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일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 등 서방의 대중(對中) 압박을 겨냥해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며 강하게 경고했다.
시 주석은 이날 마오쩌둥(毛澤東) 사진이 걸려 있는 천안문 망루에 올라 “중국 인민은 외세(外勢)가 우리를 업신여기고 억압하며 노예로 대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망상(妄想)을 하는 자는 14억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쌓은 강철 장성(長城)에 부딪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중국의 창당 기념 연설은 부패 척결 등 대내(對內) 메시지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이날 연설 상당 부분을 대외 메시지에 할애했다. 그는 3차례에 걸쳐 “절대(絶)”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모두 외국을 향한 경고였다.
시 주석은 “외세가 중국을 억압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선생님인 척 가르치려 드는 것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 “중국공산당과 인민을 갈라치려는 시도는 절대 실현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자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기념식에 대해 내년 가을 3연임 결정을 앞둔 시 주석이 본인의 업적을 직접 대내외에 공표한 ‘대관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정치·외교·기술 등 각 분야에서 ‘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이 창당 기념식을 천안문 광장에서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국제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개혁·개방 이후 30년 넘게 친근한 비즈니스맨처럼 행동했던 중국공산당이 이제는 양복을 벗고 인민복(마오쩌둥이 즐겨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평가했다.
마오쩌둥 인민복 입은 시진핑 “중국의 길 가겠다”
1일 오전 8시(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연회색 인민복(마오쩌둥이 즐겨 입던 간소복) 차림의 시진핑(習近平·68) 중국 국가주석이 나타났다. 새벽부터 천안문 광장에 앉아 기다리던 7만여 관중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천안문 광장 주위에는 대형 오성홍기(중국 국기) 100개가 나부꼈다. 하늘에는 중국군 헬기가 중국공산당(중공) 100주년을 상징하는 숫자 ’100′을 만들어 날았다. 중국 최신 스텔스기인 젠-20 편대가 그 뒤를 따랐다.
1일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공 창당 100주년 기념식은 중국 통치 체제의 정당성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자리였다. 내년 가을 열리는 당 대회를 통해 3연임이 확실시되는 시 주석은 그 주인공이었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우리는 첫 번째 100년 목표를 달성했고 중화 대지(大地)에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중산층 생활수준) 사회를 실현했다”며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전면 건설이라는 두 번째 100년 목표를 향해 힘차게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중공은 2021년 창당 100주년, 2049년 중국 건국 100주년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시간표로 삼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인민(人民)’을 수십 차례 강조했다. “중국공산당은 시종일관 가장 많은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하고 어떤 이익 집단, 권력 집단,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중국공산당과 인민을 갈라치려는 시도는 절대 실현될 수 없다”고 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공산당 집권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를 내비치는 동시에 중공과 중국인을 분리해 대응하려는 미국에 강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이날 시 주석의 연설은 초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향후 진로를 보여줬다. 그의 연설은 2011년 중공 창당 90주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연설과 큰 차이가 있다. 후 전 주석은 연설에서 개혁을 44차례, 개방을 28번 언급했다. 당시엔 중국의 미래가 개혁·개방에 달렸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반면 시 주석의 연설에서 개혁은 8번, 개방은 7번 등장한다. 시 주석은 “공산당과 중국 인민은 우리가 선택한 길로 고개를 들고 당당히 걸을 것”이라며 “중국의 발전, 진보의 운명은 우리 손 안에 있다”고 했다. 10년 전 중국이 세계로부터 배우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에서 ‘중국의 길’을 가며, 미국과의 체제 경쟁에서도 자신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연설에서는 인류 운명 공동체,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등 시 주석이 추진해온 중국식 대외 전략도 부각됐고,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자립이 강조됐다.
시 주석의 경제 관련 발언도 전보다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해졌다. 시 주석은 “함께 잘살자”는 뜻의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언급하며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겠다”고 했다. “21세기 마르크스주의를 이끌겠다”는 말도 했다.
시 주석은 이날 “중국 인민은 다른 나라를 괴롭히거나 압박하며 노예화한 적이 과거에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군이 38선 이남까지 진출했던 6·25 참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만 문제 해결, 조국 통일은 공산당의 변함없는 목표”라고 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후진타오 전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 공산당 원로들도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주룽지(朱镕基) 전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