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장기화 등으로 중국 경기 하강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980년대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덩샤오핑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7일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지난 24일 “시진핑 권력 집중이 추진되는 가운데 개인 숭배 탈피, 사상 해방을 추구했던 덩샤오핑을 조명해 역설적으로 현 체제를 비판하는 ‘조용한 저항’이 확산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년 3연임을 앞두고 경제·사상·문화 분야에서 당의 통제를 강화하자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덩샤오핑의 리더십을 찬양하는 방식으로 시 주석을 우회 비판한다는 것이다.

일본 언론은 지난 9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린 취칭산(曲靑山) 중국공산당 중앙당사(史)·문헌연구원장의 글에 주목했다. 취 원장은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을 “당의 위대한 각성”이라고 부르며 덩샤오핑이 주도한 변화를 극찬했다. 이 글에서는 덩샤오핑 이름이 9번 언급됐지만 시 주석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시 주석 찬양 일색의) 최근 신문 (분위기)에선 이례적”이라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통제 위주의 시진핑 경제 노선에 대해 당내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했다. 시 주석이 ‘공동부유(共同富裕·다 함께 잘 살자)’를 내세우며 중국 경제 성장을 견인한 IT·교육·부동산 민간 기업을 규제하는 등 시장에 강하게 개입하자 중국 공산당 내에서 “경제성장이 실속(失速)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했고, 이념보다 경제를 우선시했던 덩샤오핑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화대혁명(1966~1976년)을 비판하고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원칙으로 중국의 개혁 개방을 주도했다. 마오식의 개인 숭배도 철저히 비판했다. 또 당시 적대 관계였던 소련을 견제하려 이념적으로 적이었던 미국, 일본과 손을 잡았다.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라는 외교 전략을 편 것도 유명하다.

취 원장은 시진핑 사상을 최일선에서 전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당 기고에 시 주석이 언급되지 않은 것도 중국 공산당의 공식 역사 분류에서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기를 개혁·개방기로 분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취 원장의 글이 중앙·지방 정부 지도자, 국영기업 대표 등이 베이징에 모여 내년도 경제 전략을 짜는 중앙경제공작회의(8~10일) 기간 발표됐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중앙경제공작회의 발표문에는 “경제 건설 중심이라는 당의 기본 노선 요구를 견지한다”는 표현이 3년 만에 등장했는데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덩샤오핑 시기 주로 쓰던 표현으로 경제, 고용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지식인들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덩샤오핑은 아랫사람을 신뢰했다” “자신에겐 별 생각이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아랫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허용했다” “위신이 정점에 달했을 때에도 개인 숭배를 시도하지 않았다” 등의 내용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시진핑의 강력한 ‘톱다운(하향식)’ 체제와 (덩샤오핑 체제를) 대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이를 ‘은근한 체제 비판’ ‘조용한 저항’이라고 했다. 인터넷에 관련 글을 공유한 익명의 지식인은 이 신문에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을 직접 쓰진 않지만, 읽으면 담겨 있는 뜻을 알 수 있다”며 “지금 시대의 (반항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했다.

시 주석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지만 최근 중국의 외교 전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전 미국 주재 중국 대사는 최근 중국 외교부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국제문제연구원에서 가진 연설에서 대미 외교와 관련해 “나라를 생각하는 큰사람[國之大者]이 돼야지 인터넷 스타가 될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거친 반응을 쏟아내는 데 치중하는 자국 ‘늑대 외교관’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됐다. 추이 전 대사는 중국 외교부 차관과 2013년부터 8년간 주미 중국 대사를 지냈다.

추이 전 대사는 “미국 세력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심지어 한계도 없이 중국에 대한 압박, 억제, 편 가르기, 포위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지구전(持久戰)에 대한 마오쩌둥의 표현을 인용해 “준비가 안 된 싸움을 해서는 안 되고, 장악하지 못할 싸움을 해서는 안 되며 도박이나 소모전을 해서는 안 된다. 인민의 이익 하나하나는 어렵게 얻은 것으로 우리의 부주의나 게으름, 무능으로 (인민의 이익에) 손해가 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미국과의 외교전에서 성급한 개전(開戰)을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로, 덩샤오핑이 주장했던 도광양회를 떠올리게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중국 전문가는 “중국 인민은 과거 1960년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당시처럼 아무런 외부 정보 없이 공산당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지 않는다”며 “미국 등 서방국가에서 인터넷을 통해 유입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독재 체제를 추구하는 시진핑 주석에 대한 반발이 확산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