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 7월에 시험 발사했다는 ‘극초음속(hypersonic) 궤도 핵(核)미사일’의 정체를 놓고, 미 안보전문가들 사이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극초음속 궤도 핵미사일이라는 것은 지구 주위를 돌다가(궤도 비행), 한 순간 대기권으로 진입해 음속의 5배 이상으로 활강(gliding)하면서 목표물을 타격하는 핵미사일을 뜻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 중국의 이 극초음속 궤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보도하면서, “타격 목표에선 38㎞ 가량 빗나갔지만, 미 정보당국은 예상을 넘어선 진전에 놀랐다”고 보도했다. 궤도 미사일의 대기권 활강 속도는 아무리 극초음속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속도(초당 6~8㎞)에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탄도미사일이 포물선 궤적을 이뤄 방어 체계가 목표와 비행 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활강 미사일은 정해진 루트를 따르지도 않아 추적하기도 힘들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피해 타격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겐 분명히 ‘가공할만한’ 무기인 것은 분명하다. 일부에서 소련이 1957년 미국에 앞서 스푸트니크1호 인공위성을 처음 발사했던 때에 빗대 ‘스푸트니크 순간’이라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이후 미 외교안보 매체인 ‘포린 폴리시’와 뉴욕타임스는 “중국으로선 기술적 도약이지만, 새로울 것은 없는 기술” “신뢰할만한 정보가 없다”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내린 전문가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궤도비행 타격은 반세기 전 개발된 기술”
미 군사전문가들이 ‘궤도비행 미사일’ 기술에 놀라지 않는 것은 이미 1960년대 당시 소련과 미국이 개발한 ‘부분 궤도비행 폭격 시스템(FOBS)’과 같기 때문이다. 1967년 미국은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초보적인 미사일 방어체계인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배치했다. 그러자 소련은 이를 무력화(無力化)하려고, 지구 주위를 돌다가 대기권으로 재진입해 미국을 타격하는 FOBS인 RS-360 미사일을 배치했다.
미국은 소련의 핵 탄도미사일이 가장 빠르게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루트인 북극해를 겨냥해 알래스카에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소련의 FOBS는 위성처럼 지구 주위를 돌다가, 미국 방어체계의 후방에서 대기권에 진입해 목표물을 강타할 수 있었다.
소련의 ICBM은 지구 상공 1300㎞에서 포물선의 정점을 찍고 미국으로 떨어진다. 포물선이므로 목표물을 추정할 수 있고 30분의 경고시간이 있다. 그러나 소련의 FOBS는 이보다 훨씬 낮은 고도에서 지구 주위를 돌다가 언제 궤도 비행에서 벗어나 대기권으로 재진입하고 목표물이 어딘지 예측하기 힘들고 경고 시간도 수분에 그친다.
◇우주 배치 핵무기는 국제법상 위반이지만
외기권 우주조약(Outer Space Treaty)은 지구 둘레를 도는 핵무기의 배치를 금한다. 따라서 미국과 소련은 지구 둘레의 일부만 돈다는 뜻에서 ‘부분적 궤도비행 타격 시스템(Fractional Orbit Bombing System)을 개발했다. FOBS 미사일 배치가 본격화하면, 두 나라는 방어체계도 전방위(全方位)로 확대해야 해 무한 군비경쟁이 불가피하다. 결국 두 나라는 1971년 요격미사일 협약(ABM treaty)을 맺고, 각각 방어체계를 한 곳으로만 제한했다. 소련은 18기의 RS-360 FOBS 미사일을 포기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화당 보수파는 상대방의 핵 보복 능력을 두려워해 서로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1983년 흔히 ‘스타워즈’라 불리는 미사일 방어체계 SDI를 시작했고,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ABM 조약을 폐기했다. 이후 미국은 미사일 방어체계를 더욱 강화했다. 러시아가 최근 수년간 ‘보이지 않는’ 극초음속 활강미사일 ‘성공’을 운운하는 것도 ‘창과 방패’ 싸움의 연속선상에 있다.
뉴욕타임스가 중국의 이번 미사일 시험 발사를 놓고 “반세기 전 소련과 미국이 개발한 기술과 비슷하다”는 안보전문가들의 평가를 소개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소련과 다른 것은 ‘활강’
중국의 이번 발사가 소련의 과거 FOBS와 다른 것은 대기권 재진입 후 이뤄지는 ‘극초음속 활강(gliding) 부분’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신기술은 아니다. 미국 나사(NASA)가 운영했던 우주왕복선이나 보잉이 개발한 무인 우주왕복선 X-37B가 다 이렇게 대기권에 진입한 뒤 활강해서 착륙한다. 미 국방 씽크탱크인 랜드 코퍼레이션의 2017년 보고서는 “미국과 러시아 등 전 세계 20여 국이 극초음속 비행물체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무력화가 목표?
미 안보전문가들은 “미국이 모르는 새로운 기술적 돌파는 없었다”면서, 중국이 이런 실험을 하는 의도에 더 주목한다. 결국 소련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무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미국을 겨냥한 핵미사일이 100기 가량 있다. 그러나 중국 군부는 이 중 얼마나 미국의 선제 핵공격을 견뎌내고 보복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미국이 미사일의 실제 배치 여부를 알 수 없게, 미사일 지상 격납고를 추가로 300개가량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지상발사 ICBM인 둥펑-5의 격납고는 20개에 그쳤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선제 핵공격하려고 하면, 수백 개의 지상 배치 ICBM 격납고를 모두 파괴해야 한다. 중국으로선 그리고도 핵 보복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신 기술을 장착한 FOBS에서 해답을 찾은 것이다. FT는 중국의 극초음속 궤도비행 미사일이 지구를 한 바퀴 다 돌았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외기권우주조약이 금하는 ‘궤도 비행 폭탄’을 개발한다는 얘기다.
◇”대응해야 하나?” 미국의 고민
지난달 20일 프랭크 켄달 미 공군장관은 “중국이 우주에서 전 세계를 타격할 잠재력을 지닌 정밀타격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여러 중국 측 논문을 통해서 중국 군부가 FOBS를 실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재 미국 알래스카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은 모두 북극에서 날아오는 최단(最短) 비행 거리의 미‧중 미사일을 겨냥한다. 지금까지 700억 달러를 투입했다. 그러나 이 방어시스템은 여전히 전면적인 핵공격을 막아내기엔 매우 제한적이다. 또 알래스카 방어망은 남극을 통과해 날아오는 미사일은 요격은커녕 포착하기도 힘들다. 지난 1월 미 의회조사국이 뉴욕주 포트드럼에 추가로 적 ICBM 5기를 격추하기 위해 20기의 요격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했을 때에는 초기 5년간 36억 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다.
미국 내에선 중국의 FOBS 개발에 대응하는 것은 무한 군비경쟁만 촉발할 뿐이라며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전문가(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비확산센터 소장)가 있는가 하면, 중국의 어떠한 기술적 도발에도 단호하게 맞서 재래식 중거리미사일‧해상발사 핵크루즈미사일 등을 개발해야 한다(마샬 블링슬리 전 국방부 고위관리)는 매파적 의견이 상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