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당국이 중국 천안문(天安門) 사태 32주년 기념 집회를 불허하면서 매년 6월 4일 촛불 집회가 열렸던 홍콩 빅토리아파크는 4일 저녁 침묵에 휩싸였다. “6·4(천안문 시위) 재평가” “일당 독재 종식” 구호는 사라지고 경찰 수천 명이 1m 간격으로 공원을 에워쌌다. “최대 징역 5년 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당국의 경고에 매년 수만 명이 참여했던 대형 집회는 취소됐지만 일부 홍콩 시민은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행진했다. 당국이 촛불 집회를 금지한다고 하자 불붙인 담배를 들기도 했다.
천안문 사태는 1989년 4월 사망한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 추모 집회가 민주화 시위로 확산하자 6월 4일 덩샤오핑(鄧小平) 등 중국 지도부가 군을 동원해 베이징 천안문광장 일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사건이다. 최소 200명이 사망했고 1000명 가까이 사망했다는 추산도 있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1966~76년) 등에 대해서는 당(黨)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했지만 천안문 시위는 ‘반당(反黨)·반혁명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는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다. 홍콩은 중국 영토지만 자치를 유지하며 1990년 이후 매년 천안문 시위를 기념해왔다.
홍콩 당국은 올해 코로나를 이유로 천안문 기념 집회를 불허했다. 지난해의 경우 당국의 집회 불허에도 홍콩 시민 수천 명이 “일당 독재 종식”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지난해 6월 30일 홍콩 내 반(反)국가 활동을 감시·처벌하는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중국 공산당을 직접 겨냥하는 시위는 처벌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집회를 주최해온 시민단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도 올해 공식 집회를 취소했다.
하지만 홍콩 민주 진영은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천안문 추모 촛불을 나눠줬다. 오후 8시 빅토리아파크 인근 코즈웨이베이에서는 2019년 반중 시위대의 상징인 검은 옷을 입은 100여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인도를 행진했다. 몽콕, 침사추이 등에서도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빅토리아파크 촛불 집회가 금지되자 시민들이 홍콩 여러 지역에서 촛불을 켜며 소규모로 시위를 펼쳤다”고 전했다.
홍콩 경찰은 7000명을 동원해 집회 저지에 나섰다. 지난해 동원된 경찰력(3000여명)의 2배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빅토리아파크 일부 지역의 일반인 출입을 금지했다. 4일 저녁 일부 시민이 코즈웨이베이에서 “홍콩 광복, 시대의 혁명”이라는 구호를 외치자 경찰이 홍콩보안법 위반을 경고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앞서 경찰은 이날 오전 7시 30분 초우항텅(鄒幸彤) 지련회 부주석을 비허가 집회를 광고해서는 안 된다는 ‘공안조례’를 위반한 혐의(최대 징역 1년)로 체포했다. 바리스타인 초우씨는 4일 명보에 “오후 8시(집회 예정 시각) 당신의 촛불을 보고 싶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었다.
중국 본토에서는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 천안문 사태 관련 논의가 일절 금지돼 있다. 반면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32년 전 천안문광장에서 희생된 젊은이들과 매년 6월 4일 촛불로 이를 애도한 홍콩 친구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