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16일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반박했다. 차기 대선 주자의 외교·안보 입장에 대해 중국 대사가 공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적절치 않은 것”이라며 “중국이 대선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1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공고한 한·미 동맹의 기본 위에서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렇게 다져진 국제적 공조와 협력의 틀 속에서 대중국 외교를 펼쳐야 수평적 대중(對中) 관계가 가능하다”고 했다. 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대해 “명백히 우리 주권적 영역”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했다. 미·중 간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갈등에 대해서는 “미국과 등을 지면 글로벌 비즈니스는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전략적 명료성’으로 기업을 리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싱하이밍 중국 대사는 인터뷰 게재 다음날인 16일 중앙일보에 ‘윤석열 인터뷰에 대한 반론’이라고 소제목을 붙인 글을 기고했다. 싱 대사는 윤 전 총장과 한국을 존중한다고 전제하면서도 “한·미 동맹이 중국의 이익을 해쳐선 안 된다”며 “중·한 관계는 결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중국의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중국 인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윤 전 총장이) 인터뷰에선 중국 레이더를 언급했는데, 이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친구에게서 중국 레이더가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드는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쳤고, 앞뒤가 모순되는 당시 한국 정부의 언행이 양국 간의 전략적 상호 신뢰를 해쳤다. 이후 양국의 노력을 통해 사드 문제의 타당한 처리에 합의했고, 중·한 관계가 정상 궤도로 돌아오게 됐다”고 주장했다.
싱 대사는 미·중 간 기술 디커플링(탈동조화)은 미국이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천하의 대세는 따라야 창성하다는 말이 있다. 중국은 이미 5억명에 가까운 중산층 인구를 가지고 있고, 향후 10년간 22조 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할 계획”이라며 “한국은 약 80%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고 했다.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싱 대사의 기고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다른 나라 정치인의 언급에 그 나라에 와 있는 일국의 대사가 코멘트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윤 전 총장의 인식도 한미 동맹이 굳건한 것에 따라 건강하고 호혜적 한중 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싱 대사는 제로섬 게임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미국과 중국 양국을 택일하도록 한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또 “우리 정부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력으로 배치한 사드 문제에 대해서도 계속 걸고 넘어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도 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싱하이밍 대사의 기고문은) 예의에 어긋나고 한국을 쉬운 상대로 보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면서 “외교적 관례에서는 대사가 국내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이어 “이례적으로 기고문까지 낸 것으로 보아 중국 본토에서 중국 대사에게 압박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싱하이밍 대사의 기고문은 외국 대사가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면서 “대선 과정에서 후보의 발언에 대해 대사관이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평가했다.
이성현 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대선을 앞둔 정국에서 중국이 한국 언론을 상대로 영리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싱하이밍의 기고문은 외교 공식 활동의 일부이고 중국 정부의 의중을 100% 담은 것”이라며 “기고문 문구 전체를 중국 정부로부터 승인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싱 대사의 반박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31일 ‘미국의 MD (미사일 방어 체계)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 입장을 표명하는 대신 중국과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싱하이밍 대사가 말한 ‘한중이 합의한 타당한 처리'다. 하지만 합의 4년이 다되도록 중국에서는 여전히 한국 최신 영화, 드라마가 상영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