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축제장 같은 분위기였죠. 중국에 이런 곳이 있느냐고 다들 놀라던 게 어제 같은데.”
사진작가 김동욱씨는 10년 넘게 중국 베이징 ’798 예술구'에서 작업실을 운영했었다. 그가 처음 입주했을 때는 798에선 매일 전시회, 공연이 열릴 정도로 창작 열기가 타올랐다. 예술가 황루이(黃銳)가 운영하는 ‘엣(at) 카페’엔 화가는 물론 패션 디자이너, 가수가 북적였다. 하지만 최근 김 작가는 798을 떠나 근처 차오창디(草場地) 예술촌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그는 “아쉽지만 798의 전성기는 끝난 것 같다”고 했다.
세계 문화 아이콘, 중국 예술의 메카로 불렸던 베이징 798 예술구가 위기를 맞고 있다. 임대료 상승으로 작가들이 작업실을 철수하고, 임대 관리를 맡은 국영 기업 대표는 부패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 798을 찾았을 때 상가 곳곳이 텅 빈 채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임대를 포기한 듯 광고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798의 간판 전시장이었다가 2019년 문을 닫은 페이스갤러리 자리는 지금도 빈 상태다.
798 예술구 일대는 1952년 설립된 ‘화베이(華北) 무선 기자재 공장’ 터다. 1990년대 말 중국 국영기업에 구조조정 강풍이 불어닥쳤다. 텅 빈 공장을 주목한 것은 예술가들이었다. 1995년 798 근처로 이전한 중국 중앙미술학원 쑤이젠궈(隋建國) 교수가 빈 공장을 빌려 전시회를 열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중국을 떠나 일본에서 활동했던 예술가 황루이도 귀국 후 798에 정착했다. 동독 전문가들이 바우하우스풍(風)으로 지은 공장은 그 자체가 예술품이었다. 임대료가 싸다는 소식에 798은 해외에서 활동하던 중국 작가들을 자석처럼 끌어모았다.
2002년 도쿄갤러리를 시작으로 UCCA, 페이스갤러리 등 전 세계 유명 갤러리가 798에 자리 잡았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2003년 베이징 798을 ‘세계 문화 아이콘 22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현대자동차, 북한 만수대창작사도 798에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798이 유명세를 타면서 쑤이젠궈, 황루이 등 798을 만든 작가들은 속속 그곳을 떠났다.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까지 1㎡당 하루 1위안이었던 임대료는 현재 10배 이상 뛰었다. 김동욱 작가는 “미국 소호의 경우 예술가 작업실에서 갤러리, 패션과 상업 중심으로 바뀌는 데 30년 이상이 걸렸지만 798에서는 이런 변화가 10년 만에 일어났다”고 했다.
빈 공장을 예술가들에게 헐값에 빌려주던 치싱(七星)그룹은 798이 뜨면서 임대 회사로 거듭났다. 왕옌링(王彥伶) 치싱그룹 대표는 전기공장 기술자 출신으로 ’798의 차르'라고 불리며 10년 넘게 전권을 행사했다. 임대 과정이 불투명해 예술보다는 권력, 돈을 앞세운 사람들이 798에 입주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9년 798 한가운데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념 판매점이 문을 열자 예술인 사이에서는 덩샤오핑의 후손이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해당 상점은 현재는 문을 닫고 리모델링 중이다.
2013년 시진핑 국가 주석 집권 이후 중국 당국이 “예술도 중국공산당에 충성해야 한다”며 애국, 애당(愛黨) 분위기를 강조한 것도 798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극좌 사회운동) 시기에 비견된다는 의견까지 있다. 이런 분위기가 문화예술계에서 대세를 형성하자 사회비판적 예술을 통해 798에 ‘생명'을 불어넣던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은 위축되고, 세계 예술계에서 798의 중요성도 낮아졌다는 것이다.
치싱그룹에 따르면 현재 798에는 지금도 갤러리 등 예술 관련 기관이 286개, 영상 미디어 등 문화 기업이 91곳 입주해 있다. 2017년부터 ‘갤러리 위크앤드 베이징’이라는 대형 연합 전시 행사도 열고 있다. 분위기를 되살려 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올해 행사 개막일이었던 4월 23일 중국 당국은 왕옌링 대표를 법·기율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798이 상업화되고 쇠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베이징에서 798을 대체할 예술 단지는 아직 없다. 남방주말에 따르면 베이징의 예술 관련 기구 90%가 798에 위치해 있다. 작가 옌샹(雁翔)은 “매일 798을 욕하지만 (798 이외에) 우리가 갈 만한 다른 곳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