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대부분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파키스탄을 축(軸)으로 세력을 키워온 중국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13일 아프간 수도 카불과 파키스탄 북부 도시 페샤와르를 잇는 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중국‧파키스탄을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Belt and Road Initiative)’ 프로젝트인 CPEC(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를 아프가니스탄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CPEC는 620억 달러(약71조2000억원)짜리 도로‧항만‧교량‧철로‧발전소 건설 인프라 프로젝트로, 중국의 서부 신장과 파키스탄의 아라비아해(海) 과다르 항구를 잇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알렉산더 대왕 시절부터 징기스칸의 몽골 제국, 대영제국, 소련, 미국에 이르기까지 역대 모든 제국이 고전(苦戰)을 면치 못했던 ‘제국들의 무덤(the graveyard of empires)’이다. 그래서 중국이 ‘아프간 덫(Afghan Trap)’에 빠지는 다음 나라가 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미군 철수를 보는 중국의 복잡한 속마음
베이징은 미군의 아프간 주둔을 놓고, 미군이 중국과 76km의 국경을 접한 아프가니스탄 점령을 통해 중국을 위협하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을 한다고 주장해왔다. “9‧11 주범인 이 지역의 알카에다를 박멸하고도 계속 남아 있는다”고 비난했다. 따라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굴욕적인 미군 철수’를 환영한다.
그러나 이 지역의 ‘힘의 공백’은 중국의 서부 변경을 혼돈으로 몰고 갈 수 있다. 탈레반과 현(現)카불 정권, 반(反)탈레반 아프간 군벌들 간 내전은 또다시 전 세계 이슬람 무장세력을 이곳으로 끌어들일 것이고, 이들은 아프간 국경 너머 중국에서 자행되는 무슬림 위구르족 학살과 인권탄압에 주목할 것이다. 중국 당국은 시리아에서 이슬람 테러집단 IS와 함께 싸웠던 위구르 테러범들이 아프간을 근거지로 해,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 계속 침투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중국, 아프간 혼란과 파키스탄 반중(反中)테러에 새롭게 “미군 철수” 비난
지난 13일 파키스탄 북부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인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엔지니어와 노동자 9명이 트럭 폭탄 테러로 숨졌다. 당시 중국의 반응은 “(미국이) 무질서를 방치하고 떠나, 그 부담을 다른 나라들(중국)에 넘겨선 안 된다”였다.
5월9일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한 이슬람 시아파 여학교에서 수니파가 설치한 차량 폭탄이 터져 68명이 죽은 사건에 대한 중국 외교부의 코멘트도 “미국의 갑작스러운 철군 발표가 아프간 전역에 폭발 테러를 촉발했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비난 방향이 ‘미군 주둔’에서 ‘갑작스러운 철군’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5일 “중국은 미국의 아프간 전쟁을 비난하더니, 이제 미군 철수를 걱정한다”고 전했다.
중국에게 미군 철수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는 혼란에 빠진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테러집단들의 온상(溫床)이 되고, 이들 집단이 중국의 이슬람 이웃국인 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파키스탄으로 번져 현지 중국 기업‧중국인들을 공격하고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 침투하는 것이다.
이미 파키스탄 내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반감(反感)은 만만치 않다. 특히 독립 기운이 강한 파키스탄 서부 발루치스탄 지역은 “CPEC가 파키스탄에 실제 도움이 안 된다”며, 중국인을 공격했다. 2018년 발루치스탄해방군(BLA)이라는 무장세력이 카라치의 중국 영사관 습격해 4명을 살해했고, 또 다른 독립운동 집단은 아라비아해와 닿는 CPEC의 남단인 과다르 항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투숙하는 호텔을 공격하기도 했다. 2018년 미 씽크탱크인 RAND 연구소의 한 보고서는 “3만 개의 중국 기업이 해외에 위치해, 언젠가 중국도 자국기업과 자국민 보호를 위해 국방 자원을 해외에 배치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공산당의 일부 조언가들은 해외에서 중국기업과 중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면 유엔의 깃발 아래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중국, 아프간에 ‘일대일로’ 확대해 ‘안정’ 꾀하지만
중국은 소련이나 미국처럼 ‘끝없는 전쟁’에 빠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 늪에 빠진 덕분에, 중국이 ‘초(超)강대국’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에서 ‘풀려나’ 중국의 발흥을 막는데 자원을 쏟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바이든으로선 중국이 ‘아프간 덫’에 빠지는 것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중국이 위협적인 이슬람테러집단으로 간주하는 ‘동투르키스탄독립운동(ETIM)’을 “아직도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라며 미국의 테러집단 지정 목록에서 뺐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아프간의 안정뿐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탈레반과 현재의 카불 정권 모두를 지원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은 아프간에 중‧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프로젝트를 확대해, 전쟁으로 황폐화한 이 나라에 안정을 가져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카불의 현 정부뿐 아니라, 탈레반 반군 세력도 CPEC 참여를 희망한다. 문제는 아프간의 ‘안정’은 이 구도가 꿈꾸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성공의 선행조건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FT “제국들의 무덤이 중국을 부른다”
지난 6월 FT는 “제국들의 무덤(아프간)이 이제 중국을 부른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푸단대 국제관계학 교수인 장지아동 교수는 지난 6일 중국 관영지 환구시보 기고문에서 “중국은 다른 강대국들과 달라, 결코 ‘아프간 덫’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인도에서 북진했던 영국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아라비아해로 남진했던 러시아, 알카에다를 대처해야했던 미국과는 달리, 중국에게 아프가니스탄은 그런 전략적 중요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영국, 미국과 달리, 중국은 아프간 집권세력이 누가 되든 성격과 가치에 대해 내정 불간섭 외교를 고수할 것이고, 아프간은 중국의 핵심이익에 닿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고든 창은 8일 ‘더힐(Hill)’ 매체 기고문에서 “덫에 빠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자만심일뿐”이라며 “중국은 아프간이 위구르 무장집단의 근거지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아프간에는 탈레반 외에도, 탈레반에 적대적인 군벌도 많아 중국이 관리해야 할 위협과 불안정 요소가 너무 많다”며 “인도 정부도 중국의 CPEC 프로젝트가 망가지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국주의적 마인드를 지닌 지금의 중국 지도부에게 ‘팽창의 방향’은 서쪽”이며 “서부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라, 결국 아프간에서 실수하고 점점 깊게 빠져들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