 만의 개편으로, 홍콩 시민이 직접선거로 뽑는 입법회 의원 수는 대폭 줄고, 홍콩 정치권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은 강화됐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24년 만에 홍콩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는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상무위원회는 이날 베이징에서 회의를 열고 홍콩 선거제를 담은 홍콩기본법 부칙 개정안을 재석 위원 167명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핵심은 입법회 의원 선출 방식의 변화다. 현재 홍콩 입법회 의원은 70명이다. 이 중 35명은 한국처럼 홍콩 유권자들이 직선으로 뽑고 35명은 직능단체를 통해 간접선거로 선출해왔다. 하지만 선거제 개편에 따라 입법회 의원 숫자는 90명으로 늘어나지만 시민이 직선으로 뽑는 의원은 20명으로 줄어든다. 전체의 22%다. 홍콩 야권이 선거에서 압승해도 입법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게 된 셈이다. 나머지는 홍콩 선거위원회(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가 40명, 직능단체가 30명을 뽑는다. 선거위원회와 직능단체는 친중(親中) 인사가 다수로 구성된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 40명에 대한 추천·선출 권한을 가진 선거인위원회 구성도 중국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도록 바꿨다. 현재 1200명인 선거위원회 위원을 1500명으로 늘리면서 중국 전인대와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자문기구) 홍콩 대표 몫의 위원 수를 87명에서 190명으로 확대했다. 중국 중앙 정부의 직접 지시·통제를 받는 위원들이 늘어나는 셈이다. 나머지 위원들은 입법회·금융·산업·농어민 등 홍콩 각계에서 선출하지만, 상당수는 친중 인사들로 채워질 전망이다.

홍콩 야권은 이번 선거제 개편에 대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끝”이라고 반발했다. 신설된 후보자격심사위원회가 행정장관, 입법회 의원, 선거위원회 위원 후보의 자격을 심사해 탈락시킬 수 있어 “민주파에 대한 정치적 사망 선고”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중국과 홍콩 인사로 구성된 홍콩 국가안전수호위원회가 후보자의 중국에 대한 충성도를 심사해 후보자격심사위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는 규정도 생겨 홍콩보안법에 반대해온 야권 인사의 출마를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은 이날 성명에서 “외부 세력과 그들의 정치 대리인들이 (홍콩에서) 색깔혁명을 책동할 위험을 없애게 됐다”고 주장했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새 선거제를 적용해 9월 선거위원회 위원, 12월 입법회 의원, 내년 3월 행정장관을 선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