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와 TV드라마는 중국 자본의 투자 참여가 없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서울 동대문 시장의 포장 배달과 사채(私債)시장까지 중국 자본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어요. 국내 중국인들은 조선족이 많은데, 중국 공산당 차원에서 조직적 개입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30년 넘게 중국의 정치·외교를 분석하고 있는 주재우(54) 경희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미국 웨슬리언(Wesleyan)대 졸업후 1990년 9월 중국 베이징대학 국제관계대학원 유학으로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베이징대에서 1997년 7월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중국 연구’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주 교수는 <한국인을 위한 미·중(美中)관계사: 6.25전쟁부터 사드 갈등까지>라는 단행본을 2017년 냈다. 지난달 발간된 <극중지계(克中之計) : 한국의 거대 중국 극복하기1·정치외교안보편>에는 주요 필자로 참여했다. 이달 6일 낮 서울 광화문에서 주재우 교수를 만났다.
◇“中, 동대문시장 포장배달·사채 시장까지 장악”
- 최근 중국의 한국 진출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그렇다. 한 마디로 거침없는 파상 공세이다. 서방에서 중국 공산당의 대외 침투 공작 기관으로 지목되는 ‘공자학원’(영어명칭은 Confucius Institute)’이 세계 최초로 세워진 나라가 우리나라다. 국가 인구 및 교육기관 대비 공자학원 설치 비율도 한국이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대학교와 관련 연구소 등에 중국 당국의 연구비 지원이 넘쳐나고 있다.”
- 학계에서 체감(體感)은 어느 정도인가?
“단적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의 세계 전략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와 관련해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나라이다. 일대일로를 중점 연구하는 연구소까지 생겨나고 있다. 중국의 조직적인 선전 공세에다 우리 정부의 관변(官邊) 지원금까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친중(親中) 정권 아래 퍼져가는 기현상(奇現象)이다.”
◇“20개국과 충돌하는 중국...善한 이웃 아니다”
- 이렇게 파상 진출하는 중국은 우리에게 ‘선(善)한 이웃’인가?
“주변국들을 먼저 보자. 중국은 육상으로 14개국, 해상으로 6개국 등 총 20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이 나라 가운데 중국을 선한 이웃으로 여기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은 2013년 시진핑의 공산당 총서기 취임이후 2049년 세계 1위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행보를 질주하고 있다.”
주 교수는 “중국공산당은 자기들의 일방적인 행보가 세계와 주변국에 어떠한 파급을 미칠 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술 편취와 탈취를 거듭하며 국제적 반칙을 거듭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몽(中國夢)’은 보편적 가치와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과 유아독존(唯我獨尊)적 성장만이 그들의 목표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자국 이익에 충실하지만 중국처럼 상대국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중국의 안하무인, 유아독존, 일방적 행태는 국제사회를 넘어 한반도에도 엄청난 위험 요인이다.”
- 왜 한반도에 위험한가?
“중국이 세계 1위국을 목표로 국력을 총동원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평탄했을 때는 주변국들과 수평적 ‘조공(朝貢) 외교’에 그쳤으나, 긴장된 위기 국면일 때는 주변국에 수직적 복속(服屬)을 강요해 왔다. 서방과 긴장·갈등이 고조되면서 한국을 더욱 고압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中, 국내 통제 강화하고 대외 행위 난폭해져”
- 30년 전과 지금의 중국을 비교한다면?
“중국 개혁개방 시작(1979년) 만 10년이 지난 무렵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 사회에 앞으로 법치(法治)가 정착되고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제도가 투명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정반대다. 국내적으로 통제와 억압을 강화하고 있고 대외 행위는 더 난폭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제도는 아예 무시하고 있다.”
- 한·중 관계는 어떤가?
“지금의 한·중 관계는 우리나라의 국익(國益)과 대한민국이라는 주권국가에 전혀 걸맞지 않다. 한국 정부의 ‘저자세 외교’와 중국의 ‘고압적인 강압’ 외교로 한중 관계가 잘못되고 있는데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중국의 한국 복속’이 다시 벌어질 것이다.”
◇“中에 지레 겁먹고 침묵하는 韓 지식인들”
- 우리나라의 중국 전문가나 지식인들은 이런 현실에 왜 침묵하고 있나?
“중국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하는 생각이 크다. 중국 당국은 한국 학자나 관료들의 발언과 기고문 등을 모니터링한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비자(visa) 발급 제재를 하는 경우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을 비판하는 정도쯤 돼야 한다. 한국에는 그만한 실력과 영향력을 지닌 중국 전문가가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착각하고 미리 지레 겁을 먹고 있다.”
-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하나 더 꼽는다면 우리나라 학자와 전문가, 지도층이 중국으로부터 특혜와 대접을 많이 받고 있어서다. 중국공산당의 지휘 아래 각 부처, 산하 기관·연구소·대학들이 펼치는 ‘샤프파워(sharp power·자금 지원, 매수, 협박, 여론조작 같은 방법으로 영향력 행사)’ 공세에 한국 엘리트들이 농락당하고 있다.”
◇“韓 지식인들, 中 자극 않으려 자기검열 되풀이”
- 한국 엘리트들에게 소중화(小中華) 의식이 배여 있어서인가?
“근대 이전 시대에 오래 동안 지속된 ‘소중화 의식’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나라가 양도할 수 없는 주권(主權·sovereignty) 국가로 인정받고 이게 당연시되는 시대이다. 한국 엘리트들은 대중(對中) 관계에서 ‘독립’과 ‘자주의식’이 빈약하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패권적 공세를 펴는 데, 우리 지도층은 중국의 심기(心氣)를 과도할 정도로 의식하면서, 자극하지 않으려 패배주의적 자기검열을 되풀이 하고 있다.”
- ‘공중증(恐中症·중국 두려움 증세)’에 빠진 듯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3가지 강박관념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통일에 중국이 결정적 역할을 하며,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열쇠를 쥐고 있으며, 중국 시장은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강박관념이다. 하지만 세가지 모두 환상이자, 착각이다.”
◇“3가지 ‘중국 강박관념’에 빠진 韓 지도층”
- 어떤 이유에서인가?
“중국은 1992년 한·중 수교 후에도 북한식 한반도 통일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의 경우, 미국이 중국에게 행동하라고 윽박지른 다음에야 중국은 마지못해 움직일 뿐인데 그나마 결정적인 역할도 못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2019년도 대중 무역 흑자는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코로나 발생 전에 벌어진 이런 모습은 정권 차원의 저자세 대중 외교가 한국 경제에 도움 안된다는 방증이다.”
- 우리나라 우파 정권의 대중(對中) 외교를 평가한다면?
“이명박, 박근혜 등 우파 정권은 ‘한국=친미(親美) 국가’라는 이미지 덕분에 중국공산당의 대접을 받았다. 2008년 한해에만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8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친미 정권이라는 이유에서 중국의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파 정권은 황사, 미세먼지, 고대사 같은 분야에서 우리 이익을 확실하게 챙기지 못했다. 다만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과 성장에는 도움을 줬다.”
- 문재인 정권의 대중 외교는 어떤가?
“한중 수교후 중국공산당 정권에 대해 이처럼 맹목적으로 알아서 기는 한국 정권은 처음이다. 중국 방문시 ‘혼밥’과 수행 기자 폭행 같은 수많은 외교적 결례에 제대로 항의 조차 못했다. 현 정권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혼밥 방중과 관련해 ‘내용’만 있으면 되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보다 ‘의전’을 더 중시하는 정권은 세계에 없다. 중국에서 ‘형식’상 경멸(輕蔑)은 실제로도 멸시(蔑視)이다.”
◇“대중 외교, 우파는 6~7점, 文 정권 4~5점”
- 좌·우파 정권의 대중 외교를 점수로 매긴다면?
“우파 정권에 대해 10점 만점에 6~7점을 준다면, 문재인 정권은 4~5점이다. 한국 정권이 미국과 친밀할수록 중국은 우리를 더 중시하고 더 우대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얻게 된다. 한국 차기 정권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 문 정권 출범 만 4년이 지났는데도, 시진핑의 방한(訪韓)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나는 시진핑은 문 정권 임기 동안 절대 방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2017년 12월부터 공언하고 있다. 시진핑이 한국에 발을 딛는 순간, 그것은 사드 문제가 해결됐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중국은 ‘사드’ 문제를 구실로 한미(韓美)동맹의 고리를 끊는 걸 최고의 외교 목표로 삼고 있다. 사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시진핑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다른 큰 문제는 중국공산당과 우리나라 국민에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사실”이라며 “문 정권은 중국에게 ‘사드’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큰 소리치면서 환경평가 연기 같은 꼼수를 부렸는데 사드는 그런 방식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中 눈치 대신 국민 심정 헤아리는 대중 외교”
- 내년 5월 출범하는 한국 새 정권에 대중 외교와 관련해 조언한다면?
“3가지 대중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중국 눈치 보기를 중단하는 게 첫걸음이다. 또 우리 스스로 대중 외교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얻을 것인지, 대중 외교의 원칙과 목표, 가치를 분명히 세우고 행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를 헤아리는 대중 외교를 펼쳐야 한다.”
주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까지 우리나라 엘리트들과 일반 국민의 대중 인식 여론조사를 각각 했다. 2006년 마지막 조사를 보면 국회의원들의 60%는 중국에 호감을 보인 반면, 일반 국민들의 중국 호감도는 30%에 그쳤다. 이런 괴리감을 줄이며 국민 안위와 행복을 도모하는 대중 외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韓 언론, 중국의 한국 침투 파헤쳐 공론화해야”
- 중국의 위협과 파상적인 침투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지식인과 지도층의 각성과 더불어 언론의 탐사 보도, 공론화 노력이 절실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대학교와 싱크탱크가 재정난을 겪을 때, 중국 자본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이때 미국 주요 언론사들이 공격적인 탐사보도로 이를 파헤치며 국민에게 알리고 위험성을 지적했다. 수년 전 호주도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도 언론들이 중국의 은밀한 한국 침공 실태와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려 공론화해야 한다.”
-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서 한국의 역할과 가치는?
“잠재적 가치와 현실적 가치 모두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외교는 생물(生物)이다. 우리의 지리적 위치는 불변이지만 지정학적 가치와 역할은 달라진다. 냉전시기 자유 진영과 공산진영의 최전선에 위치하며 가졌던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탈냉전 시기에 다소 낮아졌었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시대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 높일 호기(好機)이다.”
- 어떤 이유에서 좋은 기회인가?
“일례로 한국은 중국의 제1도련선(島鏈線·오키나와~타이완~필리핀~보르네오섬을 잇는 중국의 해상 방어선) 안에 포함돼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면 1도련선을 돌파해야 한다. 그 핵심 길목 중 하나가 대한해협이다. 대한해협이 봉쇄되면 중국은 매우 힘들다. 또 국내 군사기지들은 중국의 심장부를 최근거리에서 겨눌 수 있다.”
◇“‘中 심장부’ 겨누는 韓의 전략적 가치 활용해야”
주 교수는 “정치인들과 정책 결정자들이 우리만의 이러한 전략적 가치를 제대로 꿰뚫어 담대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한국의 활로와 국익이 훨씬 커지는데, 이런 의식이 아예 없거나 매우 약한 게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우리의 국가이익이 걸린 사안에는 여·야간 초당(超黨)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쿼드(Quad·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 비공식 안보회의체) 참여 같은 문제에 우리가 초당적으로 임하면, 미국과 중국에 레드라인(red line) 등을 제시하며 각각 딜(deal)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나라는 동북아의 규범 주도자(rule maker)로서 국가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 중국도 그런 상황을 반길까?
“한·미·일 3국 관계에서도 우리가 주도권을 쥐는 게 중국 입장에서 더 좋다. 한국이 빠진 채 미·일 동맹만 강고하게 밀착하면, 중국의 안보 부담이 더 커진다. 한국이 포함된 한·미·일 동맹의 경우, 한국이 중간에서 완충자 역할을 할 수 있어 중국에 더 이익이다. 우리의 외교 전략 공간 확보 노력에 따라 한·미·일과 중국까지 국익에 도움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일(韓日)관계 악화로 신뢰가 고갈된다면, 그런 시도 조차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